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는 ‘하정우가 고생하면 뜬다’는 속설이 있다. 2013년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폭탄 테러범과 싸워 관객 558만 명 이상을 동원했고, 2016년에는 ‘터널’에 갇혀 치열한 생존기를 보여주며 710만 명 이상을 모았다. 그런 하정우가 다시 재난영화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백두산이다. 2019년 12월 19일 개봉한 영화 ‘백두산’은 백두산이 역사상 최대 규모로 폭발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백두산은 정말 분화할 가능성이 있을까. 영화에 백두산 전문가로 등장하는 이윤수 포스텍 환경공학부 특임교수의 도움을 받아 백두산 분화를 둘러싼 궁금증을 짚어봤다.
궁금증 1
백두산, 실제로 분화할 가능성은?
고요했던 천지가 들끓기 시작하더니 잿빛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며 굉음을 낸다. 화산폭발지수 7.8의 규모로 백두산이 붉은 마그마를 내뿜으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저 실현될 가능성 없는 컴퓨터 그래픽일까?
“백두산은 언제든 분화할 수 있습니다.”
이윤수 포스텍 환경공학부 특임교수는 백두산이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분화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백두산이 분화할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한다는 것이다. 백두산은 언제 분화해도 이상하지 않은 활화산이기 때문이다.
원래 학계에서는 백두산이 마그마의 활동이 끝난 사화산이라고 생각했다. 백두산이 사화산이 아닐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건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약 1000년 전 백두산이 분화했다는 주장이 1990년대 초 처음 나왔고, 2000년대 초에는 백두산에서 화산지진이 처음 포착됐다. 화산지진은 뜨거운 마그마가 움직이면서 주변의 암석을 깨뜨리며 발생한다. 백두산이 활화산일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2017년 영국과 스위스 공동연구팀은 백두산 근처 나무화석의 나이테에서 탄소동위원소 비율을 조사해 946년 하반기 백두산이 분화했다며 분화 시점까지 특정했다. 당시 분화는 규모가 커 ‘밀레니엄 대분화’로도 불린다. doi: 10.1016/j.quascirev.2016.12.024 현재 화산학자들은 홀로세(Holocene·약 1만1700년 전부터 지금까지)에 한 번이라도 분화하면 활화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백두산, 울릉도, 제주도가 활화산에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백두산은 분화 조짐이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 2002년 6월 말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는 리히터 규모 7.3의 심발지진(지하 300~700km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일어났다. 진원은 지하 580km 부근이었다. 이 지역은 동쪽에 위치한 태평양판이 일본열도 밑으로 수렴하는 경계와 맞닿아 있다.
문제는 이후 백두산 지역에 주기적으로 화산지진이 관찰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창바이산화산관측소(Chang-baishan Volcano Observatory) 연구팀이 2012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02~2006년 화산지진이 월 평균 72회 나타났다. 이전과 비교해 10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1999년 7월~2011년 12월까지 관측된 지진은 약 3900회에 달했다. 백두산에서 관찰된 화산지진은 천지 아래 50km 이내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마그마가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doi: 10.1029/2012GL052600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팀은 2002~2009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백두산 인근 지표의 움직임을 조사한 결과 천지 정상을 중심으로 화산체(화산 분출물이 화구 주변에 쌓여 만들어진 산체)가 팽창하는 현상이 관찰된 것을 확인했다. 백두산 산사면 수직 높이 최대 10cm 이상 높아졌고, 천지 주변의 온천수 온도가 69도에서 83도까지 상승했다. 화산가스로 나무가 고사했고, 산사태도 관찰됐다.
이 교수는 “1000여 년 전 백두산이 분화했을 때 천지 아래 암석에는 균열이 생성됐을 것”이라며 “천지 아래에 흐르는 지하수가 암석에 물과 이산화탄소를 공급해 화산가스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궁금증 2
화산재와 화산가스, 더 두려운 건?
백두산이 정말 분화한다면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영화에서는 “한반도 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48%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뉴스 속보와 함께 서울이 백두산 분화의 직격탄을 맞는다. 한강에는 화산재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건물은 날아오는 화산석과 충돌해 하나둘 쓰러진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백두산의 946년 밀레니엄 대분화는 화산폭발지수 7에 해당한다. 홀로세를 통틀어 여섯 번째로 큰 분화였다. 이 교수는 “이때 분출된 화산재는 모으면 남한 전역에 1m 높이로 쌓을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폭발력이 강했던 이유는 백두산이 유문암질 마그마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마그마는 현무암질과 유문암질로 나뉜다. 현무암질 마그마는 이산화규소(SiO2)가 45% 이하로 마그마의 점성이 낮아 지상으로 분출되면 물처럼 지표면을 따라 천천히 흐른다.
반면 이산화규소 함량이 70% 이상인 유문암질 마그마는 점성이 높아 내부에 가스를 계속 축적한다. 그래서 지상으로 분출되면 용암이 품고 있던 가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화산재와 돌덩이(화산암)가 돼 한꺼번에 퍼붓는다.
유문암질 마그마가 폭발하듯 분출하면 가장 먼저 화산 사면을 따라 흐르는 화산재인 화쇄류가 퍼진다. 그리고 유리 성분의 미세먼지와 같은 화산재가 쌓인다. 화산재 성분 중 이산화황은 물을 만나면 황산이 된다. 황산에 물이 오염되면 식물도 가축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또 황산은 전도성이 높아 합선을 일으키고 결국 기간시설을 모두 마비시킨다.
화산가스에 의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교수는 “화산재보다 무서운 것이 화산가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제작진의 연락을 받고 가장 먼저 “화산가스에 의한 재해도 나오나요?”라고 물었다고. 현재 천지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이산화탄소, 이산화황 등은 최소 10만 명 이상을 질식시킬 수 있는 양으로 추정된다. 분화와 함께 화산가스가 50~100km 근방으로 퍼지면 1시간 안에 10만 명이 숨질 수 있다.
2015년 윤 교수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밀레니엄 대분화가 재연될 경우 화쇄류가 최대 23.4km까지 퍼지고, 화산재가 남한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doi: 10.14770/jgsk.2015.51.4.363
다만 시뮬레이션 결과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밀레니엄 대분화에서 나온 화산재는 아직 남한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한보다 더 멀리 떨어진 일본 홋카이도 지역에서 밀레니엄 대분화 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산재가 발견됐다. doi: 10.1007/s004450050004
이는 성층권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성층권에는 시속 200km에 이르는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 만약 화산재가 성층권까지 솟구치면 계절에 상관없이 제트기류를 따라 화산재가 동쪽으로 퍼질 수 있다.
실제로 1980년 5월 미국 세인트헬레나 화산이 화산폭발지수 5 규모로 분화했는데, 당시 화산재의 97% 이상이 성층권의 제트기류를 타고 동쪽으로 날아간 사실이 확인됐다. 만약 백두산이 이보다 큰 규모로 분화한다면 대부분의 화산재가 성층권으로 올라가 남한보다는 태평양과 일본 지역에 피해를 줄 수 있다.
궁금증 3
백두산 분화 막을 수 있나?
“만약에 늦은 게 아니라면 백두산 (분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수년간 백두산 분화를 경고해왔던 지질학자 강봉래 교수(마동석)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조언대로 조인창 대위(하정우)를 비롯한 EOD(폭발물처리반) 팀이 대폭발을 막기 위한 작전을 벌인다.
사실 백두산 분화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백두산 연구다. 화산은 형성과정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두 개의 판이 멀어지며 마그마가 솟아오르는 해령형,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들어가는 섭입형, 판의 경계는 아니지만 마그마가 분출되는 지점인 열점에서 만들어지는 열점형이 있다. 백두산은 이 중 어느 형에도 속하지 않는다. 다른 화산의 연구 사례가 백두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 백두산 연구는 마그마의 변동 상황을 감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백두산이 어떻게 생성됐고, 마그마의 에너지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백두산의 마그마는 지금도 끊임없이 움직인다”며 “이 자체가 백두산 분화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정보인 만큼 관측망을 설치하고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폭발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가령 천지 속에 있는 화산가스를 미리 제거할 수 있다. 천지 아래에서 생성되는 화산가스가 응축되기 전에 가스를 빼내는 것이다. 백두산 인근 용수리의 탄광을 폭파시켜 압력이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 큰 분화를 막겠다는 영화 속 강봉래 교수의 전략과도 유사하다.
천지 아래 화산가스를 제거하려면 물속에 관을 넣어 응축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면 된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과정은 아니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연구를 위해 백두산에 가려면 북한이나 중국을 거쳐야 한다. 백두산이 국경 지역에 있는 데다가 정치외교적인 상황이 겹쳐 지금은 어느 쪽으로도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백두산 남북공동연구는 2007년과 2011년, 2015년 총 세 차례에 걸쳐 협의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무산됐다.
현재 남한 연구팀은 북한과 공동연구를 하는 국제 연구그룹인 백두산지구과학그룹(MPGG·The Mt. Paektu Geoscientific Group)을 통해 북한과 소통하고 있다. 백두산 공동연구에 대해서는 남북 양측 모두 긍정적이지만,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나 정치적, 법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교수는 “아직도 외국 화산학자들에게는 백두산의 중국식 표기인 창바이산(長白山)이라는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는 게 현실”이라며 “영화 개봉을 계기로 국민들이 백두산에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