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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바코드 시대 열린다

명화 ‘진품’ 가려내고, 구제역 이동경로 알려준다


DNA바코드 시대 열린다


지난 8월 3일 검찰은 위작 논란이 있었던 박수근,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가짜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일부 그림에서 나온 반짝이는 성분이 든 물감은 두 화백이 숨진 뒤 개발됐다는 점을 가짜로 의심하는 근거로 들었다. 그림을 소장했던 김용수 씨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양측의 이견은 아직도 팽팽하다. 국내 미술시장의 전체규모가 이미 5500억 원을 넘어섰다. 미술품에 대한 투자열풍이 점차 거세지면서 미술품에 대한 위작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진짜’ 명화를 구별하는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스티커 벗고 나노캡슐 입는다


DNA생물바코드프로젝트 의장인 스콧 밀러 박사가 2005년 2월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CBOL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화여대 나노과학부 최진호 교수는 “이중섭, 박수근 화백이 고유암호를 담은 DNA를 나노캡슐에 담아 물감에 넣은 뒤 그림을 그렸다면 이러한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이 암호화 한 고유 DNA바코드를 제품에 뿌려놓으면, 작품이 불법으로 복제되거나 위조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DNA를 구성하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4개의 염기 가운데 몇개씩 짝을 지어 그곳에 음절이나 단어를 대응시키면 DNA 염기를 배열해 암호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화가가 한글 이응(ㅇ)을 DNA바코드의 암호로 사용했다 하자. 화가는 ‘ㅇ’을 암호화하는 염기를 정할 수 있다. 만약 암호를 AGAG로 정했다면 네 개의 염기를 연결해 DNA 나선을 만들어 그림에 삽입한다. 그리고 이 암호를 해독하면 진품 여부를 가릴 수 있다.

DNA는 유기물이기 때문에 열이나 독성물질에 약하다. 최 교수팀은 나노캡슐로 이 문제를 풀었다. 그는 “DNA바코드는 바코드가 눈에 안 보일 뿐 아니라 제품 표면에 뿌리는 형태이기 때문에 극소량만 있어도 제품 표면에서 바코드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조나 변조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 교수팀은 인공 DNA를 이용한 바코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재료공학 분야의 권위지인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 2004년 7월 19일자에 발표했다.

DNA를 정보단위로 이용했기 때문에 바코드에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막대형식의 기존 바코드보다 6.3×1015배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그만큼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많이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농림부는 지난 7월 전국 한우구이 식당 5곳 가운데 1곳이 소고기의 원산지를 속이거나 표시하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고기 포장지에 바코드로 제품명, 생산지, 가격이 표시돼 있지만 유통과정에서 바코드가 손상되거나 의도적으로 조작된다면 그 폐해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 하지만 DNA바코드로 ‘진짜’ 한우를 구별할 수 있다.

CO I 유전자가 바코드 역할


02제주도에서는 넙치의 꼬리에 바코드를 달아 유통시킨다. 하지만 바코드는 유통과정에서 훼손되거나 위조될 가능성이 있다. 03소의 DNA바코드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되면 먹음직스런 스테이크의 원산지는 물론 소가 먹은 사료의 종류까지 알 수 있다.


생물체는 자신의 고유 DNA를 바코드로 이용할 수 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체에 슈퍼마켓에 진열된 상품처럼 고유의 DNA바코드를 부여하고 이를 판독해 생물체의 이름, 서식지, 습성 같은 생태정보를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는 시토크롬산화효소 Ⅰ유전자(COⅠ, Cytochrome Oxidase Ⅰ)가 바코드 역할을 한다. 한국산 어류의 경우 COⅠ의 염기 645쌍의 배열이 다른 종과는 3% 이상 차이가 나지만 같은 종끼리는 차이가 1% 미만이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충곤 박사는 겉모습이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 한국산 가오리와 홍어의 COⅠ 염기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염기 645쌍 가운데 약 10%인 60쌍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포는 핵 DNA(99%)가 대부분이지만, 미토콘드리아(1%)에도 DNA가 소량 존재한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유전을 하므로 대를 거듭해도 종 내에서 잘 보존된다. 생물종마다 미토콘드리아 DNA가 다른 성질을 이용해 ‘지문’으로 사용한다.

김 박사는 가오리와 홍어에서 DNA를 추출했다. 각 종의 고유한 COⅠ을 찾은 뒤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했다. A, T, G, C 염기에 각기 다른 색의 막대를 대응시켜 염기의 배열에 따라 바코드를 만들었다. 이 배열이 생물의 정보인 셈이다.

그런데 동물 이외에 식물이나 균류, 해조류 등의 바코드는 아직 진행이 더디다. 동물의 COⅠ 유전자처럼 종마다 명확히 구별되는 유전자 부위가 어디인지 과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원 교수는 “지구의 모든 생물을 COⅠ 유전자로 구분하는 것은 무리”라며 “핵 속 DNA인 18S rDNA나 16S rDNA를 복합적으로 이용해 분류하는 방법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rDNA(리보솜 DNA)는 세포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소기관인 리보솜을 구성하는 인자다.

전문가들은 지구에 사는 동식물이 5000만종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이름이 있는 생물은 170만종뿐이다. 나머지 4830만종은 이름도 못 가진 채 살다 멸종된다. 이들에게 ‘이름표’를 달기 위해 2005년 전세계 30개국의 140개 기관이 뭉쳤다. DNA생물바코드프로젝트(Barcode of Life)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포함해 한국해양연구원, 고려대 식물DNA 은행 3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생물의 ‘이름표’에 정보를 담아 국제생물바코드협력체(CBOL, Consortium Barcode of Life)의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한다. CBOL의 홈페이지에는 전세계 3만종 28만점의 COI정보가 수록돼있다.

투명한 유통혁명


DNA생물바코드프로젝트는 전세계 생물의 DNA에 바코드 즉‘이름표’를 붙이는 연구다.


DNA를 바코드로 사용하면 불법 정보조작이 불가능하므로 유통시장이 투명해진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창배 박사는 만두를 예로 들면서 “식품에 DNA바코드 시스템이 쓰이면 유통과정에서 만두에 어떤 김치가 쓰이고 어떤 등급의 고기가 쓰이는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사용자는 이전보다 식품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현재 CBOL은 휴대전화 크기의 DNA바코드 검색기를 개발하고 있다. 김 박사는 “DNA바코드 검색기를 활용하면 몇 분 만에 생물 정보를 알 수 있다”며 “수입육을 검사하는 검역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생물 바코드는 구제역 같은 전염병의 전파경로를 알아내는데도 유용하다. 지난 8월 3일 영국 정부는 런던 길퍼드 농장의 소 64마리가 구제역에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구제역은 소, 돼지 같이 발굽이 두 쪽으로 갈라진 동물에서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구제역은 일단 발병하면 관련 축산물의 국제간 교역이 전면 금지된다. 농림부도 구제역이 발병한지 하루도 안 돼 구제역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영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영국 정부는 구제역이 발병한지 5일 뒤에야 구제역의 발병지를 알아냈다. 만약 소의 유전자를 추출해 바코드 부위(COⅠ)를 찾아낸 다음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면 어떤 소가 병을 퍼뜨리는지 수 분 이내에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소가 이미 DNA바코드를 포함한 사료를 먹었다면 소의 이동경로도 파악하기 쉽다. 또 구제역이 걸린 소가 고기로 가공됐을 위험이 있을 때, 그 제품을 추적하는 경로도 더 쉬워지고 빠르다. 제품에 있는 DNA바코드만 해독하면 되기 때문이다.

DNA바코드는 상품명이나 가격 같이 생산자 위주의 정보가 아니라 원산지, 재배 환경, 유기농 재배 유무등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담는 차세대 바코드 시스템이다. 생산자가 농약을 안 뿌리고 좋은 퇴비로만 기른 식품이라고 하지만, 재배지에 가보지 못한 소비자는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10년 뒤 DNA바코드 시스템이 도입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유기농’ 꼬리표가 붙은 과일을 사며 ‘정말일까?’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면 이제 DNA바코드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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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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