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왜 병에 걸리는 걸까.
병은 신체 내 유전자와 환경요인이나 바이러스, 박테리아(세균)처럼 신체 밖에서 온 물질(항원)의 침투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병의 원인이 신체 내부나 외부 어디에서 오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가진 방어체계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방어체계의 이름이 바로 면역시스템이며, 생물학적으로 매우 오랫동안 보존된, 생존을 위한 생물의 기본 능력이다.
지질학적으로 고생대 초기였던 약 5억 년 전 척추동물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칠성장어와 먹장어처럼 턱이 없는 무악류 척추동물과 상어나 가오리처럼 턱이 있는 유악류 척추동물이다.
약 250만 년 전 등장한 호모(homo) 속(屬)의 인간도 유악류 척추동물에 속한다. 인간에게 중요한 면역 기관인 흉선을 약 4억8000년 전 등장한 상어도 갖고 있다(최근 유전적 연구를 통해 무악류에서도 흉선이나 T림프구, B림프구 등과 유사한 물질들이 확인되고 있다). 아득한 시간을 두고 지구에 등장한 두 생물이 면역시스템의 큰 뼈대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은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오랜 기간 다양한 경로를 개발했고, 그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외부에서 온 물질, 즉 항원의 침투로 세포가 감염되거나 신체 내 항상성을 깨는 유전자 돌연변이 같은 문제로 인해 종양(암)세포가 생기면 이들을 없애기 위해 면역시스템은 끊임없이 감시하며, 적절한 시점에 병증에 대응할만한 강도로 작동한다.
면역시스템은 선천(내재) 면역반응과 후천(적응) 면역반응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선천 면역반응은 몸이 가지고 있는 기본 방어 도구(면역세포)를 활용해 침입자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후천 면역반응은 기존에 있던 방어 도구로는 대응할 수 없어, 침입자에게 대항할 무기를 갖추도록 면역세포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방어 도구를 생성해 침입자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몸은 침입자가 체내에서 증식하는 특징에 맞춰 가장 적절한 면역시스템을 작동해 대응한다.
몸에 해로운 병원체 A와 B, C가 있고, 병원성은 A에서 C로 갈수록 크다고 가정해 보자. 또 병원체 A는 인간의 세포 사이 공간에서 증식하면서 세포 외 감염을 일으키고(박테리아 같은 미생물), 병원체 B와 C는 세포 내부에서 복제하는 병원체로 세포 내 감염을 발생시킬 수 있다(세포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먼저 세포 외 감염을 일으키는 A는 병원성이 낮다는 가정하에 선천 면역반응을 통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피부세포의 장벽에 가로막혀 감염을 일으키지 못했던 박테리아 A집단이 상처가 난 부위를 통해 우리 몸에 침입하면, 이를 먹어 치우기 위해 식세포 등 면역세포가 모여든다.
특히 식세포 중 몸속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호중구가 재빠르게 박테리아가 침입한 현장으로 달려온다. 또 이를 지휘하기 위해 혈액을 따라 몸 전체를 떠돌던 단핵구가 대식세포와 수지상세포 등으로 분화를 마치고 현장에 뛰어든다.
여기서 잠깐, 이렇게 모여든 식세포들과 박테리아 A의 전투 과정을 엿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다. 대체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은 어떻게 박테리아 A가 병원성을 띤 나쁜 침입자라고 판단하고 공격하는 걸까.
그 답은 앞서 언급한 대식세포와 수지상세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세포의 표면에는 병원체와 관련된 분자의 패턴을 인식할 수 있는 톨 유사 수용체(현재 인간에게 10여 종이 확인 됐다)가 존재하는데, 이 수용체가 몸에 들어온 물질이 병원체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린다.
결국 침입 부위로 호중구가 먼저 도착해도,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가 톨 유사 수용체를 통해 침입자를 확인하고 침입자에 대한 공격 개시 명령을 내려야만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참고로 식사를 할 경우, 입안에 들어온 밥알은 저작 운동을 통해 쪼개지고, 위와 장으로 내려간다. 소화관을 거치며 각종 효소의 작용으로 다당류인 녹말에서 단당류인 포도당의 형태로 잘게 부서진다.
외부에서 섭취한 영양분이 최소 단위로 부서지면 몸을 구성하는 물질과 너무 닮아서 면역시스템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영양분이 면역시스템의 공격을 받지 않고 몸에 저장될 수 있는 이유다.
다시 박테리아 A와 식세포의 전쟁터로 돌아가자. 침입 부위로 몰려든 대식세포는 직접 항원을 먹어 치우는 동시에 인터류킨(Interleukin)-12라는 단백질 신호를 발사해 자연살해세포를 활성화한다.
‘인터’는 의사소통 수단을, ‘류킨’은 흰색을 나타내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면역시스템의 효과적인 작동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단백질 신호다.
단핵구나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등은 수십 종의 인터류킨 단백질 신호와 함께 인터페론 군의 단백질 신호를 생성해 면역시스템의 강도를 조절한다(이렇게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단백질을 통틀어 사이토카인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대식세포에서 나온 인터류킨-1은 후천 면역반응의 핵심인 T림프구의 반응을 유도하며, 인터류킨-6은 B림프구의 증식과 항체 분비를 돕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단일 세포일 뿐인 단핵구의 경우 인체 전체로 단백질 신호를 전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보다 수십 조 배 이상 큰 인체라는 우주로 무선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셈이다.
이들의 신호를 받아 활성화된 자연살해세포는 세포막과 세포질을 해체하는 단백질(효소)을 내뿜는 등 선천 면역반응 단계에서 다양한 항원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자살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병원성이 약한 박테리아 A의 침입은 큰 병증없이 끝난다.
이번에는 병원체 B다. 박테리아 A가 들어왔을 때처럼 선천 면역반응이 일어나지만, 병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인간의 세포로 침투할 수 있는 바이러스 B가 정상세포를 감염시켰기 때문이다. 아직 세포 밖에서 머무르는 바이러스 B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B에 감염된 세포까지 동시에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바이러스 B와 식세포, 자연살해세포가 뒤엉켜 싸우고 있는 전쟁터에서 지휘관 역할을 담당하는 대식세포와 수지상세포는 이대로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감지한다.
감염된 세포를 처리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발동하는 것이 후천 면역반응 중에서도 세포 매개(cell-mediated) 면역반응이라 불리는 면역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세포들이 면역 과정에 관여한다는 의미다.
그 주인공은 바로 골수에서 태어나 성숙한 뒤 비활성 상태로 몸 곳곳을 탐색하는 T림프구다.
T림프구의 전투 능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이러스 B를 뜯어 먹던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가 일부 조각을 삼켜 그 특징을 반영한 복합 단백질을 표면에 발현시켜야 한다.
면역학계에서는 이 단백질을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라 부르며, MHCⅠ과 MHCⅡ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군으로 구분한다.
MHC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전체 유전자 중에서도 가장 다양성이 큰 단일염기다형성(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을 가지고 있다. SNP는 특정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염기서열의 길이는 같은데 그 구성이 다른 부위를 말한다.
모든 인간은 거의 같은 길이의 MHC 유전자 염기서열을 갖고 있고 그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MHC가 실질적으로 면역계의 지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혹자는 MHC의 발달이 생존과 관련이 깊은 번식 욕구와 함께 진화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친상간이 누적되면 MHC가 거의 비슷해지고, 이는 면역계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진화적으로 다른 가계도에서 배우자를 찾게 했다는 것이다.
다시 바이러스 B와의 전쟁터다. 대식세포 표면에 발현된 MHCⅠ과 꼭 맞는 수용체를 가진 T림프구는 이와 결합해 세포를 곧바로 죽이는 능력을 갖춘 세포독성 T림프구(일부는 해당 항원을 기억하는 기억 T림프구가 된다)로 변신한 뒤 분해 효소를 분비해 감염된 세포의 막과 세포질을 해체함으로써 바이러스 B를 퇴치한다.
병원성이 중간 정도인 바이러스 B는 이 정도 수준의 대응만으로 몸에 해를 끼치지 못하고 사멸할 것이다.
문제는 병원성이 큰 바이러스 C다. 수많은 사람의 정상세포를 빠르게 감염시키고, 고열 등 병증을 일으킨다. 이때는 B림프구가 작용하는 항체 매개 면역반응까지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바이러스 C와 만난 게 처음이라면, B림프구가 이를 무찌를 항체를 생산하기까지 최소 일주일 안팎의 시간이 필요하다.
성인의 경우 골수에서 태어난 B림프구 (사람의 경우 생후 8~9주까지는 간에서 생성된다)는 성숙한 뒤 비활성 상태로 몸 곳곳에 있는 림프 기관에서 대기하고 있다.
B림프구가 활성화하려면 T림프구나 수지상세포 둘 중 하나에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 표면에 발현된 MHCⅡ와 T림프구가 결합하면 면역과 관계된 여러 신호를 내보낼 뿐만 아니라, T림프구는 B림프구의 활성을 돕는 도움 T림프구가 된다.
이 도움 T림프구가 수지상세포와 함께 바이러스 C가 침입한 부위의 주변 림프 기관에 있는 비활성 B림프구를 활성화하면 바이러스 C의 특징을 인식하는 형질세포로 전환되며, 항체를 생성해 바이러스 C에 감염된 세포를 귀신같이 찾아내 공격한다.
그렇다면 항원이 침입한 부위에 비활성 B림프구가 많지 않을 때는 어떻게 될까. 이때는 바이러스 C의 조각을 흡수해 그 특징에 맞는 MHCⅡ를 표면에 발현시킨 수지상세포와 도움 T림프구가 림프절처럼 B림프구가 많이 있는 림프 기관으로 직접 찾아간다.
대식세포는 항원 부위에 정착해 버리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림프 기관에서 대기 중이던 비활성 B림프구는 수지상세포와 도움 T림프구의 도움으로 형질세포가 돼 감염된 세포를 찾아 이동한 뒤 적을 물리친다.
비활성 B림프구가 바이러스 C의 특징을 수지상세포 등에게 교육받을 때 일부는 형질세포가 되지만 일부는 기억 B림프구가 돼 장기간 몸에서 살아남는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 C가 몸에 재침입할 경우 기억 T림프구가 활성화되는 동시에, 기억 B림프구를 통해 1~2일 내로 빠르게 항체를 형성해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독감 예방을 위해 맞는 백신이 바로 이런 원리다. 병원성을 낮춘 항원을 몸에 주입해 미리 기억 T림프구와 기억 B림프구가 생성되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항원이 아니라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정상세포가 암세포가 돼 우리 몸에서 증식하게 되면 어떨까.
암세포도 항원처럼 정상세포에는 없던 물질을 표면에 발현시키는 등 자신이 다른 존재임을 나타내는 신호를 내뿜는다. 이런 신호를 면역시스템이 인식하면 몸속에서는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다양한 공격을 시도한다.
특히 최근 개발되는 항암제는 대부분이 면역항암제인데, 이는 암세포의 표식을 항원으로 인식하는 항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암세포만 특정해 제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은 모두가 갖고 있지만, 성능에서는 개인차가 매우 크다. 일부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면역세포나 관련 신호 중 일부 또는 전체가 정상적으로 생성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앓거나 명확한 이유 없이 급성 백혈병이 생기기도 한다.
면역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면 내 몸의 것을 남의 것으로 인식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고통받을 수도 있다.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든 자가면역질환은 현재도 고치기 힘든 난치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6월 16일 기준 800만 명을 넘어섰다. 인간은 새롭게 출현한 코로나19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개인이 가진 면역시스템으로 이를 극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면역의 능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는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코로나19로 사망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 상황에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집단면역이 생기려면 시일이 필요하므로 코로나19의 전파를 막을 수 있도록 현재로서는 사람 간 밀접 접촉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집단면역은 1840년 영국 의사 윌리엄 파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집단면역이란 용어는 1923년 5월 ‘위생학 저널(Journal of Hygiene)’에 실린 ‘감염의 확산: 집단면역의 문제’라는 논문 제목으로 처음 등장했다.
집단면역은 일반적으로 비말(침 등의 분비물)감염이 가능한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대해 전체 인구 집단의 60~70% 이상이 항체를 가지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공기감염이 가능한 홍역은 95% 이상이 항체를 가져야 집단면역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집단면역은 특정 집단 내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의 비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의 표준 예방 접종 일정표에 따르면 만 12세가 되기까지 홍역, A형 간염, 일본뇌염, 수두, 인플루엔자 등을 예방할 백신 17종을 맞아야 한다. 집단면역이 생길 정도로 충분히 많은 신생아가 이런 백신을 맞았다면, 매우 극소수의 아이는 맞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 위험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으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백신이 없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상황에서 집단면역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현재는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의 비율로 따질 수밖에 없다. 병증을 이겨낸 것을 코로나19의 항체를 획득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를 경험할수록 집단면역률도 상승한다.
각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6월 중순 기준 초기 코로나19의 전파가 빨랐던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는 인구의 57%가 면역을 획득해 가장 높은 집단면역을 형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다 사망자를 기록한 미국 뉴욕은 인구의 25%, 영국 런던은 인구의 17%가 코로나19의 항체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여전히 집단면역 형성 기준에는 역부족이다.
한국의 경우 중앙방역대책본부 주도로 매년 실시되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통해 전국에서 7000명, 코로나19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대구·경북 지역에서 별도로 1000명의 혈액을 얻어 집단면역률을 조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국적인 대유행이 없었고 비교적 강도 높게 확진자와 감염의심자에 대한 격리가 시행됐기 때문에 항체 형성률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의 몸은 일정 변수까지는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있다면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한 변종은 처리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아 집단면역이 형성됐다면 신종으로 재정의해야 할 만큼 강한 변종의 등장을 늦출 수 있다. 물론 어떠한 노력에도 막을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는 위험도 늘 우리의 삶과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