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도로에서 서다 가다를 반복하다보면 운전자는 금세 피로해진다. 클러치 밟고 기어 바꾸기에 넌덜머리가 난 탓인지, 수동변속기보다는 1백여만원이나 비싼 자동변속기 차량을 선호하는 운전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계적 특성을 모르면 이 편리한 기계는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2년전 서울 남산3호 터널앞 언덕길에서 목격한 일이다. 고급승용차 한대를 교통경찰이 정지시켰다. 운전자는 불만이 있는 듯 차에서 내려 경찰과 몸싸움이라도 벌일 태세였다. 하지만 10여초도 안돼 경찰과 운전자가 함께 언제 다투었냐는 듯이 같이 뛰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세워둔 차가 운전자도 없이 언덕길을 제법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자동변속기 차량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동변속기 차량은 기어레버를 주행위치에 주면 액셀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움직인다. 이를 슬금슬금 기는 것 같다고 해서 크리프(creep)현상이라고 한다. 이 특성 때문에 자동변속기 차량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언덕길에서 뒤로 미끄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자동변속기 차량만의 위험성도 있다. 자동변속기 차량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면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클러치' 가 아니다
자동변속기는 수동변속기와 원리나 구조면에서 차이가 많다. 수동변속기 차량의 동력 전달은 엔진쪽 구동판(플라이 휠)->;클러치->;클러치 압력판->;변속기 본체->;구동축->;바퀴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운전자가 클러치 페달을 밟으면 클러치는 플라이 휠과 압력판사이에서 분리돼 동력을 끊어주고 발을 떼면 동력이 연결된다.
수동변속기 본체는 잇날수가 다른 여러 가지 기어들을 조합해 놓은 것이다. 운전자는 기어레버를 직접 조작시켜 주행상황에 알맞게 이 기어들을 연결시키면 된다. 반면 자동변속기는 위와 같이 수동변속기에서 운전자가 판단하고 조작해야 하는 많은 일을 말 그대로 '자동으로' 해준다.
자동변속기에는 엔진회전수, 차의 속도,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의 작동 정도를 읽는 센서가 부착돼 있다. 이 센서들에서 읽은 정보는 운전자의 두뇌에 해당하는 부분인 변속 조절 마이크로 컴퓨터(TCU;Transmission Control Unit)로 들어간다. TCU는 이 정보들을 가지고 변속여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수동변속기에서 운전자가 차의 힘이 달린다고 판단, 4단에서 3단으로 변속하는 경우를 보자. 자동변속기에서는 TCU가 센서들이 보내온 정보를 분석한다. 차 속도에 비해 엔진회전수가 낮고 액셀러레이터가 깊게 밟힌 것을 보아 운전자가 가속을 원한다고 판단, 기어단수를 내리라고 명령을 보낸다. TCU의 명령은 전자밸브로 전달돼 유압으로 어떤기어를 고정시키고 어떤 기어를 연결시킬 것인가를 결정한다. 결국 자동변속기의 작동은 사람이 하는 판단과 동작을 센서와 마이크로 컴퓨터, 그리고 실제 기어들을 변속시키는 유압기구가 대신하는 것이다.
수동변속기에 숙련된 운전자가 다루기에는 자동변속기차량은 대체로 행동이 굼뜨다. 수동변속기차량을 사용하다가 자동변속기차량을 바꾼 많은 사람들은 '이 때쯤 변속돼야 하는데'라고 생각한 뒤 몇 초가 지나서야 변속이 되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처럼 행동이 느린 것은 자동변속기의 '두뇌'인 TCU, '정보수집기구'인 센서와 '행동대'격인 밸브는 전자식인 반면 실제 변속을 시키는 부분은 유압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변속기차량을 클러치가 없다고 해서 '노클러치'차라고 부르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노클러치라기보다는 '클러치 왕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단지 클러치 페달이 없을 뿐이다. 수동변속기차량에는 보통 한 개의 클러치가 있지만 자동변속기에는 3-4조의 클러치 기구들이 있다. 한 조의 클러치 기구에는 보통 7-8개 정도의 작은 클러치 판과 디스크가 들어있으며, 브레이크 기구들도 2-3개나 된다.
물론 자동변속기의 클러치는 수동변속기 클러치와는 역할이 다르다. 수동변속기 클러치는 엔진과 변속기 본체 사이의 동력을 끊거나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자동변속기에서는 유압의 힘으로 움직이는 브레이크도 바퀴를 제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어를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연료를 더 많이 소비하는 이유
수동변속기의 클러치 역할은 자동변속기에서 토크 변환기(torque converter)가 담당한다. 토크 변환기는 엔진 쪽과 변속기 본체 쪽에 각각 연결된 회전날개를 가진 금속바퀴다. 엔진 쪽에 연결된 회전날개(버킷, bucket)는 펌프 임펠러(pump impelle), 변속기 본체에 연결된 터빈 러너(turbine runner)라고 한다. 토크 변환기 안에는 자동변속기용 오일을 가득 넣는다. 작동 원리는 선풍기 두대를 맞대어 놓고 한 쪽 선풍기만 작동시키면 다른 쪽도 같이 도는 것과 같다.
펌프 임펠러쪽은 엔진에 시동이 걸려있으면 항상 회전한다. 임펠러 회전날개의 회전은 오일을 따라 돌게 해 변속기쪽 터빈러너를 돌린다. 유체를 매개로 동력을 전달시키다보니 아무래도 직접 맞붙이는 클러치를 사용하는 수동변속기보다 동력과 연료 효율이 떨어진다. 이것이 자동변속기차량이 수동보다 평균 10-15%연료를 더 소비하는 이유다. 하지만 고체 판을 맞대어 붙이는 수동변속기보다 동력을 잇거나 끊을 때 충격이 적은 장점도 있다.
변속기오일 잘 관리해야
자동변속기에서 오일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토크 변환기는 오일의 회전에 의해 작동한다. 더구나 변속비를 결정하는 행성기어의 조합도 오일의 역할이다. 클러치와 브레이크의 작동이 오일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운전자들이 엔진오일은 열심히 교환해주면서 자동변속기오일에는 무심한 것을 종종 목격한다. 수동변속기 오일은 양이 부족하거나 상태가 썩 좋지 않더라도 작동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동변속기 오일의 경우는 사정이 틀리다. 만일 자동변속기의 오일의 양이 부족하면 당장 동력을 전달해주는 토크 변환기가 제역할을 못한다. 더구나 오일 자체가 열로 인해 산화돼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변속기 본체의 클러치에도 무리를 줘 헛도는 슬립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자동변속기는 비싼 만큼 고장이 발생하면 수리비가 만만치 않다. 또 구조가 복잡해서 전문기술자가 아니면 손 볼 엄두도 못낸다. 자동변속기의 올바른 관리는 오일의 양과 상태의 체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오일의 상태가 나빠지는 원인중 대표적인 것은 오랫동안 정지해 있을 때 기어레버를 주행모드에 놓고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경우다. 이경우 엔진쪽 회전 날개인 펌프임펠러쪽은 돌고 있는 반면 바퀴에까지 연결된 터빈 러너는 정지상태다. 오일의 순환이 원활치 않아 열이 발생하면 오일이 산화돼 변속기에 나쁜 영향을 준다. 이런 상태를 실속(stall)상태라고 한다.
반대로 중립(N)이나 주차(P)모드에서는 토크 변화기는 돌고 행성기어장치에 연결시키는 클러치는 동력이 끊어져 있다. 토크변환기 자체가 돌고있으면 오일의 온도가 상승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적어도 1분 이상 정차해 있는 경우에는 P나N에 기어레버를 놓는 습관을 기르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대로 언덕길을 내려갈 때 기어를 N모드에 두고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변속기에 무리를 주게된다. 동력은 끊긴 상태라 오일펌프는 엔진회전수에 맞추어 작동하는 반면, 차의 속도는 높아 변속기 본체 내부 오일이 과열돼 본체가 몽땅 망가질 우려가 있다. 더구나 언덕길을 중립상태로 내려갈 때 감속을 브레이크로만 해야 돼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한편 주차위반이나 고장 등으로 견인될 때 자동변속기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수동변속기는 견인시 기어레버를 중립에 두면 무리가 없디만 자동변속기는 구동바퀴가 땅에 닿은 채 견인되면 변속기에 무리가 생길 수 있다.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는 오일 펌프의 작동도 중단돼 변속기 내부의 각종 클러치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변속기 고장원인 중 하나가 차가 다 서기도 전에 P모드로 기어레버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P모드는 기어톱니에 일종의 갈고리를 끼워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것이다. 차가 움직일 때 P모드로 이동시키면 회전하고 있는 기어 잇날에 갈고리가 닿아 기어가 망가지고 만다. 특히 주차할 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차가 완전히 정지했나를 확인한 후 P모드로 레버를 움직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자동변속기 다루는 비법
자동변속기는 수동보다 운전하기 편리하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수동변속기로 운전자가 직접 변속할 때보다 기어변속시간이 느리다. 자동변속기는 보통 1,2초의 타임 래그가 있다. 따라서 같은 조건의 위험에서 수동변속기보다 더 빨리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수동변속기차량은 기어를 한단 낮추며서 쉽게 앞차를 추월할 수 있다. 반면 자동변속기차량은 저속기어로 변속이 안돼 추월을 시도했다가 다시 급하게 원래의 차선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을 간과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 또 자동변속기차량 운전자들은 자동차가 대신 해주는 조작을 자신이 베테랑운전자가 된 것으로 착각, 무리하게 속도를 내거나 방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유용한 방법이 킥다운(kick down)이다. 킥다운이란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끝까지 누름으로써 센서가 이를 읽어 강제적으로 힘이 좋은 저속단으로 변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액셀러레이터 조작만으로도 여러가지 양태의 운전방식을 경험할 수 있어 안전하면서도 즐거운 드라이빙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고 있자면 그만큼 연료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자동변속기차량에는 기어레버 주변에 오버 드라이브(Over Drive)스위치가 있다. 오버드라이브란 엔진의 회전수보다 변속기를 통해 나온 rpm이 높은 것을 말한다. 오버 드라이브 스위치를 끄면 D모드에서도 1단부터3단까지만 변속이된다. 따라서 4단으로 주행하다가 오버 드라이브 스위치를 끄는 것으로 수동변속기 차량에서 기어를 저단변속해서 얻을 수 있는 엔진브레이크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겐 자동변속기타입의 차는 알맞지 않다. 일부 차량은 시속 70km가 넘으면 오버드라이브 스위치를 꺼도 변속기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3단으로 변속이 안되도록 만들어져 엔진브레크 효과를 볼 수 없다.
자동변속기차량을 운전하면서 가속을 위해 수동처럼 기어레버를 저단에서 고단으로 옮기면서 운전하는 경우를 가끔본다. 이런 운전방식은 레버를 D모드에 그대로 두고 운전할 때 보다 속도도 빠르지 않을 뿐 아니라 변속기의 마모만을 더 가져올 뿐이다.
위험을 자초하는 자동차 액세서리
운전자들은 누구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운전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선 몇천원에서 심하게는 수백만원대의 액세서리를 차에 부착한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치명적인 흉기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을 대개 간과하고 있다. 핸들에 부착하는 작은 공모양의 손잡이. 우리나라처럼 운전석이 왼편에 있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오른손은 무척바쁘다. 기어변속하랴, 라디오 조작하랴, 자주 핸들에서 떠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액세서리 손잡이는 핸들의 왼쪽부분에 장착한다. 주차나 U턴할때 왼손만으로도 핸들조작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충돌이나 추돌 등 사고가 날 경우다. 자동차 안전검사기관들의 충돌시험 결과는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착용했더라도 부상의 위험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충돌 때 머리와 가슴 부위가 핸들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핸들 왼편에 10cm이상 돌출돼 있는 손잡이를 장착한 차량에 사고가 난다면 운전자 심장 부위에 바로 치명상을 초래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안전벨트 착용의 불만으로 몸이 심하게 조이는 것을 손꼽는다. 이런 불편을 해결해주는 액세서리로는 벨트는 착용하되, 느슨하게 해둘 수 있는 벨트버클이 인기다. 이런 버클은 사고 때 순간적으로 안전벨트를 당겨주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충돌 후 운전자가 핸들 등에 부딪히는 시간은 불과 0.5초내외. 더구나 시속 50km에서 정면충돌할 때 안전벨트에 작용하는 압력은 무려 1t이나 된다. 느슨하게 돼 있던 안전벨트가 이보다 빠른 시간 내에 몸이 퉁겨나가는 것을 막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돗자리나 양털 등을 운전석에 까는 것도 위험하다. 자동차 좌석은 충돌 등 사고를 대비해 승객이 가장 안전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돗자리를 깔면 몸이 쉽게 미끄러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충돌사고가 나 차가 심하게 찌그러져도 시동치 부분등이 운전자의 무릎부분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치자. 양털등으로 운전자의 위치가 바뀌면 이런 섬세한 설계상 배려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거듭말하지만, 자동차는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 타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