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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 세계에 친구를 둔 과학자입니다" 2019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그레그 서멘자 인터뷰

안 어려워요│ 과학동아가 만난 사람

2019년 12월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자연과학대 국제콘퍼런스홀. 백성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주최한 ‘2019 SNU 생명과학 신호전달 및 염색질 심포지엄’에 귀한 친구가 찾아왔다.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였다. 2008년 인연을 맺은 두 과학자는 10년 넘게 서로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받은 동료 연구자이자 친구다. 노벨상 수상 직후여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서멘자 교수는 백 교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틀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과학동아가 단독으로 그를 만났다. 

 

Q.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된 소감은 어떻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노벨상은 대단한 연구를 한 연구자 중에서도 소수만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사실 노벨상 수상 자체를 욕심냈던 건 아닙니다. 현재 암과 심장질환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 연구로 치료제를 개발해 상용화시키는 게 제 최종 목표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면에서 사실 제 목표는 아직 달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노벨상 수상이 그간 저의 연구 성과에 대한 과학계의 인정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기쁘지만, 수상 사실에 기뻐서 들떠 있을 겨를이 없습니다. 현재 제 관심사는 다음 연구로 뭘 할지 결정하는 것이랍니다.    

 


Q. 생물학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습니까?


고등학교 때 정말 좋은 생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그는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고등학교 생물 수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과서 내용만 가르치지 않고 ‘발견(discovery)’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어떤 놀라운 발견을 했는지, 그 과학자가 이런 발견을 하기 위한 과정이 어땠는지 상세히 얘기해주곤 했죠. 사실만 줄줄이 나열된 교과서만 배우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습니다. 덕분에 연구가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방학 때 연구소에서 하계 프로그램도 들었습니다. 이때 제 생애 처음으로 연구라는 걸 경험했죠. 생물학과 유전학이 유독 재미있었고, 그때부터 이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관심이 이어져 하버드대 재학 시절 보스턴 어린이병원 유전학연구실에서 다운증후군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연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학창시절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Q. 과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협력할 수 있는 자세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이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 도중 장애물을 만나곤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겠지요. 바로 해결되면 좋겠지만 실패가 계속될 때도 있을 겁니다.


이럴 때 아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협력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연구실은 연구에 필요한 ‘HIF1-α’ 유전자를 분리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분리했지만, 정상적인 기능이 안 나왔습니다. 대안으로 생화학적 방법이 거론됐고, 이를 이용해 단백질을 정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연구실에는 이 방면의 전문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제 연구실 바로 건너편이 DNA 복제에 관여하는 효소 및 단백질 연구를 하는 톰 캘리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의 연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단백질 분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협력이 가능하면 어떤 분야에 한정되거나 기술에 대한 제약이 없어집니다. 특히 요즘처럼 연구기법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기에는 한 사람이 모든 걸 알기 어렵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력은 단순한 기술의 공유 외에 다른 관점으로 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저의 경우 같은 학교의 연구자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의 연구자와도 협력합니다. 백 교수와의 협력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저는 전 세계에 친구가 있는 셈이네요(웃음).

 

Q. 과학자를 꿈꾸는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똑똑하고 총명한 미래의 과학자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과학이 사회와 멀리 떨어진 학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할 겁니다. 과학자들의 연구는 당장은 쓰임새가 없어 보여도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합니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는 바로 쓰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가령 기초 연구가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예상은 잘 안됩니다. 하지만 과학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Never predictable(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저는 자신의 연구가 어디서 어떻게 활용될지 모른다는 점이 과학 연구의 가장 신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일수록 아주 좁고 한정적인 분야에서 나온 연구 결과가 나중에 다양하고 많은 분야에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과학자로서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 혹여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당장에 성과가 있든 없든 연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설사 내가 연구하는 동안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군가 그 연구를 이어서 성과를 낸다면 그것 또한 나의 성공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과학자를 꿈꾼다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저 또한 지금까지 연구를 하면서 많은 성과를 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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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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