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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X선 이야기

남편 외도 증명한 최초의 몰래카메라

방사선은 잘못 쓰이면 인간에게 해를 주지만 잘 알고 올바로 이용하면 인간을 이롭게 하는 모든 인류의 공동 재산이다. 악한 얼굴과 착한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방사선에 대한 ‘엽기적’얘기를 들어보자.


‘포트리스’라는 SF 영화를 보면 미래의 감옥에서 생길법한 장면이 나온다. 죄수들이 자고 있는 동안 천장에 달린 기계가 돌아다니며 죄수들의 머리를 검사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혹시 탈출할 마음은 없는지를 감시하는 장면이다. 비록 공상과학 영화였지만 방사선의 발전과 미래를 잘 표현하는 듯해 순간 전기충격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살아있는 생체의 머릿속을 본다는 것은, 방사선의 존재를 알기 전에는 단지 공상에 불과하거나 엽기적인 방법을 이용해야만 가능했다.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수하 게벨스는 부하 군의관과 함께 수많은 유태인을 대상으로 끔직한 생체실험을 했다. 그 중 가장 엽기적인 것은 마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뇌를 절개해 뇌표면에 자극을 주며 뇌운동영역지도를 작성한 실험이다. 이 실험으로 인해 많은 유태인이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갔지만, 역설적이게도 뇌기능에 대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누구나 자기공명영상(MRI)장치에 들어가서 지시에 따라 20-30분 정도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눈동자를 깜박거리기만 해도 거의 비슷한 뇌운동 시신경 영역지도를 만들 수 있다. 연구대상자의 피해나 통증이 전혀 없음은 물론이다.
 

사람 뇌의 뇌운동영역지도.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수하 게벨스는 유태인을 대상으로 끔찍한 실험을 통해 이런 연구결과를 얻기도 했다.



모든 인류 위한 새로운 광선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인류의 욕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했다. 우리나라의 허준 선생도 스승을 해부할 정도였으며, 서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성복부의 상세한 해부도를 그렸고, 16세기 벨기에의 해부학자 베살리우스는 해부하고 싶은 마음에 시체를 훔치기도 했다. 사실 신체의 내부구조는 모든 의사들이 가져왔던 공통적 관심대상이었으며 특히 살아있는 인체의 신비에 대한 호기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인체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X선이 발견돼 의학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게 됐다. X선은 1895년 11월 8일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1845-1923)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진공방전관을 이용해 실험하던 중 기존의 음극선과는 다른 특이한 광선을 발견했다. 물질을 투과할 수 있으며, 음극선과 달리 전기장이나 자기장을 주어도 진로를 굽히지 않고, 거울이나 렌즈에도 쉽게 반사나 굴절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이 광선의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해서 X선이라고 명명했다. 이 업적으로 뢴트겐은 1901년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됐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특허를 신청했을 터인데 뢴트겐은 전인류가 같이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X선의 존재를 모든 이에게 공개했다. 초기에는 X선을 이용해 뼈의 골절이나 결핵, 폐렴 등을 진단했으나, 그 진가는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총상으로 인한 사망률은 12.9%였지만, 1차 대전의 경우 사망률은 절반 이하인 5.5%로 줄었다. 두뇌총상에 의한 사망률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가슴과 팔, 다리의 총상에서는 X선 촬영을 이용해 총알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정확한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X선은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에 의해 최초로 발견됐다. 사진은 뢴트겐이 자신의 부인 손을 찍은 사진.



군대 안가려다 불구가 된 사연

최근 국내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오모양, 백모양의 몰래카메라 사건과 여름철 수영장에서의 투시카메라 사건도 알고 보면 1백여년 전에 X선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겪었던 일들이다. 최초의 몰래카메라 시조는 X선의 발견으로 연결된다.

뢴트겐이 1895년 X선의 발견을 논문으로 발표하자마자 영국잡지 ‘펀치’(Punch) 와 미국잡지 ‘라이프’(Life)에 희한한 삽화가 실렸다. 가정부가 열쇠구멍을 통하지 않고 작은 기계를 벽에 댄 채 주인부부의 은밀한 행위를 훔쳐보는 삽화가 실린 것이다. 물론 현실성이 없는 상상으로 그린 삽화였지만 당시에는 밀폐된 방에서의 행위가 노출된다는 내용만으로도 쇼킹한 사건이었다. 곧이어 이러한 내용은 강력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1896년 9월 8일자 뉴욕의 ‘일렉트리컬 엔지니어링’(Electrical Engineer)신문에 실린 기사는 이러한 상상이 현실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남편이 하녀와 바람피운다는 증거로 X선 사진을 제출했다는 내용이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부인이 사립탐정에게 수사를 의뢰했고 이때 탐정은 남편의 외도 현장을 잡기 위해 X선을 이용했다. 법원에 제출된 사진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안고 있는 골격 사진이었다. 사진만으로는 골격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나, 법원에서는 이 사진을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여 이혼 성립을 결정했다. X선이 당시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호기심과 신빙성을 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부정(父情)인지 부정(不正)인지 모를 입영기피에 따른 X선 사건도 흔히 생겼다.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쿠바독립문제로 전쟁이 시작돼 미국 플로리다 지역에 징집령이 내려졌다. 이때 철공소를 운영하는 사람의 아들이 군입대를 해야 하는 처지였는데, 아버지가 잔꾀를 내서 군대를 빠질 수 있게 해보겠다고 아들에게 한 방법을 권했다. 쇳가루를 가슴 위쪽에 바르고 X선 촬영을 하면 결핵처럼 보이니까 입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당시의 신체검사 X선 사진은 X선에 대해 잘 모르고 경험도 많지 않은 일반 군의관이 대충 판독하는 처지였다. 판독 도중 가슴에 묻어 있는 쇳가루 때문에 갑자기 평소 못보던 영상이 나오자 군의관은 당황했다. 사진 결과에 대해 서로 의논하다가 군의관끼리 돌아가며 X선 촬영을 계속 반복했다. 그런데 당시의 X선 기계는 성능이 좋지 않아 인체가 받는 방사선의 양이 매우 많았다. 당연히 촬영을 많이 한 가슴 부위의 조직이 죽어버려 그 아들은 불구가 됐다.


에디슨 조수 피해자 공식 1호

초기에는 신체가 X선에 과다하게 노출되면 해롭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피부 발진 등의 사소한 부작용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희생쯤으로 여겼다. 천재 발명가인 에디슨은 X선 촬영기를 이용해 돈 벌 계획을 세웠다. 1896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X선 촬영기를 소개하면서 형광판 위에 손을 올리고 볼 때마다 돈을 받는 일종의 ‘영업’을 했다. 이때 에디슨의 조수 달리는 주로 손님 대신에 자기 손을 넣고 손뼈를 손님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에디슨은 두뇌의 구조와 능력에 대해 관심이 많아 매일같이 조수 달리의 머리를 X선으로 비쳐보곤 했는데, 결국 달리는 머리털이 모두 빠지며 피부세포가 죽어 1906년 죽고 말았다. ‘방사선피해자 공식 1호’가 된 셈이다. 이 사고 이후 에디슨은 X선 연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려 다른 연구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조수 달리는 장기간에 걸쳐 고통을 받았으며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가족과 에디슨은 방사선 부작용의 끔찍함을 생생히 알게 된 것이다.

방사선의 존재는 1896년 프랑스 물리학자 베크렐에 의해 우라늄(U)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1898년 퀴리부인은 우라늄보다 강력한 방사선을 내는 라듐(Ra)과 폴로늄(Po)을 발견해 방사선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방사선이란 불안정한 원소의 원자핵이 스스로 붕괴하면서 내부로부터 방출되는 일종의 광선이다. 햇빛이나 자외선 같은 일종의 전자기파라는 말이다. 방사선의 종류에는 X선, 감마선, 양성자, 중성자 등이 있다. 방사선을 뭐라 딱히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보통은 ‘큰 에너지를 가진 파동이나 입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의는 애매하지만 방사선을 특별하게 다루는 이유는 인체나 생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X선 등의 방사선은 광자(빛의 입자, photon)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이 생체를 통과할 때 세포 속의 원자와 분자를 ‘흥분’시킨다.

즉 세포를 이루고 있는 분자나 원자의 최외각 전자궤도에 존재하는 불안정한 전자를 자극해 궤도에서 이탈시킨다. 궤도에서 이탈된 전자는 분자사이를 떠돌다 이내 주변의 세포에 흡수된다. 이때 DNA나 세포에 손상을 일으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방사선을 많이 쐴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자연상태에서도 방사능 쬐고 있어

방사선의 투과력은 알파선, 베타선, X선, 감마선 순으로 커진다. 베타선은 종이를 뚫지만 알루미늄판은 뚫지 못한다. 그러나 감마선의 경우에는 콘크리트로 막아야 할 정도다. 투과력이 큰 방사선일수록 에너지가 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나 생물은 이러한 방사선을 피할 수 없다. 자연계에 너무나 많은 방사선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자연방사선은 우주, 공기, 땅 속에 널리 퍼져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위험한 방사선(우주선, cosmic ray)을 지구 대기가 걸려준다는 점이다.

인간이 연간 자연으로부터 받는 방사선량은 0.24 래드(rd) 정도다. X선을 한번 촬영하면 0.05 래드 정도의 방사선을 쐬므로 1년에 평균 5번 가량 X선 촬영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사람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 몸 속에는 손상된 DNA를 고쳐주는 효소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효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방사선을 많이 쬐는 경우다. X선 촬영기 앞에서 패션쇼를 하지 않는 이상 일반인이 이 만큼의 방사선에 노출될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의 방사선 관리규정에 따르면 일반인이 방사선에 쏘여도 안전한 양은 1년에 0.5래드다.


인류 진화의 원동력?

인류가 현재와 같이 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자연방사선을 꼽는 과학자가 적지 않다. 자연방사선은 체내 DNA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에 따라 돌연변이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DNA의 돌연변이는 반드시 나쁜 영향만을 끼치지 않는다. 돌연변이의 결과에 따라서는 환경에 좀더 유리한 기능을 가진 DNA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만년의 진화과정을 통해 유익한 돌연변이가 계속 쌓여 현재의 인류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어떤 연구자는 적은 양의 방사선에 쏘일 경우 오히려 번식력의 증가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짚신벌레를 방사선이 투과하기 힘든 납으로 된 용기 내에서 키우는 그룹과 자연상태에서 자연방사선을 받으며 키우는 그룹을 비교한 결과 오히려 방사선피폭을 줄인 그룹의 번식력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방사선 하면 무턱대고 위험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반인으로서는 실제로 위험할 정도의 방사선에 쏘일 경우는 핵전쟁, 핵발전소의 사고 등 비상재해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 따라서 자연생활 속의 또는 건강진단을 위한 방사선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일정 시기마다 적절한 방사선 검사를 받으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방사선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으로 방사선검사를 기피하다 조기진단의 기회를 늦추거나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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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정태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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