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눈이 많이 온 이유는?
눈이 많이 온 만큼 강수량도 늘어났다. 12월 강수량은 60.4mm로 평년(1981~2010년 평균)보다 2.6배나 증가했다. 눈이 많이 오면 봄가뭄이 안 들어 보리 농사가 풍년이라는데 올 봄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평균 기온이 영하 1.7℃(서울은 영하 4.1℃)인 만큼 눈이든 비든 일단 내린 뒤 단단하게 얼어붙어 보리에게는 좋을지언정 사람은 빙판으로 변한 길 덕에 고생 좀 했다.
지난해 12월 눈이 많이 온 이유는 따뜻하고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남서쪽에서 유입되어 겨울철 우리나라를 뒤덮는 찬 대륙 고기압과 만나 남쪽에 강한 저기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기압은 기압 중심에 상승기류가 있어, 구름을 만들며 비나 눈을 만든다. 상승기류에 수증기가 많이 포함돼 있을수록 두터운 구름을 만들고, 구름에서 내리는 비(혹은 눈)도 많아진다.
저기압뿐만 아니라 고기압도 눈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바다 덕분이다. 바다는 눈을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은 비열이 높기 때문에 겨울에도 공기에 비해 쉽게 차가워지지 않아 찬 공기를 만나면 수증기를 내보낸다. 중국·러시아 대륙쪽에서 불어온 차가운 공기(고기압)가 비교적 따뜻한 바다 위를 지나가면서 대량으로 수증기가 유입돼 구름이 생겼다. 12월에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서쪽에서 눈이 많이 온 이유다.
여름 강수량만큼 눈이 온다면
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여름에 비오는 것처럼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뭐든지 적당한 것이 중요하다고, 실제로 여름철만큼 눈이 온다면 생각만으로도 재앙이다. 2012년 7월, 한 달 동안 온 강수량은 448.9mm로 이를 적설량으로 환산하면 한 달 동안 눈이 녹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약 4m 49cm나 쌓인다. 어지간한 2층 건물 높이다(적설량은 강수량의 약 10배로 계산한다).
2011년 2월 11~14일까지 강원 동해안 지역에 온 폭설에서 눈으로 인한 피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강원도 동해시에 나흘간 102.9cm나 눈이 내리는 등 717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약 30cm의 눈이 온 경북 경주시는 주요 도로는 빠른 제설 작업으로 27%만 통제됐지만, 차선과 인도의 구분이 없는 작은 규모의 이면도로는 75%가 통제됐다. 길 세 개 중 하나는 막힌 것이다. 30cm 강설로 인한 피해가 이 정도인데 15배에 달하는 폭설이 쏟아질 경우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눈 속에서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삽을 들고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이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나라 겨울철에 영향을 미치는 시베리아 고기압은 대륙에서 만들어지는 아주 건조한 기단이다. 눈을 내리게 할 만큼 중간에 수증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은 서해가 유일하다. 여름철에 영향을 미치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열대바다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까지 접근하는 내내 바다를 지나 수증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덕분에 폭설 등 재난에 대비하는 소방방재청에서는 눈이 5cm정도 올 경우에 대비해 재난을 대비한다.
함박눈이 잘 뭉쳐지는 이유는?
즐거움과 재난을 동시에 주는 눈이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화학식 H2O, 물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H2O가 눈만이 아닌데도 언제나 눈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연인들은 첫눈이 오는 날 추억의 장소에서 만나고, 눈이 가득 쌓인 날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놀기 마련이다. 눈싸움은 해도 비싸움은 못들어봤다.
구름이 된 수증기가 눈이 되는 현상은 흔히 빙정설이라고 알려진 베르게론-핀다이젠 설로 설명한다. 1933년 T. 베르게론이 자신의 저서 ‘눈 생성 과정에 대한 변화 이론’에서 주장한 이론을 1938년 W. 핀다이젠이 발전시켰다. 빙정설은 구름 속에 있는 빙정(얼음씨)에 물방울이 달라붙어 강수 현상을 만든다는 이론이다.
구름의 온도는 구름 내부 높이에 따라 다르지만 하층부를 제외한 중층부는 0℃이하로, 상층부는 영하 40~50℃까지도 떨어진다. 상층부는 물 분자가 기체나 액체로 있을 수 없고, 얼음 알갱이인 ‘빙정’으로 존재한다. 상층부보다 비교적 온도가 높은 중간부분은 빙정과 함께 온도는 0℃ 이하지만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과냉각 물방울이 존재한다. 이 때 물이 얼음보다 수증기압이 높기 때문에 수증기압이 높은 물에서 낮은 얼음으로 물 입자가 이동해 빙정은 점점 덩치를 키워나간다. 이 빙정이 지나치게 커지면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지상으로 떨어진다. 지표 부근 기온이 높으면 비, 빙정 상태로 떨어지면 눈이 된다.
눈은 이 때 습도와 온도에 따라 건설과 습설로 나뉜다. 상대습도가 70% 이상이면 습설, 작으면 건설이다. 또 습설은 영하 1℃~영상 1℃로 비교적 온도가 높을 때 만들어지며, 건설은 영하 10℃이하의 차가운 날씨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눈’은 어떤 눈일까. 날이 따뜻해져서 녹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함박눈으로 대표되는 습설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눈이다. 습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눈을 뭉쳤을 때 눈 사이의 빈 공간을 습기가 메운 뒤 다시 얼어 눈이 잘 뭉쳐지기 때문이다. 영하 10℃ 이하에서 만들어지는 건설은 습기가 부족해 잘 뭉쳐지지 않는다. 덤으로, 스키장에서도 습설이 습기 때문에 스키나 보드가 더 잘 미끄러진다.
눈이 오면 정말 날씨가 따뜻해지나
12월과 1월을 거치면서 문득 ‘눈이 오면 날씨가 따뜻해진다’라는 속설이 생각났다. 유사품으로 ‘가을에는 비 온 뒤에 추워진다’라는 말도 있다. 이론적으로 함박눈이 온 직후에는 따뜻한 기단이 지나가기 때문에 기온이 올라갈 수 있다. 눈이나 비 같은 강수현상은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는 부분에서 구름이 생겨 만들어지는데, 찬 공기와 함께 구름이 지나간 뒤, 다시 따뜻한 공기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함박눈은 가루눈보다는 비교적 습도와 온도가 높을 때 만들어진다. 그러나 기온과 눈은 별로 친한 관계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기온이 높아지면 눈 대신 비가 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은 겨울의 상징이지만 사실 겨울에도 더 많이 오는 것은 비다. 최근처럼 온도가 계속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공중에서 낙하하는 빙정이 중간에 녹아 비로 변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2012년 동안의 1, 2, 12월의 강수량은 연평균 64.3mm로 이 기간의 연평균 적설량 23.1cm(강수량 환산 시 23.1mm)를 제외하면 41.2mm가 비로 내렸다.
날씨가 아주 추우면 오히려 눈이 안 온다는 속설도 있다. 겨울에 영향을 주는 공기는 온도가 낮을수록 습도도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조한 공기일수록 수증기를 머금은 외부 공기를 만나면 눈이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로 지난해 12월 내린 눈처럼 말이다.
앞으로 눈은 얼마나 많이 오고 날씨는 얼마나 추울까. 기상청은 기온과 강수량이 모두 평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평년 기온이 영하 6~ 영하 2℃인 것을 미루어 눈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게다가 1월 하순부터 2월 초는 경험적으로 대설 피해가 많은 시기다. 실제로 눈이 오는 1, 2, 3, 12월 중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것도 1월이다. 보는 것도, 노는 것도 즐거운 눈, 적당히 오고 적당히 추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