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분명 읽은 책인데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은 적, 없었나요? 이럴 때를 대비해 짧게라도 책 내용과 감상을 기록하는 분들,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책을 기억하는 방식은 가지가지. 과학동아와 시공사는 책 리뷰의 ‘달인’을 찾기 위해 ‘과학도서리뷰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과학도서리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최종 후보 15명 중 ‘리뷰 달인’에 등극한 박세훈 군(서울 화곡중 1학년)을 7월 15일 만났습니다.
“쌍둥이 여동생을 ‘엘사’라고 생각했죠”
박 군이 선택한 도서는 ‘더 위험한 과학책’입니다. 그는 책을 읽은 뒤 자신의 주변 인물과 상황을 통해 책을 재해석하고, 이를 적절한 글과 그림을 담은 발표자료 형태로 만들어 대회에 제출했습니다.
‘더 위험한 과학책’은 우리 일상에서 찾은, 엉뚱해서 위험한 과학적 발상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면서 독자들을 책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중 박 군이 꽂힌 내용은 강을 건너는 기상천외한 방법이었습니다.
저자는 ‘강을 수직으로 뛰어오르거나 강물을 끓여서 건너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강을 건너는 다양한 방법을 이론적으로 검증합니다. 일단 수영으로 건너보려고 하는데, 물살의 속도가 너무 세거나 강 아래 폭포에 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다다르자 너무 위험하다며 바로 포기합니다.
뛰어서 건너면 어떨까요. 맨몸으로, 자전거로, 자동차로 건너는 모든 경우를 계산해보다가 뼈가 부러질 확률을 고려하면 뛰어넘기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물 위를 빨리 달려서 빠지지 않고 건널 수는 없을까요.
박 군은 이 대목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를 떠올렸습니다. 엘사처럼 강물을 전부 얼릴 수 있다면 쉽게 건너갈 수 있겠죠. 인기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도 캐릭터의 발이 닿는 곳을 재빨리 물로 변하게 만듭니다.
박 군은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이 마인크래프트에서처럼 움직인다고 가정하고, 발바닥 면적만큼 강물을 얼리는 데 드는 에너지를 직접 계산했습니다. 얼음의 부력과 비중, 그리고 동생의 발을 직사각형으로 가정한 면적(240cm2) 등을 수식에 적용한 결과 여동생이 한 걸음 디딜 때마다 강물을 얼음으로 얼리기 위해서는 1GW(기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 한 기가 생산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 책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는 주제에도 박 군은 구미가 당겼습니다. 폐종이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박 군은 인간이 종이를 먹어 없앤다는, 다소 과감한 방식을 떠올렸습니다.
먼저 인간이 초식동물처럼 종이의 구성성분인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능력이 있다고 가정했는데요. 다당류인 셀룰로오스가 분해돼 포도당으로 변한 뒤 1g당 4kcal의 에너지를 낸다고 할 때 ‘더 위험한 과학책’은 무게가 약 900g인 만큼 총 3600kcal의 열량을 가진 식량이 됩니다. 밥 한 공기(300kcal)를 기준으로 하루에 세 끼씩 4일간 이 책을 나눠 먹으면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과학도서리뷰대회 심사위원이자 ‘더 위험한 과학책’을 번역한 이강환 박사(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정책보좌관)는 “단순히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떠오른 의문을 직접 계산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며 “책을 먹어서 처리한다는 발상도 신선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떠올리는 과학자의 자질이 충만한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인 이현경 과학동아 편집장은 “저자가 이 리뷰를 본다면 매우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위험한 과학책
“수상자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다소 평범한 텍스트(글) 형식으로 작성한 제 리뷰가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 수 있을지 의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런 의문을 뛰어넘을 만큼 자신감도 있었어요. NASA 로봇공학자 출신인 저자처럼 저도 항공우주 연구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는데요. ‘궤도에 올라가기 어려운 이유’라는 내용이 상당히 인상 깊었고, 이를 바탕으로 달이 지구표면에 쌍곡선 궤도로 충돌하는 상황을 저만의 방식으로 설명해 봤습니다.”
심사위원의 한 마디 / “스스로 풀어 정리한 리뷰가 한 편의 과학 논문이 됐습니다.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한 장(章)을 동영상으로 만드는 데 최소 하루 이상 걸렸어요. 마치 유튜버가 된 것처럼 저 자신에게 ‘책사’라는 닉네임도 붙였어요. 동영상을 만들 때마다 ‘안녕하세요, 책사입니다’라는 문장을 녹음할 때가 참 설렜답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과학과 철학이 한 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이 많아 책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동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위해 책의 내용을 몇 번이고 곱씹었습니다. 다른 어떤 책보다 깊이 있게 읽은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마지막 두 장인 14장과 15장을 동영상으로 만들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심사위원의 한 마디 / “쉽지 않고 분량도 만만찮은 책을 꾸준하게 읽고 성실하게 리뷰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과학도서리뷰대회
과학동아와 시공사가 4월 3일~6월 30일 진행한 ‘과학도서리뷰대회’에는 총 102편이 출품됐다. 대상 도서는 시공사가 발간한 10종의 과학도서로 지정됐으며, 출품 형태는 텍스트(독후감), SNS 게시물, 유튜브 동영상, 팟캐스트 음원 등 형태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1차 심사를 통과한 작품 15편에 대해 최종 심사가 이뤄졌고, 이강환(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정책보좌관), 이현경(과학동아 편집장) 등 두 명이 심사를 맡았다. 수상작은 두 심사위원의 평가점수를 합산해 고득점 순으로 결정했다. 수상자는 7월 10일 과학동아 사이언스 보드 홈페이지(www.scienceboard.co.kr) 등을 통해 발표됐다.
※수상자 상
1명˙문화상품권 50만원과 상패
박세훈(14세) ‘더 위험한 과학책’ 리뷰
최우수상
2명˙문화상품권 20만원과 상패
유수환(14세) ‘위험한 과학책’ 리뷰
김서영(15세)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리뷰
우수상
3명˙문화상품권 10만원과 상패
박혜림(23세) ‘예비교사가 리뷰 하는 과학도서’라는 제목으로 여러 도서 리뷰
박서연(9세)·박하연(8세) ‘괴짜 과학자들의 기상천외한 죽음 실험실’ 리뷰
이동규(28세) ‘더 위험한 과학책’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