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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게 희로애락이란 프로그래밍에 의한 반응일 뿐

달려라 달려 ‘로보트 재권V’ STEP ❽ 감정 표현

 

우리는 지금까지 로보트 재권V의 팔, 다리, 몸통, 머리를 만들어 전원을 공급하고 인공지능(AI)을 넣었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으면서 주변 상황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로보트 재권V는 어떤 일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봇이 인간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 외에 필요한 조건들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간과의 감정 교류입니다. 내가 힘들 때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로봇, 내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주는 로봇이 진정한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로봇이 아닐까요? 그럼 바로 이런 의문이 듭니다.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얼굴 근육 40개로 표정 300여 개 표현


로봇이 우리 인간과 감정을 교류한다는 것은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다는 전제 하에 성립합니다. 그렇다면 로봇에 인간의 감정을 프로그래밍해서 넣으면 어떨까요? 그런데 감정을 프로그래밍한다는 건 가능할까요?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 뇌에서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감정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서 생겨나고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요? 단지 뇌에서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응일까요? 인간은 도파민이 분비되면 즐거워지고 부족하면 우울해지는 단순한 생명체일까요?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이런 화학 작용의 하나일 뿐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더 많은 비밀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현대 과학이 많이 발달했지만, 인간의 감정을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인간 스스로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잘 모르는데 어떻게 로봇에게 감정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인간과 똑같이 감정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일은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로봇에게 감정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일까요? 불가능하다면 친구 같은 로봇을 만드는 것도 힘든 일일까요?


로봇에게 인간의 감정을 프로그래밍하는 게 힘들다면 생각을 약간 바꿔봅시다. 로봇이 인간처럼 느낄 수는 없어도 인간처럼 표현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목소리에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넣을 수 있겠죠. 애니메이션을 생각해볼까요. 외모에서도 감정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얼굴에 우울함, 초조함, 설렘 등의 감정을 넣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얼굴에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생각해봅시다. 인간은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하지 못합니다. 얼굴에 감정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곤 합니다. 눈, 이마, 눈썹, 코, 입과 입술, 눈썹, 턱, 뺨의 움직임을 찬찬히 관찰하면 어떤 감정 상태인지 높은 확률로 맞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표정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표정을 만드는 얼굴 근육은 40여 개로 분류할 수 있고, 이 근육들의 조합을 통해 300여 개의 다른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표정의 조합이 대부분의 인간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영상인식을 통해 파악하면 인간의 감정 상태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즉, 로봇이 카메라(눈)를 통해서 인간의 표정을 찍으면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프로그래밍 하기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비록 로봇이 스스로 감정을 느낄 수 없을지는 몰라도 내가 힘들 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로봇, 내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주는 로봇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로봇 프로그래밍을 한번 해봅시다. 다음과 같은 알고리즘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❶현관문이 열렸다는 신호가 입력된다. ❷현관으로 접근한다. ❸사람이 들어오면 사람 전방 1m까지 접근한 뒤 멈춘다. ❹사람 얼굴의 위치를 파악한다. ❺로봇의 눈이 사람의 눈의 시선과 일치할 수 있도록 로봇의 머리를 움직여 조정한다. ❻사람의 표정을 보고 감정 상태를 파악한다. ❼기쁜 표정일 경우 활짝 웃는 표정의 애니메이션을 작동시키고 “오늘 밖에서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라고 말한다. ❽슬픈 표정일 경우 슬픈 표정의 애니메이션을 작동시키고 “오늘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집에 있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밖에서 연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고 너무 슬픈 상태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우울한 상태로 현관에 들어섰는데 로봇이 쪼르르 다가와 저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을 합니다. “오늘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로봇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게 될까요. 나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로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로봇은 행복한 삶을 위한 도구


그런데 이 로봇에게는 감정이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로봇을 프로그래밍하는 중에 실수로 7번과 8번의 대사를 바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저에게 로봇이 다가와서 “오늘 밖에서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라고 말하겠지요. 이 로봇이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벌컥 화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로봇은 감정을 가진 게 아닙니다. 단지 프로그램에 따라 반응할 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반응을 통해서 인간이 위로받고 기뻐하며 행복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로봇이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졌는지, 가지지 않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로봇은 다른 기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일 뿐이니까요. 다만 이를 통해서 인간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친구와 같은 도구일 것입니다.


저는 로봇의 존재 목적은 인간이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로봇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보트 재권V에게도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줘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말도 입력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도 열심히 개발해야겠지요.


이렇게 우리가 로보트 재권V에게 여러 감정을 표현하도록 열심히 가르치면 로보트 재권V는 다양한 얼굴 표정으로 다양한 말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러면 로보트 재권V는 이제 일만 잘하는 로봇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감정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는 친구 같은 로봇이 될 것입니다. 정말 좋은 로봇을 완성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로보트 재권V가 우리와 함께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인 촉각 및 힘을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To be continued.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다.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비롯해서 인간과 로봇간의 상호작용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jkhan@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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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한재권
  • 에디터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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