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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당신을 엿본다

첨단 기술이 선물한 뿌리치기 힘든 유혹

국내 굴지의 기업 A사에 다니는 B모씨는 회사 메일을 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혹시 누가 메일을 먼저 열어본 것은 아닌지’ 언제나 찝찝한 기분이다. 기업 비밀 유출을 막는다는 구실로 회사측이 개인 이메일을 열람하고 있다는 의혹이 몇년전부터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A기업은 지난 2000년초 국내 한 벤처기업에 의뢰, 사내 메일을 감시할 수 있는 보안솔루션을 도입한 바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원들의 메일을 언제든지 일일이 열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회사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이트들이 일방적으로 차단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 다른 직원 C모씨의 불만은 이어진다. 신분증으로 받은 IC카드로 출퇴근 상황은 물론 사내 위치까지 체크되고 있다는 것. ‘영업 비밀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정도까지 자기 사원을 못 믿냐’는 섭섭한 감정이 앞선다고 C씨는 토로한다.
 

한 백화점에 설치된 무인감시카메라(CCTV) 통제실. 좀도둑 방지와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각 층을 감시한다.


얼마나 쉽게 당신을 감시할 수 있나

언제부턴가 ‘감시 공포’ ‘감시 노이로제’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기 시작했다. 전화 통화 중에, 근무시간 사무실에서, 심지어 자기 집에서 조차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11월 한 취업 포탈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40%가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휴대전화 사용자의 70%는 정부의 불가 확인에도 불구하고 도청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3cm가 넘지 않는 초소형으로 눈에 잘 띄지 않음’ ’반경 300m안에서 목소리가 또렷히 들림’. 이는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전문구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10만원 안팎의 가격에 하루면 이들 장비를 집앞에서 받아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감시 장비는 점점 더 지능화하는 추세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은 기본이고 무선랜 도청, 스파이웨어 등 첨단 IT기술을 이용해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감청 탐지 시장은 매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보안업체인 한국통신보안 안교승 대표는 “도감청 탐지 시장은 지난해만 50% 이상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향후 2~3년 내에 200억~300억원 시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감시기술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도입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발족한 강남경찰서 CCTV 방범관제센터가 대표적인 최근의 사례다. 서울 강남경찰서와 강남구청은 현재 관내 17개 동에 방범용 CCTV 272대를 설치하고 역삼동 관제센터에서 이를 운영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현장의 위치와 영상, 인근 4개 지역의 영상이 동시에 범인 모습을 잡을 수 있다. 차량 번호판은 물론 사람 얼굴까지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 2003년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 인천 등 6개 광역시 경찰청이 운영하는 CCTV 수는 모두 1200여대, 촬영 범위는 수m~2km에 달한다. 교통 흐름 조사와 단속, 방범용으로 설치된 이 카메라들은 대부분 얼굴식별이 가능하다. 좌우 360도, 상하 60∼180도를 자유자재로 감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녹화 영상을 최고 10년간 보존한다.

2000년 개통된 인천공항고속도로에는 1km마다 1대꼴로 고성능감시카메라가 설치됐다. 원격 조종되는 이 카메라는 1.5km 떨어진 차량번호판까지 전방위로 식별해낸다. 역삼 1동은 100m마다 한 대 꼴, 국내 최대의 복합공간인 코엑스에는 460대(무역센터 포함)의 CCTV가 작동하고 있다. 9.11이후 뉴욕 맨해튼 지역 감시카메라 대수는 무려 3배로 증가했으며 런던 시민들은 하루 평균 5분에 한번씩, 하루 300번 정도 감시카메라에 노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자와 감시 피해자의 정신 심리 상태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까지 거의 없다. 다만 다른 정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일부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이 전부다.

서울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감시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스토킹 피해자의 심리에 빗댈 수 있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감시 피해자들은) 누군가에게 항상 노출돼 있다는 불안 심리 때문에 행동에 제한을 받는다”면서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경우 정상적인 사람도 피해의식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과거엔 감시 피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망상이나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다’라는 망상은 정신분열증 환자와 피해망상 환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하지만 사회에 따라 이런 증상은 좀더 강화되기도 한다. 권 교수는 “3공 5공 때처럼 감시가 실제 성행하는 시대엔 개인에 따라 그런 피해의식이 부풀려지는 경향이 좀더 강해진다”고 말한다. 또 역으로 감시 피해자가 감시자나 누군가를 감시하려는 심리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이에 비해 가해자에 대한 분석은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다. 스토커의 정신심리에 대한 분석이 있을 뿐 국가의 감시에 대한 정신 심리학적 분석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지나친 권력욕이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불안심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내용이다. 하지만 권 교수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감시를 쉽게 위정자의 정치적 불안감이나 독특한 개인 혹은 어떤 특정 심리로만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감시

9.11테러 이후 미국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은 감시기술의 최대 산실로 떠올랐다. DARPA는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리즘인식’(TIA)프로젝트라는 일종의 테러예방기술 개발 계획을 세웠다. 미국과 해외를 오가는 모든 전화와 이메일 가운데 테러와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적발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 자동 외국어 번역기와 번역된 대화 내용을 분석하는 장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의심나는 메일을 추출하는 것이 주요 연구 과제다.

DARPA는 최근 멀리서 동작만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인식기술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 사우스햄튼대 마크 닉스 박사는 “사람마다 지문과 사인이 다르듯 독특한 동작이나 걸음걸이가 있다”면서 “컴퓨터는 이 바디 랭귀지를 해석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실제 미국 카네기맬론대 로봇연구소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의 움직임의 동작을 분석한 결과 동일인일 경우 항상 90~95%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걸음걸이 인식기술을 사용해 무인감시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분석한다면 인파 속에 숨어 있는 범인이나 주변지역을 배회하는 범죄용의자 체포가 좀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DARPA측은 설명한다.

대학과 민간 연구소 연구도 활발하다. 테라헤르쯔(1THz=1012Hz) 주파수를 갖는 T레이를 이용한 영상 기술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X레이보다 파장이 짧은 T레이는 사물의 형상은 물론 그 성분까지 자세히 보여준다. 옷이나 옷감을 그대로 투과하기 때문에 몸속에 숨긴 무기를 쉽게 탐지할 수 있다.

신형 감청 기술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남캘리포니아대 신경공학센터 테드버거 박사는 인간 청각신경계의 작동 원리와 유사한 신형 감청 기술을 개발 중이다. 총격음이나 사고음을 수km 밖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이 기술은 인체가 비슷한 소리를 구별할 때 사용하는 신경계 원리와 유사하다. 무인동작감시카메라와 함께 설치될 경우 소리를 탐지해 사건이 발생한 쪽으로 카메라 방향을 바꿔주는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입모양만으로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도 한다. 아무리 뛰어난 감청장비도 소음이 심한 혼잡한 장소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인텔과 IBM은 소리에 대해 가능한 모든 입모양을 추측해 그 내용을 유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목소리가 나오기 120ms(밀리초) 전에 입이 움직이며 모양에 따라 각각 다른 발음이 나온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정확도는 약 20~75%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소음 심한 장소에서 일반 감청장치와 함께 사용하면 아주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아라 네피안 박사는 말한다.
 

휴대용 도감청 탐지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보안업체 직원들. 몰래카메라나 도청장치에서 나오는 특정 주파수를 탐지한다.


감독 장치 도입 논의 활발

지난해 ‘빅브라더 보고서’를 발표한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주민의 자발적인 요구로 감시장비를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설치 규정은 물론 이를 규제할 법적 장치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현행 법률 체계대로라면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얼마든지 임의로 CCTV를 설치할 수 있다. 단순한 지침과 규정으로 CCTV가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 누구든지 임의로 CCTV를 설치해 운용할 수 있다. 이를 규제할 근거 규정이 없어 개인의 사생활 공간을 침입하지 않는다면 사업장이나 공공장소에서 얼마든지 무인감시카메라로 지켜볼 수 있다는 얘기다. 몰래카메라 역시 지금까지 법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수년째 관련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정부도 관련법 제정을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정보통신부와 행정자치부 등 관련부처는 ``‘정보통신망 및 컴퓨터 등으로 처리되는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마련키로 했다. 새 정부안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개인정보 뿐만 아니라 CCTV를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까지 그 적용범위를 넓게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법이 시행되면 CCTV를 설치할 때 ‘이곳에 CCTV가 설치돼 있다’는 내용을 표시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몰래카메라는 처벌대상이 된다. 적용 대상도 영리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모든 사업자로 확대, 개인정보 유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안은 정보통신부와 행정자치부의 밥그릇 싸움으로 몇달째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뒤늦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올 상반기 중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지만 여전히 풀어야할 문제들은 남아있다.

새로운 감시기술을 규제하고 감독할 장치가 없다는 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월 21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개인정보 감독기구의 위상과 역할’ 토론회에서는 이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이인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국가 차원의 종합정책 마련을 위해 공공 및 민간 부문의 통합된 개인정보감독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나 기업이 저지른 위법한 개인정보 처리로부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보장받기 위한 소송 외에도 개인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개인정보감독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유럽연합 개인정보 보호지침의 영향으로 공공과 민간 부문을 통합 감독하는 개인정보감독기구를 설립하고 있다. 이 교수는 “새로운 통합기관이 예방과 사후 민원해결, 정책 조언 기능을 수행하고 다른 집행기관들은 집행과 정책결정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한편 영향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최근 전자태그 도입과 관련해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프라이버시 영향평가제를 도입해, 정부나 기업이 전자태그를 도입할 때 반드시 미리 감독기관에 신고해 평가를 받도록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자태그를 통한 추적 목적과 장소, 거리,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해 사전 심의를 받으라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감시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게 이들 단체들의 입장이다.
 

3차원 입체 CCTV기술은 게임을 하듯 스틱을 이용해 원하는 목표를 손쉽게 감시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모니터는 손동작에 따라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본 듯한 영상을 쉴새 없이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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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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