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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파트너@DGIST]이차전지 성능 결정할 ‘꿈의 전해질’을 찾아서

에너지공학 전공

 

이호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의 연구실에는 거대한 냉장고 4대가 놓여 있다. 냉장고 안에는 음식 대신 이차전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 교수는 “한번 쓰고 버려야 하는 일차전지와 달리 이차전지는 충·방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차전지의 충·방전 효율을 결정하는 건 이온의 이동 통로인 전해질이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이차전지인 리튬이온전지에는 유기용매 형태의 액체 전해질이 들어간다. 이 교수는 “액체 전해질에 존재하는 이온의 상태와 구조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며 “리튬이온전지의 효율과 안정성을 높이고 차세대 전지를 개발하려면 전해질 속에서 일어나는 과학을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1시간 걸릴 충전, 40분으로 단축 


리튬이온전지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분야다. 리튬이온전지는 양극과 음극에 해당하는 활물질, 그리고 분리막과 전해질 등으로 구성된다. 리튬이온은 양극과 음극 활물질 사이에서 전하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분리막은 두 활물질의 경계를 만들어 안정성을 높이고, 그 사이 공간은 이온이 이동하기 쉽도록 유기용매로 된 액체 전해질이 채우고 있다. 


이 가운데 이 교수가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주제는 전해질이다. 그는 “액체 전해질은 안정성이 낮은 대신 충·방전 효율이 높아 고체 전해질과는 특성이 정반대”라며 “두 전해질의 중간 특성을 띠는 겔고분자 전해질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해질의 전기화학적 특성은 일렉트로딕스(Electrodics)와 아이오닉스(Ionics) 등 크게 두 방향에서 연구된다. 일렉트로딕스는 전해질과 활물질이 접한 면에서 나타나는 전하의 이동 현상을 연구한다. 아이오닉스는 전해질 내부 이온의 구조와 운동 변화를 다룬다. 


일반적으로 겔고분자 전해질이 액체 전해질보다 안정성은 훨씬 높은 반면 이온전도도와 충·방전 효율 모두 절반 이하로낮다. 그런데 이 교수팀은 겔고분자 전해질로 리튬이온전지를 만들어 액체 전해질을 썼을 때보다 충·방전 속도를 30% 높였다. 1시간 걸릴 충전 시간을 약 40분으로 단축한 셈이다. 이 연구 결과는 올해 4월 국제학술지 ‘ACS 에너지 레터스’에 실렸다. doi: 10.1021/acsenergylett.9b00724


이 교수는 “겔고분자를 전해질로 쓰면 안정성은 높일 수 있지만 충·방전 속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학계의 고정관념을 깬 연구”라며 “겔고분자 전해질 속 이온의 특성을 화학적으로 분석해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데 적합한 용액 구조를 찾아서 적용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액체 전해질 연구가 필요한 이유 


학계와 산업계는 최소 향후 10년간은 여전히 액체 전해질이 대세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 교수는 “더 뛰어난 전해질이 개발되더라도 이미 생산 설비가 갖춰진 현재의 액체 전해질을 바로 대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액체 전해질의 안정성과 효율을 개선하는 연구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산업계에서는 액체 전해질을 생산할 때 2~3가지 종류의 탄산 카보네이트 화합물을 섞어 제조한다. 대표적으로 메틸기가 두 개 붙은 디메틸 카보네이트(OC(OCH₃)₂)와 에틸기가 두 개 붙은 디에틸 카보네이트(OC(OCH₂CH₃)₂)가 있다. 


디메틸 카보네이트나 디에틸 카보네이트로 액체 전해질을 만들면, 두 액체 전해질 사이의 유전율이나 점도는 비슷하다. 하지만 이온전도도는 디메틸 카보네이트로 만들었을 때가 2배 이상 높다. 고속 충·방전에는 디메틸 카보네이트로 만든 전해질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디메틸 카보네이트가 충·방전에 유리하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는 알려져 있지만 왜 그런지 과학적인 이유는 모른다”며 “전해질에 쓰이는 이런 유기용매의 화학적 비밀을 밝히면 액체 전해질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마트폰용 리튬이온전지는 1시간 내외로 고속 충전이 가능하고, 1000회 이상 충·방전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됐다.


리튬이온전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이차전지로는 나트륨이온전지와 전해질이 고체인 전고체전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교수는 “차세대 이차전지 후보들이 아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전해질 연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똥에는 귀천이 있다. 누가 싸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향 고양이는 고급 커피콩을 똥으로 싸고, 향유고래는 고급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 똥을 싼다. 귀한 똥을 싸는 동물이 하나 더 있다. 지렁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보잘것없어 뵈는 이 미물을 연구한 대가로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지렁이가 뭐길래. 


지렁이가 태양을 피하는 이유
“박사님, 지렁이가 보이지 않아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지렁이를 보기 위해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농장을 찾았다. 그러나 지렁이는 보이지 않았다. 35년째 지렁이를 연구하는 최훈근 박사(전 국립환경연구원 폐기물자원과장)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삽으로 흙을 뒤집었다. 그제야 지렁이가 우수수 떼로 나왔다. 
지렁이는 주로 땅 밑에서 서식한다. 햇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땅 위에 나와 있다가도 햇빛이 들면 땅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지렁이가 햇빛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부로 숨을 쉬기 때문이다. 피부를 통해 산소가 핏속에 흡수되려면 피부에 늘 어느 정도의 습기가 있어야 한다. 산소가 이 물(습기)에 녹아야 지렁이 피부 속 모세혈관으로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렁이는 점액을 만들어 피부를 촉촉하고 끈적끈적한 상태로 유지한다. 
늘 수분을 머금고 있는 땅속은 지렁이에게는 생존에 매우 안전한 곳이다. 햇빛이 강한 어느 날 자칫 땅 위로 올라왔다가 아스팔트 한가운데에서 길이라도 잃으면, 온몸에 수분이 날아가 그대로 굳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지렁이가 땅 위로 꼭 올라와야 할 때가 있다. 비가 많이 와서 지렁이의 서식지인 땅굴이 물로 가득 찼을 때다. 땅속에 물이 들어차면 산소가 줄어든다. 그러면 지렁이는 살기 위해 땅 위로 올라온다. 
물론 모든 지렁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2008년 대만 연구팀은 두 종류의 지렁이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침수에 대한 내성이 낮은 종(Amynthas gracilis)은 폭우가 시작되자 곧바로 땅 위로 올라왔지만, 산소 소비량이 적은 종(Pontoscolex corethrurus)은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오래 버틸 수 있어 비가 쏟아지는데도 땅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doi: 10.1111/j.1744-7410.2007.00117.x
지렁이는 천적인 두더지가 등장할 때도 땅 위로 피신한다. 두더지는 땅 밑으로만 다니는데, 지렁이는 두더지가 이동할 때 생기는 진동이 감지되면 땅 위로 올라간다. 최 박사는 “밭에서 호미로 땅을 두드리면 지렁이가 많이 올라오는데, 지렁이가 호미의 진동을 천적인 두더지의 움직임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윈은 1881년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이라는 책에서 지렁이가 진동을 감지한다고 썼다. 다윈은 지렁이의 청각을 실험하던 도중 지렁이가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진동에는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윈이 피아노 옆에 지렁이를 두고 건반을 두드릴 때는 지렁이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렁이와 흙이 든 상자를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건반을 치자 지렁이가 상자 속 흙무덤에 있는 굴속으로 빠르게 들어간 것이다. 
다윈은 지렁이의 지능도 조사했다. 지렁이에게 빛을 비추면 바로 땅 밑으로 들어가는데, 짝짓기 중인 지렁이에게 빛을 비춰봤다. 지렁이는 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짝짓기를 이어갔다. 다윈은 지렁이의 이런 열정(?)이 지능을 가진 덕분이라고 해석했다. 동료들은 지렁이를 연구하는 다윈을 비난했지만, 다윈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틈틈이 지렁이를 파헤쳤다. 특히 다윈은 지렁이 똥인 분변토에 관심이 많았다. 

 

 

10cm 지렁이 ‘똥탑’, 비싼 퇴비 대접


“여기 지렁이가 똥 싸고 간 곳이에요.”
최 박사가 가리키는 곳마다 흙이 몽글몽글하게 뭉쳐져 있다. 떼알구조(입자가 알갱이끼리 서로 뭉쳐 하나의 큰 덩어리를 만드는 구조)로 쌓여있는 이것의 정체는 지렁이가 쌓아 올린 ‘똥탑’이다. 지렁이의 종에 따라 다르지만, 똥탑은 작게는 수mm에서 크게는 10cm가 넘는 높이로 쌓인다. 지렁이는 이 똥탑을 어떻게 세우는 걸까.
지렁이는 지표면으로부터 20~30cm 깊이에서 서식하는 종부터 5~6m 깊이에서 서식하는 종까지 다양하다. 종마다 서식지가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똥을 쌀 때 땅 위로 올라와 항문만 내민 채 싼다는 점이다. 수m 깊이에 서식하는 지렁이도 똥을 쌀 때는 굴을 따라 소위 ‘뒷걸음질’을 쳐 땅 표면까지 올라온 뒤 항문만 지표면 바깥으로 내민 뒤 배설한다. 
지렁이의 똥탑이 가득한 흙은 고급 비료로 대접받는다. 옛말에도 지렁이가 많으면 농사가 잘 된다고 했다. 최 박사는 “지렁이 똥은 미생물이 풍부해 농작물의 생장을 돕는다”며 “지렁이 똥으로 만든 비료는 다른 비료 가격의 약 4배”라고 말했다. 
지렁이는 땅 위에 떨어진 낙엽이나 썩은 농작물을 흙과 함께 섭취한다. 이들은 지렁이의 모래주머니로 들어가고, 모래주머니에서 잘게 부서져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유기물의 형태가 된다. 그리고 이 유기물은 항문을 통해 똥으로 배출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렁이는 식물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땅 위의 물질과 흙이 섞이게 만들어 비옥한 토양을 조성한다.  
얀 빌럼 반 흐로닝언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토양비료학과 연구팀은 1910년부터 2013년까지 발표된 58개 연구 결과를 메타 분석해 지렁이가 작물 수확량과 바이오매스에 미친 영향을 2014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doi: 10.1038/srep06365  
분석 결과 지렁이는 작물 생산량을 평균 25%, 나무 등 지상 생물량을 평균 23%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렁이가 토양 유기물을 흡수해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이온 형태로 질소 무기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작물 수확량을 늘린 것이다. 질소는 ‘광합성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엽록체의 생성과 원형질의 주성분인 단백질 합성에 중요해 식물의 생장과 발육을 지배하는 성분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동물이 하루에 섭취하는 음식량은 몸무게의 10% 미만이지만, 지렁이는 자기 몸무게만큼 먹고 전부 배출한다. 가령 무게가 2g인 실지렁이는 하루에 퇴비를 2g 생산한다. 실지렁이 1000마리면 하루에 2kg의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덕분에 지렁이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사육하기에 적합하며 농가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동물로 인정받아 2004년 소, 돼지와 동급인 가축으로 지정됐다. 최근 농가는 물론 도시에서 생활하는 가정에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지렁이를 사육하기도 한다.

 

 

전 세계 ‘지렁이 지도’ 첫 공개


“조심하세요, 뱀 나와요.”
지렁이를 보러왔는데, 뱀에 물릴 수 있으니 조심하란다. 지렁이 서식지에 뱀이 왜 있을까. 지렁이는 땅에 영양분만 공급하는 게 아니다. 지렁이가 오랫동안 서식하는 곳에는 생태계 순환이 이뤄진다. 지렁이를 먹는 두더지가 오고, 이 두더지는 다시 뱀을 불러들여 먹이사슬을 만든다. 그래서 지렁이는 ‘생태계 엔지니어’로 불린다. 심지어 전 세계 땅속 어디서나 살고 있어 생태학자들에게 지렁이는 매우 중요한 지표 동물이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전 세계 ‘지렁이 지도’가 최초로 공개됐다. 연구자 140명이 전 세계 지렁이 연구자들로부터 57개국 6928곳에 이르는 땅밑 지렁이의 분포와 개체수, 그리고 종별 데이터를 수집해 정리한 것이다. doi: 10.1126/science.aaz9771
이 지도에 따르면 지렁이의 종 다양성은 땅 위에 사는 동물과 정반대로 나타났다. 육상 동물의 경우 대개 열대지역에서 종 다양성이 가장 높고, 열대지역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멀어질수록 종 다양성이 줄어든다. 
반면 지렁이는 열대지역에서 종 다양성이 가장 낮았다. 종 다양성은 유럽, 미국 북동부, 남미의 남쪽 끝, 뉴질랜드와 호주 남부 지역에서 높게 나타났다. 지렁이의 밀도(단위면적당 개체수)와 생물량(단위면적당 총 질량·g/m2)도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이때 지렁이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강수량과 기온이었으며, 토지의 특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지렁이 지도의 완성도는 한계가 있다. 오랜 기간 지렁이를 연구한 유럽의 경우 지렁이 분포와 종 등의 정보가 대부분 밝혀졌지만, 그 외의 지역은 정보가 부족하다. 논문 제1저자인 헬렌 필립스 독일 통합생물다양성연구센터 연구원은 “열대지방은 구멍을 수km 팔 때마다 새로운 지렁이를 발견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렁이 지도에는 국내 지렁이 분포도 빠져 있다. 최 박사는 “지렁이는 토지를 비옥하게 할 뿐 아니라 무엇이든 먹어 치워 퇴비로 만들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지렁이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대구=김진호 기자
  • 사진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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