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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지는 곳
산소가 희박한 킬리만자로의 해발 4300m 고지에서 10시간 동안 카메라를 세워두고 얻은 사진이다. 별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길게 내려온다. 정상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지닌 불빛도 산 가운데에 길을 만들었다.]
적도의 설산, 킬리만자로 정상 위로 별들이 쏟아지듯 흐르고 있다. 별빛은 수만 광년을 날아오는데 정작 우리 눈에 들어오기 전에 오염된 대기와 구름에 번번이 막힌다. 하지만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는 대기의 먼지 층과 구름보다 높아, 별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는 남위 3°, 거의 적도에 위치하고 있다. 북반구에서는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일주운동).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다. 남반구에서는 별들이 천구 남극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적도에서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자리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여기서 별들은 수직으로 뜨고 진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조금씩 휘어지면서 북극성과 천구 남극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린다. 적도에서는 해와 달도 거의 수직으로 뜨고 진다.
정상까지 오르는 코카콜라 vs 위스키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또 특별한 등산 장비 없이도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험난하지 않고 올레 길처럼 편안하다. 산이 높은 만큼 넓어서 완만한 경사를 며칠씩 계속 걸어서 올라간다. 물론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소가 희박해져 고산병을 조심해야 한다. 잡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천천히 걷기만 하면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봉우리가 조금씩 다가온다. 차가 올라가는 길이 없으므로 그저 두 다리만 믿고 걷고 또 걸어야 한다. 킬리만자로 정상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개다. 이 중에서 가장 쉽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코스가 동쪽의 마랑구 루트다. 탄산음료 마시듯 쉽게 오를 수 있다고 해서 ‘코카콜라 루트’라는 별명도 있다. 서쪽에서 오르는 마차메 루트는 반대로 ‘위스키 루트’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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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겨울, 밀림과 빙하가 공존하는 곳
낮에는 여름, 밤에는 겨울. 하루 동안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 아래에는 열대 밀림, 정상에는 만년설. 산 하나에서 극과 극을 경험할 수 있다. 킬리만자로의 매력이다. 입구로부터 꼬박 하루를 걸으면 열대밀림 지역이 나타난다. 한라산(해발 1950m)에서 백두산(해발 2744m) 높이 정도 되는 지역으로 숲이 울창하다. 여기서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콜로버스 원숭이와 검푸른 털을 가진 블루 원숭이를 만났다. 거기서 또 하루를 올라가면 일본 후지산 높이(해발 3776m)에 도달한다. 여기까지 초원지역이다. 검게 그을린 바위와 불에 탄 나무가 많다. 화산의 흔적이 아니라 산불의 흔적이다. 낙뢰로 인한 산불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워낙 건조한데다 고산지역이니 불에 타고 다시 자라기를 반복한다. 특이하게 생긴 식물도 많다. 잎 대신 수염이 자라는 나무, 밑동은 보통 나무인데 가지는 선인장인 식물, 파인애플과 선인장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식물 등이다. 해발 4000m가 넘는 킬리만자로의 고원은 오래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돌무더기와 화산재들이 쌓여 있는 황무지다. 화성에 온 것 같았다. 키 작은 풀과 이끼류 외에는 생명체를 보기 힘든 이곳은 낮에는 적도의 이글거리는 햇빛이 희박한 대기를 뚫고 쏟아지며, 밤에는 고산의 혹독한 추위가 황량한 공간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예전에는 만년설로 뒤덮여 있었지만 지금은 기후변화로 정상에만 빙하가 약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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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새벽이야?!
해가 지면 킬리만자로는 낮과는 다른 곳이 된다. 낮 동안 정상을 성채처럼 감싸고 있던 구름들이 신비하게도 싹 걷히고, 만년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키보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노을이 드리워진 붉고 푸른 하늘 위에 은하수가 빛을 발하고, 해가 있던 방향은 노을이 가신 뒤에도 하얀 빛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황도광). 황도광은 대도시에서는 보기 어렵고 킬리만자로 하늘에서 만날 수 있다. 약 48억 년 전, 가스와 티끌로 이루어진 성운이 수축하면서 태양과 행성과 소행성, 혜성 등이 만들어질 때 어느 천체에도 뭉쳐지지 않았던 티끌들이 지금까지 태양 주위에 남았다. 황도광은 워낙 작아 잘 보이지 않던 이 티끌들이 태양빛이 사라지면서 밤하늘이 어두워지는 절묘한 시점에 빛을 발하는 현상이다. 동이 트기 전에는 해가 뜰 자리 위로, 해가 진 저녁에는 노을이 빛을 잃는 순간에 희미한 빛이 원뿔 모양으로 솟아올랐다가 1시간 내에 사라진다. 황도광이 올라오는 것을 새벽 동이 트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워 서양에서는 ‘거짓 새벽(false dawn)’이라고 부른다. 적도 근처인 킬리만자로에서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별자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밤새 다양한 이야기를 떠올리느라 잠을 잘 수 없다. 북반구의 별자리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해 유럽과 중동 지방에 걸쳐 전해 내려오면서 퍼져나갔다. 남반구의 별자리들은 대항해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지만 불러주는 이 없었던 별무리들은 망망대해에서 길잡이가 되면서 이름이 생겼다. 그래서 고물, 공작, 극락조, 나침반, 날치, 돛, 두루미, 망원경, 물뱀, 시계, 용골, 직각자, 컴퍼스, 카멜레온, 큰부리새, 팔분의, 황새치와 같이 항해에 관련된 용어나 이국의 동물 이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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