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V의 고압인 벼락에도 감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랩이 물건에 착 달라붙는 까닭은? 야누스의 얼굴을 한 정전기의 실체를 밝혀본다.
자동차의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꽂을라치면 ‘으앗’, 동전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때도 ‘깜짝’, 옷을 벗을 때 ‘찌지직’, 치마와 스타킹은 둘둘 말리고, 머리를 빗거나 모자를 벗으면 머리카락은 하늘로 치솟고, 문을 열고 닫을 때 ‘탁 탁’.
대기가 건조한 겨울이 오면 습도가 높았던 여름철과는 달리 우리 주변에서 정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찌지직’ 하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정전기. 어두운 곳에서라면 번득이는 섬광까지 드러내는 정전기의 실체를 밝혀본다.
자동차 문고리의 작은 벼락
한밤 중에 자동차 열쇠를 꽂으면서 느끼는 충격은 전기 쇼크를 방불케한다. 열쇠를 자동차와 마찰시키지도 않았는데 ‘찌지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전기는 마찰이 아닌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발생시킬 수 있다. 접촉을 통해 전자를 주고 받으려면 두 물체의 간격이 최소한 2.5X10-7cm는 돼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속인 열쇠의 뾰족한 부분에서 자동차 문으로 전하가 쉽게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골프장에서 골프채를 들고 있다가 벼락을 맞아 사고를 당하는 예와 같다. 전하덩어리인 번개가 도체의 뾰족한 부분으로 전하를 쉽게 옮기기 때문이다. 즉 자동차 열쇠와 문사이에는 작은 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
수만V의 전압에도 견딜 수 있는 이유
정전기의 발생은 습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습도가 낮을수록 정전기 발생이 잦으며, 습도가 높으면 정전기 발생이 감소한다. 그 이유는 물이 전하를 띠는 입자들을 빠르게 전기적 중성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여름보다 습도가 낮은 겨울철에 정전기 발생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다.
사람이 카펫 위를 걸을 때 발생하는 정전기는 실내 습도가 10-20%일 경우 3만5천V, 65-95%일 경우 1천5백V로 습도에 따라 차이가 크다. 평균 습도가 45% 이하로 낮아지면 인체나 물체에 생긴 정전기가 자연스럽게 방출되지 못하고 머물다 일시에 방전되므로 큰 충격을 느낀다. 그러나 높은 전압에도 인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는 정(靜)전기이기 때문이다. 대전된 풍선의 전압도 수천 V나 되지만 전하량이 매우 작고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기 때문에 풍선을 가지고 노는 우리에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백년 전에 ‘파우더 몽키’라고 불리는 소년들은 전함의 갑판 아래서 대포에 쓸 화약 자루를 집어 올리는 일을 했다. 이 소년들은 맨발로 일을 해야 했는데, 그 이유 역시 정전기가 쌓이지 않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전기는 사양!
일상생활에서는 일시적인 쇼크로 끝나는 정전기지만 산업체에서는 아주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발화점이 낮은 유류를 운반하는 유조차의 경우 간단한 스파크만으로 불이 붙을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발화성이 높은 유류를 옮길때는 특별한 접지장치를 이용해 유조차에서 발생하는 정전기를 접지시킨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전자 기술자들은 전기 회로를 설계, 검사, 수리할 때 정전기를 없애기 위해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회로의 부품은 아주 민감해서 정전기적인 방전에 의해 파손될 수 있다. 실제로 자기기억장치의 데이터 손실은 상당부분 정전기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자 기술자들은 정전기가 쌓일 만한 저항이 큰 물체들을 주변에 놓지 않는다. 그리고 회로 부품들을 다룰 땐 소매와 양말에 접지선이 달린 특수한 옷을 입거나 손목의 밴드를 접지된 표면에 연결시켜서 전하가 쌓이면 바로 방전되도록 한다. 즉 정전기가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또하나의 과학이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대처하나
정전기 발생을 막기 위한 방법은 산업체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근래에는 대부분 빨래를 헹굴 때 ‘섬유린스’를 사용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대개 화학섬유로 만든 옷이어서 마찰로 인한 정전기 발생이 심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섬유린스로 헹구거나 정전기 방지용 스프레이를 뿌려 우리 몸을 보호한다. 섬유린스의 역할은 음이온을 띠고 있는 섬유에 양이온 계면활성제(섬유유연제)를 흡착시켜 전기적으로 중화시키는 원리다.
구두를 이용해 정전기를 방지하는 방법도 있다. 구두 중창에 부직포와 전도성 스펀지, 전도성 우레탄 고무 등이 혼합된 선더롱(thunderon)이란 신소재를 대고 전도성 실로 꿰맨 이 정전기 방지 구두는 3천-1만V 가량의 정전기를 신발을 통해 내보낸다. 선더롱의 역할은 코로나방전을 유도해 인체의 정전기를 중화해 제거하는 것.
자동차 문을 여닫을 때, 열쇠를 꽂으려고 할 때 생기는 정전기 방지를 위해 배기통에 금속줄을 다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리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자동차 표면의 전하가 차체를 따라 지면과 닿아있는 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흘러갈텐데 왜 정전기가 발생할까? 그것은 바로 차체의 연결 부위에 사용된 플라스틱 등에 의해 접지 능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정전기 발생이 잦아지는 겨울철에는 실내 습도가 낮아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옷을 입을 때는 합성 섬유만을 겹쳐 입기 보다는 면과 같은 천연섬유와 같이 입는 것도 정전기 예방을 위한 한 방법. 치마와 스타킹이 말리면 로션을 스타킹에 발라 일시적인 섬유유연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자동차 열쇠를 꽂을 때는 열쇠 끝으로 차체를 톡톡 두드려 주는 것도 정전기 방지에 효과적이다.
머리카락과 빗은 서로 당겨
마른 머리카락을 빗으면 머리카락은 빗에 달라 붙어 따라온다. 머리카락과 빗의 마찰로 인해 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찰 때문에 발생한 전기를 마찰전기라고 한다.
마찰전기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백년경 철학자인 탈레스는 당시 귀부인들이 장식용으로 달고 다녔던 호박에 먼지가 달라붙어 더러워지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찰에 의해 전기가 일어나는 이유는 원자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원자는 전자 질량의 1천8백60배나 되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들로 이뤄져 있다. 일반적으로 물체들이 전기를 띠지 않는 이유는 전자수와 양성자수가 같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기적으로 중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찰을 시키면 질량이 가벼운 전자는 영향을 받아 마찰시킨 다른 물체로 이동한다. 물론 질량이 큰 원자핵은 거의 영향받지 않는다.
전자가 나가버린 쪽은 (+)전하를 띠고, 전자가 이동해 간 쪽은 (-)전하를 띤다. 즉 머리카락과 플라스틱빗을 마찰하면 전자가 튀어나간 머리카락은 (+)가 되고, 플라스틱빗은 (-)가 되는 것이다. 이 때 (+)인 머리카락과 (-)인 플라스틱빗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해 서로 잡아 당긴다. 그러면 플라스틱빗은 무엇과 문질러도 항상 (-)를 띨까? 아니다. 물체들이 마찰로 만들어내는 전하의 종류는 마찰하는 상대 물체에 따라 다르다. 이것을 대전열이라고 한다. 즉 마찰하는 물체에 따라 전자를 쉽게 내놓는 정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전자를 이동시키는 원인은 아직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전기는 전하가 흐르지 않는 정(靜)전기라고 한다.
정전기도 성차별?
전기적 쇼크를 느끼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건조해지는 노인들은 정전기의 피해를 더 많이 호소한다. 전기 쇼크의 감도는 남녀에 따라서 다르다. 남자는 약 4천V 이상이 돼야 느낄 수 있지만, 여자는 약 2천5백V만 돼도 전기적 방전을 느낄 수 있다. 정전기에는 여자가 더 민감한 것이다. 특히 피부 질환이 있는 환자는 정전기를 주의해야 하는데, 수만V의 전압으로 인해 염증이 악화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에 유용한 정전기
일상생활에서 불쾌감을 주는 정전기가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있다. 가정에서 많이 쓰이는 포장용 랩이 그 하나. 식품 포장용 폴리에틸렌막이 물건에 달라붙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정전기다. 랩이 물건에 달라 붙는 이유는 랩을 쫙 잡아당겼을 때 막이 감겨 있던 부분과 떨어지면서(마찰의 효과) 정전기를 띠기 때문이다.
사무실과 학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복사기도 정전기의 특성을 이용해 토너를 OHP 필름에 부착시킨다. 오늘날의 정전기식 복사기는 1938년 미국의 물리학자 체스터 칼슨에 의해 발명됐다. 복사기의 드럼은 정전기를 띠고 있고 실리콘 분말과 같은 물질로 얇게 코팅돼 있다. 원본의 빈 공간, 즉 흰 부분은 밑에서 쏘아올린 빛을 드럼에 반사시켜 정전기를 제거한다. 원본의 검은 부분은 빛을 반사하지 않기 때문에 드럼의 정전기는 그대로 남는다. 이렇게 정전기가 남아 있는 부분은 토너라는 검은 분말을 흡인해 복사지 위에 영상을 만들어낸다.
또 굴곡이 심한 복잡한 면이나 넓은 면적에 고루 도료를 칠하는 정전도장(塗裝)도 정전기를 이용한 방법. 전기나 가스기구, 기계부품, 완구 등을 도장하기 위해서 10만V의 직류 전압을 걸어 정전기를 유도해 놓고 도료를 내뿜으면 고루 흡착된다. 이렇듯 정전기는 불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는 야누스적인 얼굴을 지니고 있다.
18세기 정전기 실험
옛날 사람들은 정전기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마찰로 인해 물체가 먼지를 끌어당긴다는 고대인의 생각에서 출발, 18세기에는 스티븐 그레이와 놀레신부에 의해 재미있는 정전기 실험이 이뤄졌다. 그레이는 길이가 1m, 지름이 2.5cm정도 되는 유리막대를 마찰해 작은 새털이나 금속박을 끌어 당겨봤다. 또 이 막대에 손을 댔을 때 짜릿한 자극을 느껴보기도 했다. 명주실 고리와 놋쇠 철사로 만든 고리를 천장에 매달아 정전기 유도 실험을 해봄으로써 명주실과는 달리 놋쇠를 통해서는 전기가 천장으로 흘러감을 알아내기도 했다.
또 그레이는 사람이 전기를 통하는가 알아보기 위해서 매우 길고 튼튼한 명주 끈을 두가닥 준비해서 양끝을 천장에 매달았다. 데리고 있던 급사 청년을 명주끈을 이용해 공중에 뜨게 한 다음 유리막대를 대전시켜 청년의 발바닥에 갖다댔다. 그런 다음 청년의 머리에 손을 대 봤더니 짜릿한 자극을 느꼈다. 이 실험을 통해 그레이는 전기가 청년의 몸을 통해 발 끝에서 머리 끝으로 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레이의 실험에 흥미를 느낀 놀레 신부 역시 소년을 명주 끈으로 매달고 작게 자른 금속박을 싸 놓은 탁자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도록 했다. 소년에게 대전한 막대를 대는 순간 금속박이 튀어올라 소년의 손에 붙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현상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신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의 실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18세기만 해도 이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기의 정체는 차츰 밝혀졌고 현대 문명을 이끄는 수레바퀴 노릇을 하게됐다.
코로나 방전
공기중에서 두 도체간에 전위치를 주어 불꽃방전을 시킬 때 불꽃이 나기전에 두 도체의 표면 부근에 전류가 통하는 상태. 어두운 곳에서 보면 특히 모퉁이나 뾰족한 데가 빛나 보인다. 공기 중의 이론이 움직임으로써 일어나는데 피뢰침은 이를 이용해 낙뢰를 방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