야생조류는 저마다 다른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있다. 큰오색딱따구리의 부리는 나무 기둥을 뚫기 위해 아주 단단한 원뿔형이며, 갯벌에서 먹이를 구하는 흑꼬리도요의 부리는 기다랗고 유연하며 부드럽다. 맹금류의 발톱은 뾰족해 날카롭고, 물새는 뭉툭하고 짧다.
그런데 조류가 사람의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제각각이던 부리와 발톱에 공통점이 생긴다. 원래 형태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진다. 야생에서는 먹이 활동을 하고 조류 스스로 관리하기 때문에 부리와 발톱이 자연스럽게 마모되지만, 사람과 살며 부적절한 먹이를 먹고 갇혀 있으면 마모될 틈이 없다. 길어진 발톱과 부리는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닭장에서 길러진 검은머리물떼새
지난해 6월 하늘에서 새가 ‘뚝’ 떨어져 보호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 천연기념물 제326호인 검은머리물떼새였다. 야생에서는 갯벌을 헤치며 돌아다니면서 단단하고 긴 부리로 조개류의 껍데기 사이를 비틀어 열어 먹는다. 굴을 잘 깨서 먹어 영어로는 ‘굴잡이(Oystercatcher)’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곳에서 마주한 검은머리물떼새의 모습은 생경했다. 닭장 창살 너머로 닭들 사이에 멀뚱히 있는 검은머리물떼새가 보였다. 깃이 군데군데 손상돼 있고 발톱이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자라 있었다.
부적절한 사육에 따른 결과였다. 다치거나 조난당한 야생동물을 발견한 지 2주 이상 보호하고 있다면 구조 원인을 ‘부적절한 사육’으로 기록한다. 불법 사육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구조자는 2주 안에 야생동물 관련기관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더구나 보호 기간이 2주가 넘으면 부적절한 사육에 따른 문제가 발생한다.
다행히 외상이나 골격계 이상은 없었다. 깃 손상도 비행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발톱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자라 있었지만 혈관이 그만큼 자라지 않아 원래 길이로 다듬어줄 수 있었다. 별 문제가 없었기에 구조 당시 금세 방생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먹이를 먹지 않아 체중이 계속 감소한데다 비행을 하려 하지 않았다. 닭과 살며 자신의 습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강제 급여와 지속적인 비행 훈련이 필요했다. 검은머리물떼새는 구조센터에 장기계류를 시작했다.
41일 간의 강제 급여 끝에 검은머리물떼새가 식욕을 되찾았다. 스스로 먹이를 먹자마자 비행 훈련을 하기 위해 실내에서 야외 계류장으로 보금자리를 바꿨다. 비행 훈련은 순조롭게 이뤄졌지만 이번엔 부리에 문제가 생겼다. 순전히 야생을 벗어났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구조센터에서는 검은머리물떼새의 주식인 조개류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다. 쉽게 상하고 제철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 애벌레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딱딱한 조개류 껍데기를 열면서 자연스럽게 마모됐어야 할 부리가 부드러운 먹이를 먹으면서 한없이 자라기만 한 것이다. 보통 검은머리물떼새의 부리길이는 7.5cm 정도인데, 이 새는 11cm까지 자랐다. 그 결과 아랫부리가 깨져 윗부리가 돌출됐고 옆에는 금까지 생겼다. 부리를 자르는 ‘코핑(coping)’이 필요했다.
갈고 또 갈아 자연스러운 부리를 만들다
코핑하기 전 야생 검은머리물떼새의 사진을 수없이 찾아봤다. 구조 당시 사진도 비교해봤다. 얼마나 자라 있고, 형태는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한 뒤 코핑을 시작했다. 우선 방사선 촬영으로 부리 뼈 위치를 확인했다. 부리 뼈의 길이가 8cm여서 뼈 손상을 막기 위해 부리를 9cm까지만 자르기로 했다. 그 뒤 마취를 했다. 마취를 하지 않으면 야생동물이 발버둥치다가 사람과 동물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
코핑을 위해선 반려동물용 발톱깎이, 드레멜, 스틱사포, 거즈, 오일이 필요하다. 거즈로 검은머리물떼새의 눈과 구강을 가린다. 코핑 과정에서 나온 부리 가루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형적으로 부리가 길게 자랐다면 드레멜을 사용한다. 드레멜은 날카로운 원판이 회전하며 물체를 절단하는 전동 기구다. 드레멜의 진동이 고스란히 동물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강도를 서서히 올리며 작업해야 한다. 드레멜은 워낙 빠르고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에 실수하기 쉽고 동물이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되도록이면 사포 작업을 선호한다. 다행히 검은머리물떼새의 부리는 사포만으로도 작업이 가능한 상태였다.
당시 검은머리물떼새는 비행 훈련을 모두 마치고 방생을 앞둔 상태였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혈관이나 신경을 건드렸다가 큰 부상으로 이어지면 일 년 가까이 기다려온 방생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1주 간격으로 두 번에 나누어 코핑을 했다.
1차로는 위아래 부리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돌출된 윗부리를 갈아줬다. 연마력이 강한 사포로 먼저 부리의 틀을 잡고, 연마력을 낮춰가며 섬세하게 다듬어줬다. 부리 끝부분은 발톱깎이로 다듬어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검은머리물떼새는 부리 외피에 금이 가 있었기 때문에 사포로만 작업을 했다. 2차 코핑에서는 길이를 맞춰주는 작업과 함께 금이 간 주변을 갈아 굴곡을 최대한 줄였다.
2차 코핑까지 마쳤지만 야생 검은머리물떼새의 부리와 완전히 똑같아지진 못했다. 코핑을 더 하면 야생과 똑같은 부리를 만들 순 있었다. 하지만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이런 인위적인 작업을 계속하는 것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야생에서 딱딱한 먹이를 깨 먹으면 부리는 자연스레 제 모양을 찾을 것이다. 코핑 2주 뒤 비행 능력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무사히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검은머리물떼새의 노란 부리가 부디 자연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워졌길 바란다.
김리현
공주대 특수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재활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다. 세상을 돌며 다양한 동물들을 마주하고 싶어 약 10개월의 여행을 떠났다. 다양한 동물원과 국립공원을 방문하고, 뉴질랜드 북섬의 야생동물센터 ‘푸카하 마운트 브루스’에서 봉사활동 경험을 쌓았다. krh133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