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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이 사람을 두 번 만났을 때] 차가운 도로 위에 식어가다

 

 

 

 

지난 10년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된 고라니는 총 2403마리다. 전체 동물의 22%, 포유류 중에서는 무려 67%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차량 충돌로 구조된 고라니는 절반 이상인 1390마리다. 단순 계산으로 충남 지역에서만 약 3일에 한 번 꼴로 차에 치인 고라니가 구조됐다. 구조의 첫 번째 조건은 ‘살아있을 것’이다. 차량 충돌 후 현장에서 죽거나 미처 발견되지 못한 경우는 이 숫자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얼마나 많은 수의 고라니가 희생됐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구조됐다고 다행이라 하긴 아직 이르다. 차량 충돌을 당한 동물은 대부분 부상이 심각하다. 10년간 차량 충돌로 구조된 1390마리 중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 수는 98마리에 불과하다. 
2019년 1월 1일, 2일, 3일에 각각 같은 이유로 구조돼 각기 다른 결말을 맞은 세 마리의 고라니를 소개한다.

 

  안락사, 방생, 그리고 치료 중 폐사  


구조센터에서는 구조된 연도와 순서를 포함한 일련번호로 동물을 구분한다. 2019년 1일, 2일, 3일 구조된 고라니는 각각 2019-3, 2019-4, 2019-6이라 불리게 됐다. 


2019-3은 도로변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상태로 발견됐다. 척추 골절이었다. 차량 충돌을 당한 뒤 구조된 성체 고라니는 대부분 이처럼 척추가 손상된 상태다. 척추 손상은 치료도 어려운 데다 사고 후 치료로 되살릴 수 있는 시간인 골든타임이 짧다. 다친 야생동물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신고하는 시간은 골든타임에 비해 턱없이 길다. 그래서 척추 손상을 입은 동물의 대부분은 안락사를 맞이한다. 2019-3도 뒷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해 결국 안락사됐다.


2019-4는 다행히 척추 손상을 입지 않았다. 좌측 앞발허리뼈 원위부(사람의 손등뼈에 해당하는 부위의 손끝 쪽)의 성장판이 골절됐고 약한 뇌진탕 증세를 보였다.

 
골절 치료는 비교적 간단하다. 골절 부위를 수술로 고정하고 포대로 감싼 뒤 수주 동안 덜 움직이도록 좁은 계류장에 두고 붙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고라니는 예민한 성격 탓에 다른 동물과 달리 좀처럼 가만히 있질 않는다. 2019-4도 얌전한 성격은 아니었다. 계류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척골(아래팔 안쪽뼈)에 새로운 골절이 생겼다. 골절된 다리를 절단하는 것으로 치료방향을 바꿨다. 최대한 빨리 절단 수술을 했고 다행히 2019-4는 빠르게 회복했다. 다리 하나를 잃었지만 사고 23일만에 자연으로 돌아갔다.


2019-6은 손도 써보지 못 하고 떠나보내야 했다. 구조센터에 왔을 때 뇌진탕 증상과 우측 대퇴골두(넓적다리뼈 윗부분)가 탈구된 상태였다. 구조 당시 수술을 견딜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라 체력이 회복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3일을 채 버티지 못했다. 2019-6이 갖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들이 떠올랐다. 사람에게 조금 더 일찍 발견됐다면, 구조센터가 좀 더 가까이 있었다면, 구조센터에 더 많은 인력이 있었다면 2019-6의 생은 좀 더 길어질 수 있었을까 한참을 되뇌었다. 


도로에서 고라니와의 충돌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주시하며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이다. 야생동물은 서식지 인근 도로에서 자동차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지 알고 있다. 제 나름대로 속도를 계산하고 도로를 건넌다. 제한속도를 훌쩍 넘는 속도로 달려오는 자동차는 당연히 계산에 없다. 


특히 시야 확보가 어려운 밤, 야생동물 출몰 지역 도로를 지난다면 제한 속도를 지켜 운전하는 습관은 야생동물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

 

  혼자 노는 새끼 고라니, 미아가 아니야  


지난 10년간 구조된 고라니 중 17%는 미아였다. 고라니는 새끼를 안전하게 기르기 위해 한 장소에서 무리 지어 보살피지 않고 한 마리 혹은 두 마리씩 풀숲에 떨어뜨려 놓는다. 하루에 두세 번만 찾아가 새끼 고라니에게 젖을 먹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멀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며 새끼를 지킨다.


이런 독특한 육아방식 때문에 사람들은 풀숲에 혼자 있는 새끼 고라니를 발견하고 어미를 잃었다 착각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데려오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로 인해 새끼는 어미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 새끼 고라니를 발견한다면 우선 스스로 일어서고 걸을 수 있는지, 너무 마르지 않았는지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문제가 없다면 잘 숨겨주는 것이 고라니를 위한 방법이다. 


원래 고라니는 산속의 풀숲이나 갈대밭에서 새끼를 낳지만 과수원, 공원,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서 새끼가 발견되기도 한다. 예초기에 다쳐서 구조된 고라니도 늘고 있다. 새끼 고라니는 위협을 느끼면 바짝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 작은 생명이 덧없이 희생되지 않도록 예초를 하기 전 풀숲을 살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멸종위기에 처한 고라니  


한국에서 고라니는 흔하다. 충남 지역에서는 새벽녘 ‘우왁, 우왁’ 우는 고라니 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고라니는 한국에서만 흔하다. 한국에 서식하는 고라니가 전 세계 고라니 개체군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서 취약종(VU)으로,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보다 높은 등급이며 1급인 산양과 같은 등급이다.


한반도에서는 고라니의 포식자인 호랑이, 스라소니와 경쟁자인 대륙사슴이 멸종해 이처럼 번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고라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대신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농작물을 망치는 골칫덩어리라는 명목으로 매년 10만여 마리가 포획된다. 매년 6만 마리가 로드킬 사고를 당하는 것을 감안하면 16만 마리 정도가 해마다 사라진다. 


현재 한국에 서식하는 고라니 개체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연구 또한 부족하다. 지금은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당장 문제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국내 고라니 개체군이 큰 타격을 입는다면 곧 지구상에서 절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야생동물 지식 플러스

조난당한 야생동물을 발견했다면

동물의 상태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달라진다. 이미 폐사한 상태라면 지자체의 청소과나 자원순환과에 연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물이 살아있다면 해당 지역의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연락한다. 단 고속도로 내에서 발생한 사고는 한국도로공사 등 해당 고속도로 관리기관에서만 현장 수습 및 구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관할 기관에 우선 수습 및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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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신다혜 재활관리사
  • 에디터

    박영경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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