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 전용’ 우주에 맞선 위대한 패배자들
우주를 꿈꾼 여성들
타냐 리 스톤 지음
김충선 옮김│돌베개
216쪽│1만 3000원
1959년 초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인간을 지구 궤도로 올려보내려는 머큐리 계획에 박차를 가하며 최고 기량을 가진 우주비행사 7인을 선발했다. 이들은 ‘사나이다움’을 자랑하며 ‘라이프’ 잡지 표지를 장식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라이프 다음호에는 이들의 아내 7명도 소개됐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거나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말이다. 마치 이것이야말로 영웅 아내의 도리라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주비행사의 헌신적인 아내를 꿈꾸는 대신 직접 우주로 나가보고 싶어했다. 윌리엄 랜돌프 러브레이스 NASA 연구원 주도로 여성도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성을 우주에 보내는 프로젝트 WISE(Woman in Space Earliest)가 시작됐다.
7000시간 이상 비행한 베테랑 비행사인 제리 코브를 비롯해 많은 여성이 우주비행사 테스트에 도전했다. 귓속에 차가운 물을 들이부어 현기증을 유발하거나 방사성 물을 마셔보는 등 가혹한 검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남성 후보들이 불쾌감을 드러냈던 심리검사에서는 월등한 성적을 받았다. 프로젝트는 순항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들의 우수한 성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언론의 관심은 냉랭했다. “당신이 남성과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처럼 예쁜 아가씨라면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을텐데요, 어떤가요?”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이어졌고, 끝내 NASA는 여성을 우주에 보낼 계획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우수한 여성 우주비행사 후보 열세 명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NASA의 문을 두드렸지만, 프로젝트는 끝내 사회 통념과 편견 앞에 좌절됐다.
그러나 이 불운한 실패담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각종 항공우주분야에서 ‘여성 최초’ 기록을 세우며 여성이 나설 자리를 개척했고, 여성 동료와 후배들을 위한 협회를 조직했다. 계속해서 낡은 사회질서에 맞섰고 마침내 1999년 7월 최초의 여성 우주사령관 아일린 콜린스가 컬럼비아호 조종석에 앉게 됐다.
지난해 2월 크리스티나 코크 NASA 우주비행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328일 체류라는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세우고 지구로 귀환했다. NASA는 지난해 12월에는 2024년 수행될 유인 달 탐사계획 ‘아르테미스’에 참여할 남녀 우주비행사 후보 각 9인을 발표하며 여성을 최초로 달에 보내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지금의 여성 우주비행사들이 편견 없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데는,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오랜 세월 맞서 싸운 열세 명의 여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 가장 크고, 가장 빠르고, 가장 치명적인 생물의 진화
굉장한 것들의 세계
매슈 D. 러플랜트 지음│하윤숙 옮김
북트리거│524쪽│2만 2000원
“가끔은 내가 좀 더 행복한 기사를 써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아기 코끼리 같은 거요.”
“당장 내 사무실에서 나가시지.”
단호한 편집자를 1년간 설득한 끝에 마침내 기자인 저자는 아기 코끼리를 만나게 됐다. 이후 전쟁, 집단 학살 등 인간 사회의 암울한 주제를 다루는 불행을 상쇄하고 균형을 이루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독특한 동물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끈질긴 집착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사자랑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어린 시절 다들 한 번쯤 생각해본 문제다. 최상위 동물을 찾고 싶은 욕구는 본능일지 모른다. 그 역시 ‘기네스 세계 기록’ 같은 책을 보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가장 크거나, 힘이 세거나, 극단적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일례로 지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인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인간은 두 개뿐인 암 억제 유전자를 코끼리는 20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는 4500kg에 달하는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뤄지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암 발생을 막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이라크, 쿠바, 에티오피아, 엘살바도르 등 12개국 이상을 누비며 취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놀라운 동물들을 소개하는 어른판 백과사전이다. 특히 눈길 끄는 기사 제목을 써야 하는 기자답게 ‘최대’ ‘가장 빠른’ ‘굉장한’ 등 흥미진진한 어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 등장하는 동물들은 과학계의 사절단이다. 평소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도 동물들이 가진 신비로운 비밀을 보다 보면 어느새 생태학과 환경 보전, 과학사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