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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본유학일기] 동아리, 여행, 프로젝트, 대회로 꽉 찬 여름방학

일본 대학은 한국보다 한 달쯤 늦은 4월 초에 개학한다. 여름방학은 학사 일정상으로 7월 말쯤 시작해 9월 말까지다. 그런데 8월 중순에 꼭 한 번씩은 기말고사나 과제 제출이 있어 체감은 훨씬 짧다.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알차게 방학을 보낸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영미권 대학에 어학연수를 가거나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고향에 가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교에 남아 부활동(일본 대학의 동아리 활동)을 이어나간다. 나도 1~2학년 때는 오케스트라 동아리여서 정기연주회나 합숙훈련으로 여름방학을 보냈다. 


동아리 활동이 없을 때 나는 일본 곳곳을 여행했다. 2학년 여름방학에는 ‘한 번쯤은 후지산에 올라보자’는 늘 갖고 있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후지산은 해발 3776m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1947m)보다 무려 2배가량 높다. 그래도 해발 2000m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 1800m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이것저것 챙겨 당일치기로 후지산 등산을 계획했다. 
한여름인데도 후지산은 겨울처럼 서늘했다. 처음에는 ‘여기가 피서지네’라고 생각하며 신나게 올랐다. 그런데 해발 2500m를 지나자 점점 숨이 가빠지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산소가 부족했던 탓이었다. 주변을 보니 등산객들은 모두 모기 살충제인 ‘에프킬라’처럼 생긴 캔을 들고, 이를 마시면서 등산 중이었다. 깨끗한 공기를 압축해 용기에 넣은 산소캔이었다. 산소캔이 없는 초보 등산객은 산소를 아끼기 위해 남들보다 천천히 이동했고, 끝내 정상에 올랐다.


문제는 하산이었다. 산에서는 해가 일찍 진다고 하지만, 그렇게 일찍 질 줄은 몰랐다. 후지산은 오후 3시부터 해가 지기 시작했다. 손전등은 커녕, 불빛을 비출만한 물건이라곤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은 나는 그때부터 패닉에 빠졌고, 정신없이 뛰어 내려왔다. 주변이 캄캄해지고 안개까지 껴서 거의 조난 직전까지 갔지만, 다행히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2019년 여름방학은 동아리도 그만뒀던 터라 한가롭게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친한 동기가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연구 프로젝트에 같이 도전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여름방학 내내 연구 할 학교 시설과 지원금 30만 엔(약 330만 원)가량이 지원됐다.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뒤,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중 TV에서 우연히 후두암에 걸려 후두를 적출한 환자를 보게 됐다. 입과 혀는 움직이는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자였다. 마침 학교에서 음성인식, 음성변환 등을 배우던 시기라 후두암 환자에게 뭔가 도움이 될만한 것을 만들어보리라 생각했다. 방송에 나온 후두 적출 환자 단체에 직접 연락했고, 방문을 허가받아 환자들을 만났다. 
이때 인공후두라는 전자기기를 처음 봤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의 진동기로, 진동하는 상태에서 목에 대고 말을 하면 목소리가 나와 성대가 없어도 어느 정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기였다. 그러나 늘 한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로봇 같은 부자연스러운 소리만 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는 음성인식 분야 전문가인 도쿄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와 도쿄대병원 이비인후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이런 단점을 해결한 새로운 기기를 개발했다. 손으로 들 필요 없는 목걸이형으로 디자인하고, 음성변환에 쓰이는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이용해 실제 사람 목소리와 유사한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도록 설계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우리는 이 프로젝트로 교내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20년 3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리는 북미 최대 규모 콘텐츠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2020’에 전시 부스도 따냈다. 그 후 몇 달은 전시 준비로 정말 정신없이 지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축제가 취소돼 모든 준비가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기기를 개량해 올해 5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경진대회인 ‘이매진컵’에 도전했다. 팀원 3명 중 2명이 한국인 유학생이었지만 도쿄대 팀이라서 일본팀으로 등록했다. 이 대회도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여담이지만 온라인 진행이 결정되자 MS의 제작팀장은 홍보영상에 쓸 영상이 부족하다며 전 세계 참가팀에 짐벌,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마이크, 삼각대 등 각종 촬영 장비를 보냈다. 각자 동영상을 촬영하게 해 분량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1주일에 30분짜리 동영상을 하나씩, 8주 동안 동영상 8개를 만들었다. 최종 비디오에는 20초 정도만 쓰였다. 동영상 작업이란 게 원래 이런가보다 싶었다. 


다시 대회 얘기로 돌아와, 우리는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여름방학 내내 골머리를 앓으며 고생한 걸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코로나19로 우리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현장에서 빛날 기회는 잃었지만, 온라인 대회도 나름 새롭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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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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