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동수야. 나 어제 토끼와 거북이 읽었는데, 거북이 완전 멋있어. 나 거북이 할래. 너 토끼해 줘. 뭔 말인지 알지?
동수:어 뭔 말인지 알겠다. 폴짝폴짝 뛰는 거~.
MBC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야’의 코너 ‘뭔 말인지 알지’의 한 장면이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면 동수는 정태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것 같다. 그러나 동수는 매번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동수:(자리에 앉아 폴짝 뛰며) 개굴개굴개굴~.
정태:(답답한 듯 울상을 지으며) 그건 개구리고, 내가 하라는 건 ‘깡총깡총’이야. 내가 말하는 건 귀가 길어, 눈이 시뻘게. 밤새도록 달리기 연습했어. 근데 뭐냐. 본 경기에서 퍼질러 자. 완전 육상계의 쓰레기야. 네가 말하는 건 입냄새가 나나봐. 맨날 가글해. 개고르르르. 뭔 말인지 알지?
누구나 한번쯤은 열심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제대로 못 알아들어 답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으리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가 ‘개그야’의 ‘동수’처럼 엉뚱한 대답을 하면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정태’처럼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두 명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 공감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마음 속 단어사전과 짝짓기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문장으로 돼 있고, 문장은 단어로, 단어는 음절로, 음절은 형태소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머릿속에서 형태소, 음절, 단어, 문장을 올바르게 처리해야 한다. 귀로 들리는 소리 가운데 상대방이 말한 이야기만 뽑고 구성요소별로 분절해 이상 없이 들은 뒤, 입력된 말과 자기 마음에 있는 단어사전을 비교해 올바르게 짝지을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뭔 말인지 알지’ 코너의 두 주인공은 약간 멍청해 보이지만 음절 단위로 듣고 이를 자신의 단어사전과 짝짓는 과정엔 문제가 없다.
만약 동수가 음절 단위를 받아들이는데 이상이 있다면 정태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라고 말해도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태가 ‘마장동 건어물 가게’를 이야기할 때 동수는 ‘아하, 장동건. 나 알아’ 라고 대답하는 식으로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개그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정태와 동수의 문제는 루돌프 사슴을 묘사했더니 염소라고 생각하거나 투우를 설명했더니 젖소를 떠올리는 ‘이해의 차이’다. 이해에 대한 심리학 이론은 단순하지 않다. ‘이해 이론부터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해는 ‘입력받은 정보를 자신의 지식수준에 맞도록 재구성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과정’이다.
사람은 계단을 오르듯, 단어의 뜻을 알아야 문장의 의미를 알고, 그 다음에 머릿속에 추상적인 개념이 떠오른 뒤에야 이해했다고 말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 콜로라도대 심리학과 월터 킨취 교수는 ‘이해의 구성-통합 모형’ 논문에서 이해는 책 속의 단어나 문장, 개념 같은 요소가 하나씩 순서대로 처리되는 과정이 아니라 동시에 활성화돼 한꺼번에 병렬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이다.
킨취 교수에 따르면 사람은 글자를 하나 보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글의 전체 맥락에 영향을 받아 문장을 통합적으로 구성한 뒤 내용을 분석한다. 심지어 글에 구체적으로 쓰여 있지 않은 부분까지도 메워 가면서 상황을 능동적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철수는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았다’라는 문장에는 ‘수건’이란 단어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글의 맥락을 고려해 ‘수건’으로 몸을 닦았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이처럼 읽기는 글에 나온 내용을 복사해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이 아니다. 기존에 알던 지식을 끌어 와 문장에 드러나지 않은 정보까지 상황에 맞게 꿰어 맞추는 병렬적인 처리과정이다.
즉 자극을 그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개념에 맞게 구성한 뒤 이를 통합해 이해한다. 이 때문에 비록 문장이 ‘잘뭇대어 있더도라 재구성횅서 무슨 말인지 Øㅣ¤ㅐ훌’(잘못돼 있더라도 재구성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있다.
반전의 재미 vs. 산만하다는 평가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했던 이야기가 뒤집힐 때 ‘반전의 재미’를 느낀다. 보통 사람들은 외부정보를 구성하고 통합한다.영화 ‘식스 센스’의 마지막 장면을 보던 관객은 내용을 이해했다 싶었는데, 소년이 주인공(브루스 윌리스 분)에게 ‘나는 죽은 사람이 보인다’고 한 말을 통해 영화를 새롭게 이해한다. 만약 영화 속 상황을 제대로 이해조차 못했다면 반전의 재미도 못 느낄 것이다.
정태와 동수를 보는 관객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도 토끼로 이해했는데 개구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개구리나 토끼 자체를모르면 이해도, 그에 맞는 반전도 있을 수 없다. 말을 못 알아듣는‘사오정’만 있을 뿐. 사람들은 반전이 많은 영화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코드가 들어간 실험 영화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흔히 ‘산만하다’고 평가한다.
‘산만하다’는 평은 실제 자주 쓰인 반전 때문에 머릿속에서 글의 맥락, 세세한 단어나 문장, 기타 요소를 하나로 통합하기 어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로는 전달하는 내용이 아니라 ‘개그야’의 동수처럼 받아들이는 이가 산만한 상태여서 이해가안될 수도 있다.
네모난 조각을 세모틀에 우겨넣다?
이해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입력받는 과정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정보를 구성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정보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면서 원래 정보에는 없던 내용도 활성화되고, 상대방이 말한 구체적 정보가 자신의 지식구조에 맞게 사라지기도 한다.
발신자(말하는 사람이나 글 쓰는 사람)는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냥 말한 것이지만 수신자(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는 흥미를 갖고 있었던 특정 요소가 보여 그것을 중심으로 이해의 틀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싸게 사는 대화를 하던 도중 갑자기 끼어들어 이야기 주제와 상관없이 당시 여자점원의 외모를 물어보거나 자기의 ‘S’라인 이상형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추상화 과정 때문에 발신자의 메시지가 수신자가 생각하는 메시지 내용과 차이가 난다. 그래서 발신자는 정확히 전달했고 수신자는 정확히 받아들였다고 주장해도 이해의 결과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놓고 일반적으로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만 말한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수신자의 스키마(schema)가발신자의 전달 내용과 차이가 난다’고 표현한다.
스키마는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해의 틀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스키마는 외부의 재료(진흙)를 가지고 자신의 의도나 수준에 맞게 찍어내는 모양틀로 비유할 수 있다. 발신자가 네모난 조각을 줘도 수신자가 자기가 갖고 있는 세모 모양틀에 우겨넣는다면 당연히 둘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개그야’를 보지 않는 독자라면 학교에서 학생들의 이해 수준을 탓하는 교사와 그에 반항하는 학생을 떠올리자. 필자가 말한 상황이 여러분이 떠올리는 상황과 똑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자 이쯤이면 여러분도 ‘뭔 말인지 알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