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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해치는 동물들의 기막힌 사연

동생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는 세가락갈매기

한국시간으로 지난 6월 2일 오전 10시.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의 종결을 선언했다. 다른 민족을 침략해 살해하는 전쟁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이라는 같은 종족끼리의 싸움이다. 이런 싸움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실제로 동물들이 같은 종족끼리 상처를 입히고 죽이는 모습을 관찰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과거 동물행동학에서는 같은 종족끼리는 서로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은 자신과 같은 종족을 번식시키려고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밀폐된 공간에 갇힌 사육상태에서 싸우다가 피해를 당하는 쪽이 충분히 숨거나 도망갈 곳이 없을 때 간혹 살해당한 사례가 알려져 있었다. 사육상태의 동물은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가 함께 지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결과 실제로 동족 간에 죽이는 행동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야생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이런 견해가 더이상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최근 야생상태에서도 동물들이 같은 종족에게 살해당하는 사례가 많이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노예 확보하는 개미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켰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처럼 인간이 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처럼 동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제외하고 피를 흘리는 전쟁이나 대량학살까지 마다하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이 개미다. 개미들이 전쟁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꿀단지개미는 상대 집단의 군대가 아주 약하다는 낌새가 노출되면 상대의 굴 속까지 쳐들어간다. 상대의 우두머리인 여왕개미를 죽인 후 어린 일개미들과 유충들을 납치해 노예로 삼는다.

또 아마존개미는 앞장을 선 정탐개미들을 뒤따르거나 아니면 그들이 그려 놓은 길의 냄새를 따라 상대 집단으로 쳐들어간다. 눈앞에 나타나는 적군을 가차없이 물어 죽이며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번데기들을 물고 돌아온다. 이렇게 잡아온 번데기를 키워서 노예로 삼고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처리하게 한다.

일본왕개미의 집단 간 싸움도 처절하다. 적을 일대일로 마주하고 더듬이나 다리를 물어 일단 상처를 입힌 다음 다른 개미가 옆에서 적의 목이나 허리를 물어뜯어 죽인다. 일본왕개미의 전쟁터에는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는 부상을 입은 개미와 몸통이 잘려나가 처참하게 죽은 개미의 시체가 즐비하다. 개미들이 왜 집단 간에 싸움을 벌이는지에 대해 아직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먹이와 같이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과도한 경쟁도 한가지 이유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인 침팬지의 경우에도 개미처럼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집단 간 서로 살해하는 행동이 관찰된다. 죽고 죽이는 침팬지 집단 간의 폭력은 무리와 무리 사이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패싸움과 가장 유사하다. 싸우는 도중에는 공격하는 침팬지도 뼈가 부러지거나 피부가 벗겨지기 십상이다. 심지어 눈을 잃기도 한다. 침팬지 한마리를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침팬지 서너 마리가 한마리를 죽이는데는 평균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동족을 위해 희생하는 도롱뇽


과거에는 동물들이 같은 종족끼리는 죽이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생물학 연구를 통해 야생에서 동족에게 살해당하는 동물들의 사례가 많 이 있음이 밝혀졌다.


같은 종족을 죽일 뿐만 아니라 잡아먹기까지 하는 엽기적인 동물도 있다. 그중 사마귀가 대표적이다. 사마귀와 같은 곤충은 대부분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한번 교미를 한다. 교미가 끝난 후 암컷 사마귀는 잔인하게도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는다. 교미하고 나면 수컷은 더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미하는 도중에 암컷이 수컷의 머리를 씹어먹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일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교미한 전체 암수 사마귀 쌍 중 약 3분의 1의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2000년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도롱뇽의 알을 야생에서 채집해 부화시켰다. 도롱뇽의 알주머니 안에는 약 1백개의 알이 들어있는데, 한 알주머니에서 나온 새끼들은 모두 같은 형제다. 새로 태어난 도롱뇽 새끼들에게 먹이를 부족하게 줬더니 자신과 다른 알주머니에서 태어난 새끼를 잡아먹는 것이 관찰됐다.

도롱뇽도 사마귀처럼 자신과 같은 종족을 공격해 포식하는 성향이 있다. 먹이가 부족하면 부화한 직후의 어린 동족을 삼킬 정도로 포식성이 아주 강하다. 그리고 도롱뇽은 동족을 잡아먹을 때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쪽을 선호한다. 또 죽은 동족은 먹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쪽을 먹이로 선택한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물체에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있는 도롱뇽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활발한 도롱뇽이 먹히는 빈도가 훨씬 높았다. 빠른 먹이는 놓치기 쉬우므로 둔한 먹이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같은 형제끼리는 잡아먹지 않는다. 어떻게 자신의 형제가 아닌 동족을 구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양서류는 특유의 냄새를 통해 자신의 부모나 형제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또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의 알을 부화시켜 2-3마리의 형제끼리 함께 살게 했다. 10일 정도 지나면 괭이갈매기는 자신의 형제와 다른 배의 형제를 식별할 수 있고 다른 배의 형제를 쪼아 공격한다. 그러나 도롱뇽과 달리 괭이갈매기가 어떤 방법으로 형제를 알아보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동물들은 자신과 가까운 친척 쪽이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이다. 허약한 동물은 어차피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기 마련이다. 그럴 바에야 동족을 위해 희생하는 쪽을 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형제를 잡아먹지 않는 것은 자신의 피붙이를 좀더 번식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동물 세상의 카인과 아벨


알에서 부화한 괭이갈매기가 자신과 다른 배의 동족 을 식별해내 공격한 모습.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생 존하기 위한 방법이다.


형제에게 해를 주지 않는 도롱뇽은 그래도 양반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처럼 거미류, 곤충류 그리고 양서류의 몇몇 동물은 같은 배의 형제까지도 죽이는 무자비함을 보인다. 검은독수리, 물수리, 세가락갈매기, 대백로, 황로 등의 조류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검은독수리는 벼랑 끝에 둥지를 만들고 두개의 알을 낳는다. 새끼 두마리는 3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난다. 먼저 깨어난 형 독수리는 늦게 태어난 동생보다 몸집이 크다. 형 독수리는 동생이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무차별한 공격을 시도한다. 1978년 미국 가제트박사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발표한 관찰 결과에 따르면 형 독수리는 3일 동안 동생을 1천5백69번이나 쪼아댔다고 한다. 이렇게 쪼임을 당한 동생은 결국 죽고 만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행동이 어미 독수리 앞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미는 쳐다보기만 할 뿐 한번도 말리지 않는다.

형제를 죽이는 새들은 대부분 약탈하는 성향이 강하며 상대방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갈고리 모양이나 돌출된 모양의 부리를 지녔다. 이런 무기가 없으면 간단히 알이나 동생을 둥지 밖으로 떠밀어버린다. 실제로 벼랑에 둥지를 트는 세가락갈매기의 경우 형 갈매기가 늦게 태어난 동생 갈매기를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다.

어미새가 사냥해오는 먹이의 양은 제한돼있다. 따라서 어미가 새끼들 모두에게 먹이를 주다보면 부족하기 때문에 모두 죽을 수도 있다. 먹이 쟁탈전에서 약한 새끼들은 강한 새끼에게 먹이를 빼앗긴다. 형제를 죽이는 행동이 큰 먹이를 놓고 함께 먹는 조류에 비해 적은 양의 먹이를 어미로부터 받아먹는 조류에게서 많이 관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형제를 살해하는 행동을 촉진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학설도 있다. 유전자의 지시를 받아 형제를 죽이고 이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돼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적은 양의 먹이에서 자신의 몫을 확보해 살아남으려면 형제를 살해하는 것이 최적의 생존방식일지도 모른다. 경쟁자를 제거하면 자신의 생존기회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식을 죽이는 어미새의 슬픈 사연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야생의 육식성 조류는 새끼 를 여러마리 기를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자식을 희생시킨다.


가끔 부모를 죽인 자식이나 자식을 죽인 부모가 있다는 소식이 보도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거미들은 처음에는 알에 남아있는 영양물질을 먹는다. 그런데 이 먹이가 모두 떨어지면 새끼 거미들은 서로를 잡아먹는다.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거미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어미 몸을 뜯어먹으며 자라기도 한다. 부모를 죽이는 자식의 모습이다. 아니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동물의 세계에서 자식도 수난을 겪긴 마찬가지다. 어미가 자신의 새끼를 직접 죽이는 사례는 주로 병들었거나 발육상태가 나쁜 새끼들을 대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새끼를 안전하게 기를 수 없는 환경이라면 어미는 건강한 새끼라도 희생시키는 생존전략을 선택한다. 즉 여러마리 새끼들을 동시에 기를 수 없을 때 조금 더 자란 새끼를 위해 새로 태어난 새끼는 희생을 당한다. 한마리라도 건강하게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서식하는 멧돼지나 붉은여우, 날카로운 부리를 갖고 있는 황새, 독수리, 매와 같은 육식성 조류에서도 이런 행동이 이따금 관찰된 바 있다.

다른 부모에게 죽음을 당하는 새끼들도 있다. 사자나 랑구어원숭이와 같이 일부다처제인 집단에는 그 집단을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수컷인 이 우두머리를 하렘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하렘이었던 수컷이 늙어서 쇠약해지면 젊고 건강한 다른 수컷이 기존의 하렘을 굴복시켜 내쫓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다. 새로운 하렘은 그 집단에 있던 암컷들의 새끼를 모두 죽인다.

암컷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기간 동안에는 생리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임신도 불가능하다. 만일 집단 내에 있는 새끼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면 암컷이 다시 생리를 시작할 때까지 약 25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새끼를 죽이면 암컷은 약 9개월 후 다시 수컷과 교미해 임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하렘은 암컷이 자신의 새끼를 생산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 또 수컷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기간이 아주 짧다. 따라서 하렘 자리를 빼앗았을 때 그 집단의 새끼를 죽이고 빨리 암컷과 교미해야 자신의 새끼를 많이 남길 수 있다. 즉 자신의 유전자를 좀더 많이 퍼뜨리는 쪽을 선택하는 셈이다.

먹이를 충분히 확보해 한마리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물보다는 동족의 먹이가 돼 번식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의 자손을 많이 남기기 위해 동물들은 동족 간에 서로를 죽인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동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동족살해 행동에 대해 모두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 동물행동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자신과 더 많이 공유하고 있는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이라는데서 동족살해는 동물과 인간의 공통된 행동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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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시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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