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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SF 속 과학기술은 수십 년이 흘러 비로소 실현됐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성장이 한층 더 빨라진 지금 시대의 SF 속 과학기술은 현재의 과학기술과 궤를 같이한다. 이에 2010년대 SF 작품의 과학기술이 현실에선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비교해봤다. 작품은 ‘SF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과 국내 최초의 SF 상인 SF어워드 수상작 중 선정했다.

 

 

● 우주 쓰레기 처리 : 수천 개 위성과 수백만 개 파편, 지구궤도 충돌

그래비티
-2014년 휴고상
-최우수 드라마틱
-프리젠테이션 부문 수상

 

‘임무 중단하라, 다시 말한다 임무를 중단하라’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우주인들에게 다급한 무전이 날아온다. 폭발한 러시아 인공위성의 잔해들이 시속 3만2000km(초속 8.9km)의 속도로 지구 상공 약 500km 저궤도를 돌고 있는 긴급 상황이다.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우주선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우주선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파손됐다. 우주복에 달린 추진 장치로 국제우주정거장(ISS)까지 가야 하는 상황. 제한 시간은 우주 파편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오는 1시간 30분이다.

 

2013년 개봉한 SF 영화 ‘그래비티’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우주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건은 인공위성의 폭발로 발생한 잔해가 지구저궤도를 떠돌면서 시작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인공위성이 폭파되는 경우는 많진 않다. 하지만 그 파편이 굉장히 위협적일 정도로 빠르다는 점, 그리고 파편 수가 우주에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구궤도를 떠돌지만 지구에서 조종할 수 없는 장치 또는 파편을 우주 쓰레기라고 부른다. 2019년 1월 발표된 유럽우주국(ESA)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지구궤도에는 200만 개가 넘는 파편이 떠돌고 있다. 파편의 대부분은 인공위성 등의 기체가 노후화되면서 빠져나온 것들로, 그중 크기 1cm 이하인 파편이 약 128만 개다.


이 파편들은 초속 7.5km 이상으로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보다 낮은 속도로 돌면 중력으로 인해 지구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초속 7.5km는 43초 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달할 수 있는 속도며, 이런 속도라면 크기가 5cm인 파편도 버스와 충돌한 것과 유사한 충격량을 갖는다.


인공위성 수가 늘어나는 만큼 파편의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쓰레기 청소 위성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파편들을 정확히 잡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파편들의 궤도를 레이저나 광학 망원경으로 관측해 예상하는데, 하루이틀만 지나도 실제 궤도는 예상과 수km가량 오차가 생긴다. 더군다나 10cm 이하의 파편들은 관측조차 어렵다.


이 가운데 ESA는 2025년 우주 쓰레기 청소 임무인 클리어스페이스(ClearSpace)-1에 도전한다. 클리어스페이스-1의 목표는 궤도를 돌고 있는 기체를 수거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대상은 2013년 ESA에서 발사했던 소형위성 ‘베스파(Vespa)’다. ESA는 로봇 팔이 4개 달린 체이서를 쏘아 올려 지구 500km 궤도에 진입시킨 뒤, 로봇팔로 베스파를 감싸 안고 함께 대기권으로 떨어져 불타 없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ESA는 이 프로젝트 예산으로 1억2000만 유로(약 1600억 원)을 예상했다.

 

● 분자 센서 : 미각의 시각화, 질병의 냄새를 보는 전자코

냄새를 보는 소녀
-2017년 SF어워드
-만화/웹툰 우수상

 

영화관 방화 현장에서 주인공이 마주친 남자의 몸이 온통 휘발유 그림으로 뒤덮여 있다. 그가 방화범이란 걸 직감한 순간, 주인공은 불현듯 기절해 병원에서 눈을 뜬다. 다행히 주인공의 옷에는 용의자의 냄새가 그림으로 남아 있다. 국화, 라벤더, 무궁화, 쑥부쟁이, 돌양지꽃, 나팔꽃…. 그리고 또 눈에 띄는 그림이 하나 있었으니, 타고 있는 막대 향 그림이다. 주인공은 방화범이 묘지에 들렀을 거라 추정한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웹툰 서비스를 통해 연재된 ‘냄새를 보는 소녀’는 제목 그대로 냄새가 그림으로 보이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 정확히 말하면 냄새를 구성하는 휘발성 미립자와 연관된 그림이 보인다. 실제로 사람의 후각수용체가 해당 물질에서 나온 휘발성 미립자를 인식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실제 사람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미립자를 인식하는 건지 아직 완벽히 알진 못하지만, 냄새를 눈으로 볼 기술은 존재한다. 바로 전자코다. 전자코는 휘발성 미립자를 분석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금속산화물이나 전도성 고분자에 휘발성 미립자를 반응시켰을 때 전기전도도의 차이로 구별할 수도 있고, 휘발성 미립자의 결합에너지를 분석해 어떤 냄새인지 알아내기도 한다. 현재  전자코는 수산물이나 축산물의 부패 정도를 확인하거나 과일의 익은 정도도 판별하는 등 식품 분야에 많이 활용된다.


최근에는 전자코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질병 진단에까지 활용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한 예로, 2019년 10월 이대식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진단치료기연구실 책임연구원은 날숨으로 폐암을 진단하는 전자코 시스템을 개발했다. 검진자의 날숨을 담은 비닐에 탄소 막대를 넣은 뒤, 휘발성 미립자가 충분히 붙은 막대를 분석 장치에 삽입하면 미립자의 성분에 따라 전기저항이 달라져 날숨의 성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폐암 환자 37명과 일반인 48명의 날숨을 채취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기계학습으로 폐암을 진단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완성했다. 알고리즘은 약 75%의 정확도를 보였다.

 

●에너지 하베스팅 : 인체 에너지로 전자기기 작동

꿈의 기업
-2018년 SF어워드
-만화/웹툰 우수상

 

 

2100년 어느 날. 오전 9시 근무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꿈사원들이 하나둘 각자의 캡슐에 드러눕는다. 이내 수면을 유도하는 호흡기가 작동하고 꿈사원들은 스르르 잠이 든다. 렘수면에 돌입한 꿈사원들의 몸에서 만들어진 생체에너지는 소형 캡슐에 담겨 잠을 자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판매된다.

 

2016년부터 연재 중인 웹툰 ‘꿈의 기업’은 사람이 잘 때 생체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이를 추출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품에서처럼 체내에서 만들어진 에너지를 추출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은 아직 고안되지 않았지만, 사람의 활동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나 열을 전기로 변환해 사용하는 방법은 계속 개발되고 있다. 이를 인체 에너지 하베스팅이라고 한다.
에너지 하베스팅의 대표적인 도구는 압력을 전기로 변환시켜주는 압전소자다. 압전소자에 사용되는 결정물질은 평소 양전하와 음전하가 서로 평형 상태를 이뤄 전기적으로 중성을 띤다. 하지만 압력을 가하면 결정의 내부 배열이 틀어지면서 평형 상태가 깨져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를 활용해 2016년 톰 크루펜킨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압전소자가 들어있는 신발을 신고 걸을 때 불이 켜지는 LED 손전등을 개발했다. 신발에 적용된 압전소자는 이론적으로 1m2 당 최대 10W의 전력을 만들 수 있다.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 등을 충전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2016년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팀은 마찰전기를 활용하는 팔찌를 개발했다(사진). 이 팔찌는 섬유 기반의 마찰 나노 발전기와 경량 고분자 태양전지 섬유를 결합해 만들었으며, 다른 물체와의 마찰과 태양광으로부터 전기를 얻는다.
이런 인체 에너지 하베스팅 장치들은 모두 웨어러블 기기 적용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웨어러블 기기는 전기화학적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수명에 제한이 있고 배터리를 재충전하거나 교체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배터리 폐기 시 환경오염 문제도 발생한다. 사람 몸에서 직접 에너지를 얻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은 이런 단점을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전자 두뇌 : 나쁜 기억을 지운다, PTSD 치료

에셔의 손
-2018년 SF어워드
-장편소설 대상

 


‘전뇌’라 부르는 인공 뇌를 컴퓨터 메모리처럼 갈아 끼우는 시대. 기억을 지우는 일을 하는 주인공은 정신과 환자 목록에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을 겪는 한 남성을 발견한다. 전쟁터에서 전투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켜 동료들이 몰살되는 끔찍한 일을 겪은 남성은 주인공에게 자신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청한다. 주인공은 목덜미에서 전뇌와 연결된 케이블 단자를 뽑아, 그의 목덜미에 있는 전뇌 포트에 꼽는다. 잠시 뒤 기억 삭제가 이뤄진다.

 

2018년 출판돼 그해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한 ‘에셔의 손’에 등장하는 핵심 기술은 전자 두뇌다. 전자 두뇌를 얻은 사람들은 훨씬 발달한 뇌 기능을 선보이지만, 컴퓨터처럼 뇌의 기억이 삭제되기도 한다.


전자 두뇌가 없는 현실에서 기억을 삭제하는 연구는 보통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PTSD는 자연재해, 전쟁 등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난 뒤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이다. 집중력이나 기억력 저하뿐만 아니라, 심하면 환청 등의 지각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2019년 김세윤 KAIST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뇌 활성을 조절하는 ‘이노시톨 대사 효소’를 제거하면 공포 기억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으로 밝혔다.


연구팀은 먼저 이노시톨 대사 효소가 없는 유전자 변형 쥐를 만들었다. 그 다음 강한 소리와 함께 전기 자극을 줘 쥐에게 공포 기억을 심었다. 쥐는 같은 소리만 들어도 공포감에 떨었다.

 


연구팀은 이후 전기 자극 없이 소리만 들려줬다. ‘소리가 나도 공포 상황(전기 자극)은 오지 않는다’고 학습을 시킨 것이다. 이는 PTSD 치료에서도 자주 쓰는 방법이다.


원래 이 과정은 오래 걸리지만, 이노시톨 대사 효소를 만들지 않는 유전자 변형 쥐는 공포 기억이 훨씬 빨리 없어졌다. 연구팀은 이노시톨 대사 효소가 없을 경우 이노시톨의 인산화가 이뤄지지 않아,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인 편도체의 일부 인자가 활성화됐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 인공감성지능 : 내 감정 상태 읽어주는 인공지능

-좋아하면 울리는
-2019년 SF어워드
-만화/웹툰 우수상

 

 

 

2014년부터 연재 중인(현재 휴재 중)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은 좋아하면 울리는 알람, 줄여서 ‘좋알람(조.알.람. 이라고 발음한다)’이란 애플리케이션(앱)이 개발되면서 벌어지는 일화를 담았다. 이 앱을 실행하면 나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는 순간, 알람이 울린다.


좋알람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건 현실에서는 초능력에 가깝다. 대신 현실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표정을 인식해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판단하는 인공지능(AI)이 개발되고 있다. 이를 인공감성지능(AEI)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2015년 홍콩 로봇제조회사인 핸슨로보틱스가 개발한 ‘소피아’는 인간의 감정 62가지를 얼굴 표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에 장착된 센서로 상대방의 표정을 인식할 수 있다.
최근 인공감성지능 연구는 사용처에 맞는 표정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에는 한 감정에 대한 사람의 표정이 전 세계 공통이라 여겼지만, 최근 여러 연구결과에서 인종별, 국가별로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이 각기 다르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팀도 올해 9월부터 한국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데이터 수집을 시작했다. 일반인과 전문배우 등 2500명이 참여해 감정 학습을 위한 얼굴 데이터를 만들 계획이다. 최종 데이터와 인공지능 학습 모델, 프로그래밍 코드 등 모든 연구결과는 누구나 연구와 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될 예정이다. 박 교수는 “인간 감정을 이해하는 미래 인공지능을 위해서는 고품질의 공공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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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 기획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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