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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난이도 | 아무나 못하는 팩트체크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최근 5년간은 미세먼지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집 밖에 안 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안에도 미세먼지만큼 유해한 가스들이 있다면서 집에만 있는 게 최선책이 아니라고도 하더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동아가 팩트체크 해주세요!”

 

우선 장 군에게 연락해보니 직접 ‘과학동아 수사대’가 돼 팩트체크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그래서 1월 14일 오전 장 군과 함께 미세먼지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 향했습니다. 집 안 공기질에 대한 팩트체크가 핵심인 만큼 실내 휘발성 기체를 연구하는 ‘공기 전문가’인 정종수 환경복지연구단 책임연구원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장 군의 집에서 실제로 벌어진 상황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봤습니다.

 

1. 공기청정기는 부엌에 두는 것이 좋다?   YES

                               
# 2019년 12월 겨울에 막 접어들던 어느 날이었어요.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해서 집에 있었죠. 어머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고요. 저는 집에 있는 가장 큰 공기청정기인 에어컨을 켰습니다. 덮어둔 커버까지 빼서 작동시켰습니다. 그런데 필터 청소를 다시 해야 한다며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어요.

 

최신 에어컨의 공기 청정 기능이 뛰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초미세먼지 필터는 물론 인공지능(AI) 기능까지 갖춘 경우도 있죠. 인공지능이 사람의 움직임을 추적해 사람이 많이 머무는 공간부터 찾아 그곳부터 정화하는 겁니다.


이런 에어컨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공기청정기는 오염원이 발생하는 곳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 군은 당시 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육류를 삶을 때는 119μg/m³, 구이를 할 때는 878μg/m³, 튀길 때는 269μg/m³의 미세먼지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는 현재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효되는 기준인 75μg/m³을 크게 초과하는 수치입니다. 


요리하는 어머니 옆에 작더라도 흡입력이 강한 공기청정기를 두면 에어컨보다 더 빠르게 오염원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공기청정기는 성능보다는 오염원 근처에 두고 사용할 때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오염원이 있는 곳마다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둘 때 미세먼지 정화 효과가 가장 큽니다.

 

2. 미세먼지 많은 날, 환기해야 할까?   YES    

                                   
# 이날 제가 저녁을 먹으면서 더 크고 효과가 좋은 공기청정기를 사자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냥 창문을 열고 환기만 해도 된다고 하시는 거에요. 하지만 저는 반대했죠. 미세먼지가 심한데 창문을 열자니요.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결국 결론은 내지 못했습니다. 

 

집 안에 있는 오염원이 미세먼지뿐이라면 공기청정기를 통해 공기 청정 효과를 일부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는 사실 수천 종 이상의 휘발성 기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휘발성 기체는 고농도로 흡입해야 인체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새집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죠. 새집으로 이사하거나 집에 새 가구를 들여놨을 때 몸에 두드러기가 난 적은 없었나요? 벽지나 바닥재와 같은 건축 자재나 가구에는 톨루엔, 벤젠, 에틸벤젠, 자일렌, 스티렌과 같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로 이뤄진 용제(접착제)나 방부제 등이 들어갑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전자기기의 접합 부위도 마찬가집니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끓는점이 낮아 공기 중으로 쉽게 증발하는 액체나 기체 상태의 물질을 말합니다. 이밖에도 살균제나 합성수지에서 담배 연기에 포함된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미량이지만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공기청정기부터 에어컨까지 현재 상용화된 공기 청정 제품은 필터를 기반으로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대개 필터의 성능이 좋을수록 더 작은 입자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어컨과 공기청정기가 휘발성유기화합물과 같은 휘발성 기체를 처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라 그런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은 것이죠. 정 책임연구원은 “거의 모든 휘발성 기체에 대한 측정법과 분석법은 개발된 상태”라며 “휘발성 기체를 탐지해 제거하는 기술은 충분히 상용화될 수 있지만, 시장에서 이런 수요가 적다 보니 제품이 개발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내에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와 결합해 분해를 촉진하는 촉매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 책임연구원팀은 10년간의 연구 끝에 2018년 망간산화물 나노 촉매를 코팅한 필터를 이용해 실내에 있는 다양한 휘발성유기화합물을 100% 제거하는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실험 결과 유해 부산물도 나오지 않았고,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들어 있는 담배 연기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정 책임연구원은 일단 망간산화물 나노 촉매 기술을 공기질 관련 기업에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정부 지원을 받아 직접 루프트케어라는 회사를 창업해 필터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소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휘발성유기화합물 정화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오염된 실내를 정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창문을 열고 환기하는 겁니다. 물론 외부 대기 환경이 좋아야겠죠.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나 신생아처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가족 구성원이 있는 경우에는 하루에 최소 두 차례는 환기를 해주는 게 좋습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이상인 날에도 환기는 해야 합니다. 대기질 정보를 계속 확인하다 보면 농도가 조금은 떨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때 환기를 시키는 게 당연히 더 좋습니다.

 

 

3. 공기 정화 식물로 휘발성유기화합물 제거할 수 있나?   NO  

          
# 며칠 뒤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물은 기본적으로 이산화탄소(CO2)를 흡수해 산소를 내뿜잖아요? 그런데 일부 식물은 단순히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유해한 기체까지 없앨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이게 사실인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죠.    

 

인간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습니다. 식물은 인간과 반대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배출합니다. 그래서 남미 열대우림인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로 불리죠.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이산화탄소를 없애기 위해 집안에 식물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집안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잔칫날이나 유치원처럼 아이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3~4인 가구에서는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루 한두 번 환기를 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휘발성유기화합물같은 휘발성 기체는 어떨까요.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무려 30여 년 전인 1989년 9월 ‘실내 공기 오염 완화를 위한 인테리어 조경 식물(Interior landscape plants for indoor air pollution abatement)’ 보고서를 통해 대나무야자(Chamaedorea seifritzii), 황금죽(Dracaene deremensis) 등 25가지 식물 종이 공기 정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는데요. 


우주인의 생활 공간에 25가지 식물을 각각 하루씩 둔 결과,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 휘발성 기체의 양이 최소 5%에서 최대 90%까지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미세먼지로 인해 대기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친환경 공기 정화 방법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식물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 책임연구원도 호기심이 생겨 고등학교 학생들과 집안에 식물의 수와 기간을 달리해 공기 정화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NASA가 발표한 식물을 포함해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식물을 두고 수주 이상 지나자 일부에서 효과가 나타났다”며 “학생들과 식물의 개수, 기간 등을 달리해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을 추가로 진행했지만 재현성을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과학계에서는 특정 실험 결과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려면 같은 실험법을 이용해 어느 누가 재현하더라도 결과가 오차범위 내에 일관되게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나왔죠. 공기 정화 식물이 휘발성 기체를 정화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현재로선 말할 수 없습니다. 

 


 

‘과학동아 수사대’ 동행 취재 후기 
‘과학 덕후’의 일상에 찾아온 작은 행복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과학동아를 봤다. 매달 모든 기사를 다 읽는다. 얼마 전 미세먼지가 심했던 날 공기청정기를 틀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 공기청정기가 정말 우리 집안을 깨끗하게 해주고 있는 걸까?’ 과학동아에 팩트체크를 신청했는데 덜컥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미세먼지는 너무 많이 회자가 되다 보니 e메일을 보내면서도 선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학원에 가고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 게 일상생활의 전부였던 나의 겨울방학에 찾아온 행복한 일탈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속 과학자를 만나러 간다니 설렘이 앞섰다. 집에서 30분간 차로 달려 도착한 KIST에는 소박한(?) 건물들이 많았다. 뭔가 연구원 같은, 과학적인 느낌의 건물이라고나 할까. 입을 벌리고 바라보는 내게 워낙 오래전에 지은 건물이라 그렇다는 설명이 들렸다(나중에 찾아보니 KIST는 2016년 설립 5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와우!).


굳게 닫힌 문을 몇 개 통과한 나는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직접 과학자를 만났다. 정종수 박사님이다. 박사님께 공기청정기에 대한 질문부터 실내 공기에 대한 질문까지 한꺼번에 쏟아냈다. 언제 과학자에게 또 질문할 기회가 있겠냐는 생각으로 말이다.


박사님께 들은 내용 중 가장 놀란 점은 실내에 미세먼지 외에 유해가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또 유해가스의 인체 영향에 대한 연구나 기술적 대응책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공기 정화 식물로부터 효과를 얻기에는 그 수가 일단 매우 많아야 하고, 최소 수주 이상 필요하며, 그마저도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다는 답변도 뇌리에 박혔다. 


실험실 체험은 정말 흥미로웠다. 휘발성유기화합물과 결합하는 촉매의 성능을 평가하는 분석 기계가 늘어선 모습은 멋졌다. 무엇보다 박사님이 왜 과학자가 됐는지, 특히 대기 분야에서 1985년부터 어떻게 30년 이상 연구를 하고 있는지 듣다 보니 과학자라는 직업을 꿈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을 수 없는 겨울방학을 만들어 준 과학동아에 정말 감사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궁금한 게 있으면 과학동아에 팩트체크 신청해보길 강추합니다.

 

 

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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