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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쓰고,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리는 본격 의학 웹툰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시스템도 개판이고 이러니 돌팔이 짓을 할 수밖에요!”
“너처럼 이것저것 간 보는 놈은 사람 못살려.”


한국대병원 중증외상센터 백강혁 교수가 쉴 새 없이 사이다(?) 발언을 쏟아낸다. 독자들은 이런 주인공의 모습에 열광한다. 작가컴퍼니가 제작하고 네이버 웹툰에서 2019년 12월 16일부터 연재 중인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의 이야기다. 


‘외과적 무균상태 등 전문 의학 지식이 돋보인다’ ‘상급 병원 관리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팩트와 픽션이 적절히 섞였다’ 등 전문성을 칭찬한 댓글이 눈에 띈다. 순수 의학 웹툰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두 작가를 만났다.

 

스토리 작가는 현직 의사

 


골든아워는 동명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웹툰의 스토리 작가이기도 한 이낙준 씨(필명 ‘한산이가’)가 네이버 시리즈에서 2019년 3월부터 쓰기 시작해 지금도 연재 중이다.


웹툰의 배경은 가상의 국내 최고 대학병원인 한국대병원 중증외상센터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한국대병원에 부임한 백강혁 교수가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여기에 항문외과 펠로우(임상강사) 출신이자 백강혁 교수의 1호 제자인 양재원, 중증외상팀 간호사이면서 ‘조폭’이라는 별명을 가진 서하나(소설에는 ‘백장미’로 등장)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이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서 진정한 의료진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한 축, 이들이 근무하는 중증외상센터가 처한 현실과 부조리한 시스템에 맞서는 과정이 또 다른 축이 돼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씨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현직 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웹툰의 배경은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중증외상센터다. 이 씨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가 2018년 쓴 책 ‘골든아워’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며 “국내 중증외상센터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부제를 ‘골든아워’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씨는 “중증외상센터를 묘사하기 위해 해외 논문과 임상 사례 보고서를 숱하게 찾아본다”고 덧붙였다. 

 


웹툰에는 수술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대사는 매우 현실적이며 전문적이다. 가령 ‘중엽은 그나마 괜찮고 우하엽은 다 망가졌어. 하엽절제술로 끝낸다’와 같은 식이다. 이 씨는 “수련의 시절 응급실과 중환자실 경험을 떠올리며 대사는 최대한 현실감을 살려 표현한다”고 말했다. 대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러스트나 각주를 옆에 추가한다. 이 장면에는 좌측과 우측 폐를 그리고 해당 부위에 상엽, 중엽, 하엽을 써넣었다. 


‘자이포이드 프로세스(Xiphoid process·명치 끝에 만져지는 연골)’ ‘심낭압전(심근과 심낭 사이의 공간에 혈액이 고여 심장이 눌리는 현상)’ ‘유두부종(Papilledema·눈 내부의 시신경 부종으로 주로 뇌압 상승을 시사함)’ 같은 전문 의학 용어도 해설을 달아 그대로 대사에 녹인다. 이 씨는 “독자들이 의학 지식에도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장면에 필요한 의학 용어를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림 작가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골든아워의 전문성은 그림 작가인 홍비치라 씨의 역할도 크다. 홍 씨는 대학에서 출판만화를 전공하면서 인체해부학을 배우며 메디컬 일러스트에 흥미가 생겼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의학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실을 토대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의학 지식을 활용하는 의약계나 의료산업계에서 많이 활용된다. 


홍 씨는 “우연한 기회에 안면 성형시술법을 메디컬 일러스트로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이후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며 “인체 기관, 수술법 등 지금까지 그린 메디컬 일러스트 작품만 수천 점”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해부학 서적을 독학하고 메디컬 일러스트 작품을 따라 그리며 훈련했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의학적 지식을 이해해 세밀화로 표현해야 하는 만큼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홍 씨는 “첫 작품의 경우 100번 이상 수정해 완성하는 데 1년 정도 걸렸다”고 회상했다.

 


홍 씨는 미국미용성형외과학회(ASAPS)가 발행하는 ‘미용성형외과학회지(Aesthetic Surgery Journal)’ 2015년 1월호에 게재된 국내 성형외과 전문의의 논문에 안면거상술(늘어진 피부를 당기는 기법)을 묘사한 메디컬 일러스트를 실었다. 이에 대해 안면거상술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쉐럴 애스턴 미국 뉴욕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는 논평에서 “수술 방법에 대한 그림이 명확하고 과정을 잘 묘사했다”고 평가했다. doi: 10.1093/asj/sju038 


골든아워는 만화인 만큼 메디컬 일러스트보다 정교함은 덜하지만 여전히 의학적 고증에 상당한 시간을 쓴다. 원작 소설을 토대로 홍 씨가 각색해 초안을 그리면 이 씨와 함께 한 장면 한 장면 사실과 다른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골든아워 한 회 작업에만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홍 씨는 “골든아워를 작업하면서 의학 서적을 찾아보는 건 기본이고, 메디컬 일러스트 작품들도 많이 참고한다”며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경력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유튜브가 맺어준 인연


이 씨와 홍 씨가 골든아워로 의기투합하게 된 계기는 유튜브다. 이 씨는 유익한 의학 지식을 대중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동료 의사 2명과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닥프)’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 8월 개설한 뒤 현재 구독자만 약 55만 명에 이른다. 홍 씨도 닥터프렌즈의 구독자다. 


이 씨는 닥터프렌즈를 통해 웹소설인 골든아워를 웹툰으로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고, 이 얘기를 들은 홍 씨는 바로 웹소설을 찾아 읽었다고. 홍 씨는 “작품을 읽자마자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인공인 백강혁 교수의 캐릭터를 그려 이 씨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2월 4일 닥터프렌즈 동영상은 웹툰 1화 리뷰로 꾸렸다. 웹툰 장면마다 이 씨가 의도를 설명하고 뒷이야기도 전했다. 이 자리에서 이 씨는 “골든아워의 수익을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에 기부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이국종 교수님이 직접 연락해 환경이 더 열악한 곳에 써달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의사인 이 씨의 어린 시절 꿈은 소설가였다. 홍 씨의 꿈은 만화가였다. 이 씨는 “앞으로는 모든 학문이 융합되는 추세인 만큼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두면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홍 씨는 “어린 시절 꿈꾸던 만화작가가 됐지만 결국 의학을 거쳐 꿈을 이룬 셈”이라며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기회가 운명처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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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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