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어려워요 | 문학강의
문과 출신 중에 소위 말하는 ‘수포자’가 많다면 이과에는 ‘국포자’가 판을 친다. 국포자는 국어 포기자의 줄임말로 그만큼 국어가 어렵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국포자들에게 문학은 암초 같은 존재다. ‘운율’이니 ‘심상’이니 그저 외우는 것도 하루이틀. 문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없는 걸까.
비유법(比喩法) [비ː유뻡]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작가, 특히 시인은 정서를 비유와 상징을 통해 드러낸다. 왜 굳이 빙빙 돌려 말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우리들의 일상 언어에도 비유는 매우 자주 등장한다. 줄임말을 많이 쓰는 청소년들의 화법을 ‘급식체’라고 부르는 것은 청소년을 급식에 비유한 결과다.
비유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2012년 크리쉬 사티안 당시 미국 에모리대 신경학과 교수팀은 실험을 통해 참가자들이 ‘그는 힘든 하루(bad day)를 보냈다’는 직설적 문장과 ‘그는 거친 하루(rough day)를 보냈다’는 비유적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거친’이라는 수사적 비유가 있는 문장을 읽을 때, 촉감과 관련된 신경 영역이 더 많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독자가 문장 속 인물의 고단함을 피부로 느끼듯 생생하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doi: 10.1016/j.bandl.2011.12.016
한편 비유를 이해하는 데는 언어적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우반구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의 우반구는 중의성, 추론 등 다중적 해석이 가능한 상황에서 적절한 해석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우반구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회사는 감옥이다’라는 은유적 문장을 ‘갇혀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등 함축적인 언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관련어: 대유법, 상징
반어법(反語法) [바ː너뻡]
겉 내용과 속마음을 반대로 말하는 표현법을 반어법이라고 한다. 진술 자체에는 모순이 없지만 겉으로 표현한 말과 속뜻이 다른 경우다. 반면 진술 자체에 모순이 있으면 ‘역설법’이라고 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대표적인 역설의 사례다.
반어나 역설로 모순된 상황을 감지하면 우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이를 해결하려고 한다. 단순히 말 그대로 이해하는 것 외에 추가적인 정보처리가 이뤄진다. 이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인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을 수행하는 전전두엽 등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원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반어법을 이해하는 것은 고차원적인 정보처리가 필요한 과정”이라며 “전전두엽의 대상피질은 갈등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하이파대 연구팀은 이를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뇌 전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빈정대는 말투와 중립적인 말투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반면 손상이 없거나, 후두엽에 손상이 있는 환자는 문제없이 두 말투를 구분했다. doi: 10.1037/0894-4105.19.3.288 연구팀은 전전두엽이 손상돼도 업무 능력에 차이는 없지만 인지의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결론지었다.
▪관련어: 역설법, 아이러니, 패러독스
심상(心象/心像) [심상]
시는 추상적인 대상을 독자가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으로 표현한다. 이때 언어에 의해 마음속에 그려지는 감각적 영상을 ‘심상’이라고 한다.
뇌과학적으로 눈과 귀, 코, 혀, 피부 등 감각기관에서 수집된 정보들은 각각의 수용기를 거쳐 뇌의 시상에 도달하고, 시상에서 정보를 종합해 대뇌피질로 전달한다. 일반적으로 오감은 자극과 반응이 일대일 대응을 이룬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하나의 자극에 대응해 두 개 이상의 감각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배우는 내용이다. 후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은빛 비린내’,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푸른 종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심상은 독자의 감각을 더욱 자극해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2010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임상 심리학 리뷰’를 통해 심상이 감각 신호에 반응하는 특정 뇌 영역을 자극해 정서 유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doi: 10.1016/j.cpr.2010.01.001
이와 유사하게 심상을 떠올리는 동안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실제 해당 감각의 지각 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doi: 10.1016/j.cogbrainres.2004.02.012 결국 문학에서 사용한 심상이 독자의 뇌를 자극해 결과적으로 독자의 정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관련어: 정서, 공감각
의인화(擬人化) [의인화]
사람이 아닌 대상을 마치 사람처럼 대해 표현하는 방법을 의인화라고 한다. 독자들에게 대상에 대한 친근감을 유발해 심리적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다. 꿩을 의인화한 ‘장끼전’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수꿩인 장끼가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등장하는 설정은 사실만 두고 보면 다소 이상하지만(꿩이 가부장적이라니!) 우리는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이는 인지과학에서 ‘정신화(mentaliz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정신화는 1960년대 후반 등장한 심리학적 개념으로,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인식하고 머릿속으로 이해하려는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해 타인의 행동과 의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2014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은 의인적 사고를 하는 뇌 부위가 정신화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연구팀은 실험자 83명의 뇌 구조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분석한 결과, 실험자들이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한 의인성을 인식할 때 정신화와 마찬가지로 좌측 측두정엽의 회백질 부위가 관여함을 알아냈다. doi: 10.1093/scan/nst109
▪관련어: 의인법, 활유법, 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