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MRI, 양자컴퓨터, 인공고기… 첨단기술 속 브릭

◇보통난이도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에 브릭이?     

 

레고(LEGO)로 대표되는 브릭 완구의 가장 큰 장점은 설계도만 있으면 무엇이든 조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조립한 구조물이 의외로 튼튼하다는 점, 조립한 결과물을 손쉽게 변형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안정적인 구조는 주요 소재인 ABS의 물성과 블록 간의 결합방식 덕분이다. ABS는 아크릴로니트릴과 부타디엔, 스티렌의 복합 플라스틱으로, 플라스틱 중 내구성과 내열성, 내화학성 등이 우수한 축에 속한다.


결합방식도 독특하다. 브릭의 상단에는 단추 모양의 작은 돌기가, 하단에는 속이 패인 원통형 구조가 있다. 이를 이용해 브릭을 차례로 쌓으면 상단의 돌기가 하단의 원통형 구조에 알맞게 들어가며 단단하게 결합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브릭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에 적용할 수 있는 부품을 만들었다. 안봉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안전측정연구소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MRI 장치의 영상 품질을 평가하는 장치인 ‘팬텀(phantom)’에 브릭을 소재로 활용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9월 8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98-020-71279-1

 


팬텀은 생물과 유사한 밀도와 부피를 갖는 플라스틱 물질이다. MRI 영상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팬텀을 MRI에 넣고 화상에 왜곡이 없는지, 신호 대 잡음비가 일정한지, 실물과 영상 측정치가 일치하는지 검사한다.


그런데 머리, 무릎 등 신체 일부를 촬영하는 소형 MRI 장치는 촬영 대상에 맞춘 형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팬텀 또한 그에 맞는 형태가 필요하다. 가령 원통형 팬텀은 원통 형태를 촬영하기 위한 MRI 장치에만 사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팬텀을 원통과 직육면체 등의 모듈로 제작했다. 팬텀 상단에 브릭과 결합할 수 있는 돌기를 만들고, 하단에도 브릭이 결합할 수 있는 홈을 만들었다. 팬텀과 브릭을 조립해 사용자가 팬텀의 모양과 크기를 손쉽게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구팀은 브릭으로 제작한 팬텀을 기존 제품과 비교했다. 그 결과, 기존 제품은 형태가 고정돼 한 가지 MRI 장치에만 사용할 수 있는 반면, 브릭으로 제작한 팬텀은 장치 형태에 맞게 변형돼 여러 MRI 장치에 동일한 평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었다.


안 소장은 “MRI 같은 첨단 장비에도 브릭처럼 간단한 구조를 활용할 수 있다”며 “다양한 형태로 쉽게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는 브릭 덕분에 한 가지 장비를 다양한 연구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 절연체를 브릭으로?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첨단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데도 브릭이 응용될 수 있다. 드미트리 즈미에브 미국 랭커스터대 물리학과 연구원팀은 브릭을 쌓아 양자컴퓨터 내에 절연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현재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의 대부분은 초전도 큐비트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0과 1의 이진법 전기신호(비트)로 정보를 처리하는 일반 컴퓨터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측정하기 전까지 0과 1의 정보를 동시에 가지는 큐비트를 이용해 정보를 처리한다. 이를 양자 중첩이라고 한다. 양자컴퓨터는 초전도 상태에서 전자의 스핀이 동시에 여러 상태로 중첩되는 특성을 활용해 구현한다.  


초전도 현상은 매우 낮은 온도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극저온 상태를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절연체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브릭의 절연력을 실험으로 측정했다. 브릭 4개를 수직으로 쌓은 다음 절대온도 4.5mK(밀리켈빈·1mK은 1000분의 1켈빈·0K은 -273.15℃) 수준까지 냉각했다. 이후 가장 위쪽 브릭을 가열하면서 맨 아래쪽 브릭의 온도 변화를 측정했다.


측정 결과 브릭 상단에 70mK~1.8K의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를 가해도 맨 아래쪽 브릭의 온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브릭의 절연 효과가 초저온 상황에서도 유지된 셈이다.


연구팀은 브릭 간 결합방식이 열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고 분석했다. 블록이 결합한 형태를 모델링한 결과, 브릭은 수직으로 결합했을 때 열 이동의 원인이 되는 브릭 간 접촉면적이 매우 작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2019년 12월 23일자에 발표됐다. doi: 10.1038/s41598-019-55616-7

 


브릭으로 생산한 전분 섬유   

 

브릭 완구 팬들은 단순히 브릭을 쌓아 구조물을 만들 뿐만 아니라 램프나 모터 등 전자부품을 추가해 자동으로 움직이는 브릭 장치를 만들곤 한다.


그레고리 지글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식품과학과 교수팀은 브릭과 전동모터를 이용해 전분 섬유를 생산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미세섬유는 인공고기 배양 등 조직공학 분야에서 자주 사용하는 재료다.


연구팀은 실제 판매되는 브릭 완구 모터에 축을 연결해 톱니바퀴를 부착했다. 그리고 이 톱니바퀴를 원통형 드럼과 연결했다. 드럼은  섬유를 합성하는 용기 내부에서 회전하도록 했다.


이어 연구팀은 전분 용액에 전류를 흘려 섬유로 만든 뒤, 원통형 드럼을 회전시켜 섬유를 감아냈다. 누에에서 명주실을 뽑을 때 실타래를 돌려 실을 감아내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에탄올이 포함된 전분 용액에 전류를 흘려 전분 섬유를 합성하기 때문에 장치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연구팀은 전기가 거의 흐르지 않는 ABS 재질 브릭과 브릭에 호환되는 전동모터를 선택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전분 섬유를 인공고기 배양에 필요한 골격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지글러 교수는 “기존에는 인공고기 배양에 플라스틱 섬유가 널리 사용됐다”며 “전분 섬유를 이용한다면 보다 깨끗한 인공고기를 배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푸드 하이드로콜로이드’ 2018년 12월자에 발표됐다. doi: 10.1016/j.foodhyd.2018.12.008

 


브릭으로 재현한 반도체 공장    

 

6월 29일 삼성전자는 실제 반도체 공장을 520대1로 축소한 움직이는 브릭 모형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에 중요한 자동화 시스템과 클린룸 등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브릭 1만5000여 개와 전동모터 등을 이용해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브릭 반도체 공장은 국내 최초 레고 공인작가인 김성완 작가가 8일에 걸쳐 만들었다. 영상은 브릭 연구원이 공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클린 시스템이 작동해 공장 내부에서 먼지 등 이물질이 제거되는 과정까지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반도체 공장같은 대규모 생산설비를 재현하기 위해 실물과 똑같은 공장을 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넓은 부지와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런데 브릭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장영재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자동화 시스템을 가르치는 ‘제조 프로세스 혁신’ 수업에서 학생들이 브릭을 이용해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산업 설비를 직접 만들도록 교육하고 있다.


장 교수는 “시스템 설비가 어떻게 구축되는지는 학생들이 실제로 경험하기 어렵다”며 “브릭을 쌓아 직접 만들어 보면 컴퓨터 모델링으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 디자인

    유두호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컴퓨터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