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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과학적인 게 가장 예술적이다, 미술작품 속 숨겨진 빛의 과학

◇ 보통난이도 |  명화 속 물리학

 

 

흔히 과학적 논리와 예술적 감각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음미체’를 못하는 수많은 ‘이과생’들의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근대 화가들은 원하는 바를 더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 원리를 이용했다. 빛을 이용해 사물을 강조한 렘브란트부터 사람 눈의 인지능력까지 고려한 쇠라까지, 거장들의 작품 속엔 곳곳에 과학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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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삼각형으로 살아나는 입체감 


일기를 쓰듯 자신의 삶을 초상화로 기록한 화가가 있다. 7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긴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이다.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굴곡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했던가. 렘브란트는 자서전의 한 페이지를 채우듯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캔버스에 기록했다.


렘브란트는 대부분의 초상화에 ‘명암법(키아로스쿠로·chi aroscuro)’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키아로스쿠로는 이탈리어로 ‘밝다(chiaro)’와 ‘어둡다(oscuro)’의 합성어로, 그림의 가운데 주요 대상에만 강한 빛을 부여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법이다. 즉 빛에 의한 명암을 극대화시켜 대상에 입체감과 원근감을 준다.


렘브란트는 초상화를 그릴 때 그림의 대상이 몸을 약간 돌린 채 정면을 응시하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빛과 대상, 관찰자를 삼각구도로 배치해 빛이 그림 속 대상의 한편을 강하게 비추도록 했다. 이 빛은 반대편에 놓인 거울이나 흰 벽에 반사되며 대상의 반대쪽 얼굴을 약하게 비춘다. 그 결과 대상의 한쪽 눈 밑에 ‘빛의 삼각형(triangle of light)’ 영역이 만들어진다. 삼각형의 모양과 크기는 대상의 눈과 코의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의 대부분은 이렇게 얼굴 한쪽에는 강하게 빛이 비춰지고, 다른 한쪽에는 빛의 삼각형이 나타난다. 렘브란트가 사용한 독특한 빛의 구도는 그의 이름을 따서 ‘렘브란트 라이트(Rembrandt Light)’으로 불리게 됐다.


이 기법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에게 일종의 역광 효과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입체감을 부여해 얼굴을 매우 돋보이게 해준다. 오늘날 인물사진을 촬영할 때에도 자주 활용되는 기법이다. 


렘브란트는 빛과 그림자에 의해 사물이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는지 오랜 연구와 관찰 끝에 독창적인 화법을 완성했다. 빛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그렸던 그를 미술사학자들은 ‘빛의 마술사’라 부른다. 

 

거친 표면의 난반사가 만들어낸 다채로운 색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빈 땅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건초더미가 시시각각 다른 색깔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 다른 계절과 시간대에 건초더미가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 유심히 관찰해 그림으로 기록했다.


건초더미는 수많은 얇은 건초들이 엉키듯 포개져 있어 매끈한 표면을 가진 물체에 비해 빛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 매끄러운 표면의 물체는 입사되는 빛을 같은 방향으로 반사(정반사)시키는 반면,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물체는 여러 방향으로 빛을 반사(난반사)시킨다.


건초더미처럼 같은 부피 대비 표면적 비율(surface area-to-volume ratio)이 매우 높은 사물은 빛뿐만 아니라, 온도, 습도 등 환경 변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외부환경과 상호작용이 필요한 장치를 개발할 때, 기공이 많은 다공성 구조를 활용하기도 한다.


건초더미는 다양한 빛의 효과를 관찰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모네에게 좋은 모델이자 실험 대상이었다. 표면이 거칠고 모양이 복잡한 건초들이 태양 빛을 다양한 각도로 난반사 및 산란시킬 때 모네 눈에는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펼쳐졌을 것이다. 같은 자리에 놓인 건초더미라도 아침과 저녁 등 시간대에 따라 색이 다르고, 더운 여름과 눈이 오는 겨울 등 계절에 따라서도 색이 다르다.


모네는 건초더미를 연작으로 그린 뒤 프랑스 북부 루앙 지역에 있는 루앙대성당 연작에도 도전했다. 그는 루앙대성당이 잘 보이는 길 건너편 방에 세를 얻고 몇 달 동안 같은 각도에서 성당을 그렸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루앙대성당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장식들로 이뤄져 있어, 건초더미와 마찬가지로 모네에게 빛을 탐구하기 좋은 대상이었다.


크고 작은 첨탑, 뾰족한 아치, 다양한 모양의 장식들은 태양빛의 각도와 아침과 저녁으로 달라지는 빛의 세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화려한 고딕양식의 성당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채로운 변화를 포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망막의 색 인지 원리를 이용한 혼합색  


하나의 걸작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찰과 연습이 필요할까? 가설과 계획을 세우고 통제된 환경 조건에서 반복해서 실험하고, 결과의 평균과 오차를 계산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정리해 분석하는 과정까지. 마치 과학자가 이렇게 연구를 하듯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다.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다.


쇠라는 단 한 점의 그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완성하기 위해 2년간 40여 점의 스케치와 20여 점의 소묘를 그렸다. 파리 근교 세느강에 있는 그랑드 자트 섬을 여러 번 각기 다른 시간에 찾아가 습작하며 빛에 따라 달리 보이는 물의 색깔, 반짝이는 나뭇잎과 물결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자세나 몸의 방향도 수십 번에 걸쳐 그린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요소를 적절히 모아 재배치하는 최적화 과정을 거쳤다.


쇠라는 1884부터 2년간 ‘앉아있는 인물들’ ‘그랑드 자트 섬의 소풍객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습작)’ 등을 그리며 점묘법을 끊임없이 실험했다. 여러 편의 습작을 그리면서 점차 붓질의 크기를 줄여나갔다.


이렇게 완성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미세하고 많은 점으로 모자이크처럼 분할돼 있고, 각 점은 하나의 원색으로 이뤄져 있다. 마치 현대의 디지털화된 이미지의 픽셀(pixel) 같기도 하다. 가령 파란 점과 노란 점이 가까이 있을 때 멀리서 보면 하나의 녹색인 형태로 보인다.

 


19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과학자들은 빛의 본질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며 현대 물리학의 근간을 마련했다. 쇠라의 파격적인 화법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기, 자기, 광학 현상을 수학 방정식으로 통합한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은 여러 가지 색상을 칠한 팽이를 빠르게 돌리면, 새로운 색으로 보이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독일 생리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홀츠는 물감은 섞을수록 검은색이 되고, 빛은 섞을수록 흰색이 되는 색채 혼합 원리를 밝혀냈다.


미국의 물리학자 오그던 루드는 색채 혼합을 포함해 당시의 최신 광학 연구를 정리해 ‘현대 색채론(Color Theory)’을 출판하며 색채과학의 장을 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광학과 색채과학 등 과학지식에 바탕을 둔 새로운 화풍을 구축하게 된다.


쇠라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점 하나하나의 독립적인 색상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점차 뒤로 물러설수록 점의 경계면이 사라지고 병치혼합*으로 인해 혼합된 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쇠라가 그린 여러 편의 그림은 가로 3m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한다. 이런 대작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어차피 관람객은 그림에서 적당히 뒤로 물러나야 한다. 커다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관람객이 뒤쪽으로 물러서면 관람객의 망막에서는 분할된 작은 점들이 각각의 색으로 인식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병치된 색으로 인식된다. 즉, 쇠라가 관람객이 그림에 찍힌 수많은 점을 점의 형태로 인식할 수 없는 충분한 거리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훌륭한 예술작품은 천재들의 타고난 재능에 의해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감각과 재능을 바탕으로 부단한 노력과 실험을 반복했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려는 대담한 용기가 모였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서민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며,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한 초고속 광학과 테라헤르츠 광학 분야 연구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가 있다. mseo@kist.re.kr

 

 

용어정리

*병치혼합 : 각기 다른 색을 서로 인접하게 배치해 착시로 인해 색이 섞여 보이도록 하는 기법. 파란색과 노란색을 서로 인접하게 배치하면 초록색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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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서민아
  • 에디터

    이영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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