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부라고 하면 흔히 한라산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제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제주 그 자체이기도 한 한라산도 물론 아름답지만, 저마다의 개성을 담은 다른 명소도 많은 지역이다. 지난 호의 제주 서쪽 지역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제주 중부의 다양한 지형을 소개한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천지연폭포, 자연이 만든 예술로 꼽히는 주상절리대, 제주를 축소한 듯한 비양도, 과거 제주의 동물과 식물을 기록한 자연 역사서인 서귀포층 패류 화석산지와 하논분화구를 드론탐험 스타트업 ‘브리칭’이 촬영한 영상으로 담았다.
제주의 폭포 가운데 규모나 경관 면에서 으뜸으로 뽑히는 곳이 천지연폭포다. 천지연은 ‘하늘과 땅이 만나 이뤄진 연못’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폭포 길이는 22m, 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못의 깊이는 20m에 달한다.
천지연폭포의 절벽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져 이동과 침식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됐다. 처음 만들어진 때에는 지금보다 더 바다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폭포의 상부 약 10m는 약 40만 년 전 분출된 용암이 굳은 암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부분이 빠르게 침식되면서 점점 후퇴해 들어갔다. 이때 만들어진 급경사 절벽은 천지연폭포 탐방로에서 볼 수 있다.
폭포 아래에는 서귀포층이 있다. 약 100만 년 전까지 화산 물질과 함께 해양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졌다.
현재 천지연폭포 아래 서귀포층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와는 다른 모습이다. 폭포를 따라 쌓인 퇴적물이 폭포수에 의해 침식돼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받는 커다란 웅덩이가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천지연폭포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 폭포 서남쪽에는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등이 난대림을 이룬다. 숲과 폭포는 각각 담팔수나무와 무태장어의 국내 유일 서식지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인 새들의 서식처 역할도 한다. 천지연폭포 주변 숲에는 원앙과 노랑부리저어새, 황조롱이 등 13종의 조류가 살고 있다.
화구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용암이 급격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대는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이다. 서귀포시 중문동과 대포동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높이 30~40m, 폭 1km, 길이 3.5km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세계지질공원에도 포함돼 있다.
보통 주상절리대는 위쪽 기둥이 가늘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굵어진다. 그러나 제주 주상절리대에는 위쪽 기둥이 굵고 아래쪽 기둥이 가는 역전된 형태가 있다. 역전된 주상절리는 용암층 상부에 화산이 폭발하며 나온 쇄설물이 쌓이면서 용암 내부 온도 분포가 평소와 달라질 때 만들어진다. 용암 전체가 갑자기 식으며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면 일반적인 주상절리대가 만들어진다. 반면 윗부분에 쌓인 쇄설물로 용암의 위쪽이 상대적으로 따뜻해지면 역전된 주상절리가 생긴다.
주상절리대를 위에서 바라보면 벌집이 떠오르지만, 절벽에서 바라보면 일부 휘어지거나 경사진 기둥이 잎사귀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화산에서 분출되는 용암이 해수면 근처에서 평행하게 흐른 결과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 제주 해역 한가운데에서 산이 솟았는데 산꼭대기에서 구멍 4개가 뚫리고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온 뒤 물이 엉켜 기와가 됐다.’
제주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15분을 항해하면 자그마한 제주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섬의 이름은 비양도. 제주 본섬과 주변 섬을 포함해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학설에 ‘제주의 막내 섬’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실제로 최근까지 학계는 조선시대에 쓰인 지리서적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적힌 위 기록의 주인공이 비양도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비양도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면서 수만 년 전에 비양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양도 해안을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송이’도 비양도의 생성 시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흔히 화산 송이로 알려진 붉은 화산암 알갱이는 제주 본섬의 중간산 오름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하지만 바다에서 솟은 수성화산은 송이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 용암이 바다에 의해 빠르게 식어 화산재가 되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처럼 수성화산이 폭발해 비양도가 만들어졌다면, 비양도 해안에서는 송이를 거의 볼 수 없을 것이다.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작은 돌인 스패터가 엉겨 붙고 화산탄이 쌓여 만들어진 스패터콘도 비양도의 볼거리다. 비양도에서는 유난히 큰 화산탄을 만날 수 있다. 화산 분화구에서 멀리 날아가지 못한 스패터가 화산에 다시 떨어져 다른 스패터와 섞이며 크기가 커져 화산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산탄은 특유의 꼬리를 만든다. 일부는 땅에 떨어지며 꼬리가 부서지지만, 비양도에서는 꼬리가 남아있는 화산탄을 찾아볼 수 있다. 비양도 화산탄의 꼬리는 서쪽 또는 서북쪽을 가리키고 있어 비양봉의 화산체 말고도 지금은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화산체가 비양도 서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양도의 또 다른 매력은 아담한 섬의 크기다. 면적 약 0.5km2로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기암괴석과 염습지가 펼쳐진다. ‘애기 업은 돌’이라 이름 붙여진 수형(나무 모양) 암맥은 용암 내부의 가스가 분출되면서 만들어진다. 호니토라고 부른다. 비양도의 호니토는 희귀성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돼 있다.
제주 서귀포 남서 해안 절벽에는 신생대 패류의 흔적을 가득 머금은 절벽이 솟아있다. 서귀포층 패류 화석산지의 높이는 40~50m에 달한다. 이 가운데 하부는 신생대 제3기의 흔적을 담은 서귀포층이고, 나머지 상부 일부는 현무암으로 덮여 있다. 200만~300만 년 전 해양에서 만들어진 서귀포층이 땅 위로 솟아올랐고, 침식되면서 현재의 절벽 모습을 갖추게 됐다. 제주 지하 전반에 넓게 깔린 서귀포층 중에서도 일부가 지상으로 드러나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서귀포층 패류 화석산지에서는 신생대 제3기 말~제4기 초 패류화석이 주로 발견된다. 조개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복족류와 굴족류, 완족류 등의 화석도 발견된다. 패류 이외에도 산호나 고래·어류의 뼈, 상어이빨 등의 화석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까지 120여 종의 화석이 이곳에서 발견됐다. 이들 중 연체동물 화석의 군집을 ‘서귀포 동물군’이라고 부른다. 천해성의 가리비 조개류, 밤색무늬 조개류 등이 속한다. 서귀포 동물군의 일부는 난류성 군집을 이루고, 일부는 한류성 연안계 군집을 이룬다. 한류의 일시적인 영향을 받는 난류 환경에서 퇴적된 것으로 추정된다.
뜨거운 마그마가 지하수와 만나며 발생한 증기가 지각의 틈을 따라 흘러나와 폭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분화구를 마르(Maar)라고 한다. 마르형 분화구는 지표면보다 낮게 만들어지고, 산체의 크기에 비해 매우 큰 화구를 갖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 서귀포 중심에는 국내 유일의 마르형 분화구인 하논분화구가 있다. 백록담보다 넓은 면적을 자랑하며, 제주에서 유일하게 논농사가 가능해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익은 벼가 빼곡한 제주 유일의 논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논농사를 할 수 있는 건 화구호수 덕이다. 마르형 분화구가 화산활동을 멈추고 이 자리에 지하수가 유입되면서 만들어졌다. 15세기 후반부터 분화구 일부를 허물어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지표 틈새로 솟아오르는 물인 용천수로 농사를 짓는다.
하논분화구는 동아시아의 고기후 기록을 간직하고 있다. 하논분화구 퇴적층에는 시기에 따라 한대림부터 온대, 난대림까지 다양한 기후의 식생이 골고루 기록돼 있다. 하논분화구 퇴적층의 식물의 종류를 분석한 결과 1만 8000년 전에는 연평균 기온이 3℃였던 반면, 1만 2000년 전 이후에는 14℃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빙하기 이후 기온이 오른 시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 ‘하논분화구 복원·보전 및 활용’ 발의안을 채택해 논농사 이전의 마르형 분화구를 복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