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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어려워요 | 초콜릿의 이중생활

 

 

2월 14일, 올해도 밸런타인데이가 찾아왔습니다. 초콜릿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뻐할 커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달콤한 초콜릿이 아주 가끔은 독이 된다는 사실. 초콜릿의 이중성 때문에 행복과 불행을 넘나드는 한 이공계 커플의 이야기를 가상으로 구성해봤습니다. 

 

 

딱정벌레처럼 구조색 띠는 초콜릿


초콜릿은 1500가지가 넘는 성분으로 이뤄진, 현존하는 가장 복잡한 화학혼합물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이 풍미 성분이지만 그중에는 초콜릿을 예쁘게 보이기 위한 인공 색소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렇게 초콜릿에 들어가는 일부 색소가 암을 유발하는 등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현재 식품에 사용되는 식용색소는 총 72종이며, 이 중 인공색소는 17종이 있습니다. 인공색소 중 식품에 가장 많이 첨가하는 색소는 단연 식용 타르색소 9종입니다. 과거에 타르색소로 인한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어 사람들은 여전히 타르색소를 첨가한 식품에 의구심을 품고 있죠. 


이에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착색료로 쓸 수 있는 과자, 캔디류, 초콜릿가공품 등 41개 식품 유형 1454개 제품에서 식용 타르색소 9종의 함량을 분석했습니다. 모든 제품이 사용기준에 적합했고, 인체 위해성이 없다는 사실이 검증됐습니다. 


강윤숙 식품의약품안전처 첨가물포장과 과장은 “72종의 식용색소는 이미 독성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했다”며 “시중에 판매되는 식품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더 새로운 걸 원했습니다. 바로 색소 없이 색깔을 내는 초콜릿입니다. 실제로 색소 없이 알록달록한 초콜릿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리학자, 재료과학자, 식품과학자로 구성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연구팀이 2019년 12월 초콜릿 표면에 독특한 구조를 새겨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구현했기 때문이죠(아래 사진). 

 


구조색은 말 그대로 물체의 표면 구조에 의해 나타나는 색깔입니다. 공작의 날개, 딱정벌레의 껍질에서 볼 수 있는 총천연색이 대표적입니다. 구조색은 빛의 간섭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화학적 원리가 아닌, 광학적 원리로 색을 내는 것이어서 화학 색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구조색을 입힌 초콜릿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다크초콜릿, 뇌 인지기능에도 영향 


초콜릿은 카카오매스 함량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그 기준은 나라마다 다른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카카오파우더 함량이 35% 이상, 카카오버터 함량이 18% 이상인 초콜릿을 다크초콜릿이라고 합니다. 카카오매스를 압출하면 카카오버터와 카카오파우더(코코아)로  분리됩니다.


카카오매스 함량이 높을수록 초콜릿은 쓴맛이 납니다. 설탕이나 바닐라 같은 다른 재료가 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유의 쓴맛 때문에, 혹은 카카오매스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들을 기대하며 다크초콜릿만 찾는 마니아들도 분명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로마린다대 연구팀은 22~40세의 건강한 성인에게 카카오매스 함량이 70%, 유기농 설탕이 30% 섞인 다크초콜릿을 섭취하게 한 결과, 다크초콜릿이 뇌 인지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크초콜릿 48g을 섭취하게 한 뒤 뇌파검사(EEG)를 진행했더니 감마파(25~40Hz)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마파는 기억을 회상하는 등 고차원적인 인지활동에 수반되는 뇌파입니다. doi: 10.1096/fasebj.2018.32.1_supplement.878.10


연구팀은 이런 효과가 카카오매스에 포함된 플라보노이드 성분 때문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플라보노이드는 세포의 산화를 지연시키거나 방지하는 항산화물질입니다. 플라보노이드가 심장병이나 암을 유발하는 활성산소를 없애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물론 겉면에 플라보노이드 함량을 적어놓은 초콜릿 제품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실험으로 플라보노이드가 뇌 인지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초콜릿은 피부에도 좋습니다. 정진호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팀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매스가 피부 탄력을 높인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정 교수팀은 43~86세 여성에게 카카오파우더가 4g 함유된 음료를 24주간 마시게 했죠. 그 결과 실험참가자들의 피부 탄력도가 8.6%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doi: 10.3945/jn.115.217711

 

 

사랑의 묘약? 동물에겐 독약! 


맛있는 초콜릿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눈이 반짝 떠지고 기운이 나는 듯한 느낌도 들죠. 초콜릿에 들어있는 몇 가지 성분들 때문입니다. 


먼저 카카오 열매에는 테오브로민이라는 쓴맛이 나는 알칼로이드(자연에서 질소 원자를 기반으로 이뤄진 화합물) 물질이 들어있습니다. 테오브로민은 그리스어 신(theo)과 음식(broma)의 합성어로 ‘신의 음식’이란 뜻입니다. 테오브로민은 카페인과 비슷한 효력을 냅니다. 초콜릿을 먹었을 때 일시적으로 기운이 나는 이유는 초콜릿에 카페인과 테오브로민이 들어있어서입니다. 


하지만 테오브로민 성분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다량 섭취하면 구토와 흥분, 불안증세가 나타납니다. 심할 경우 심장마비에 이를 수 있습니다. 특히 동물에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 먹었을 때 50%를 사망시키는 독성물질의 양(LD50)이 1kg당 1000mg이지만, 개는 300mg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70kg인 사람은 테오브로민 LD50에 해당하는 양이 70g입니다. 테오브로민이 100g당 약 800mg 함유된 다크초콜릿을 기준으로 초콜릿을 9kg가량 먹으면 문제가 생기는 거죠. 과연 초콜릿을 9kg이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반면 몸무게가 10kg인 개는 같은 다크초콜릿을 400g만 먹어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동물은 테오브로민을 분해하는 속도도 매우 느립니다. 


초콜릿 성분 중에는 페닐에틸아민도 있습니다. 페닐에틸아민은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보통 초콜릿 100g에 페닐에틸아민이 50~100mg 포함돼 있습니다. 누가 초콜릿에 ‘사랑의 묘약’이라는 별명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과학적 이유는 있는 셈이죠. 


하지만 섭취한 페닐에틸아민이 흡수돼 뇌로 전달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뇌 혈관을 둘러싼 세포층인 뇌혈관장벽(BBB)이 있어 포도당이나 산소 같은 뇌에 필요한 극히 일부 물질을 빼고는 뇌에 바로 전달될 수 없으니까요. 초콜릿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진짜 이유는? 그렇습니다. 결국 당 때문입니다. 

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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