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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물건은 이마트에 가서 찾으세요.”
쓸모없는 물건을 만든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쓸모는 없을지언정 반드시 재미는 있는 물건들을 만들죠. 그 주인공은 바로 과학공학 콘텐츠 제작소 ‘긱블’입니다. 긱블은 자신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물건들을 영상에 담아 업로드하는 채널을 2017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구독자만 40만 명이 넘습니다.

 

이번에 또 다른 ‘신박’한 물건을 하나 만들 예정이라고 해서 과학동아가 메이킹 현장을 ‘급습’했습니다. 분명 또 쓸모없는 물건이겠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쓸모 있는 과학 원리들이 많이 숨어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입니다.

 

 

INTRO. 물결무늬의 다마스쿠스 스틸

 


긱블이 이번에 만든 물건은 ‘다마스쿠스 호미 머신’입니다.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이름입니다. 우선 호미는 익히 들어본 물건입니다. 논이나 밭을 맬 때 손에 들고 사용하는 물건이죠. 


여기에 ‘머신’이라는 단어가 뒤에 붙었습니다. 이 말은 호미질을 기계화 또는 자동화를 시킨다는 얘기 같네요. 간단하게 추론해보자면, 호미에 기계장치를 붙여서 자동으로 땅을 파주는 기계를 만들 것 같군요!


그럼 다마스쿠스는 뭘까요? 다마스쿠스의 정확한 이름은 ‘다마스쿠스 강(鋼)’입니다. 영어로는 ‘Damascus steel’, 즉 철의 일종이죠. 


다마스쿠스 강은 3~17세기 중동 지방에서 검의 재료로 사용된 철입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우츠 강’이라는 철을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특별한 방법이라고 에둘러 말한 건 17세기에 다마스쿠스 강의 제조가 중단된 이후 학계에서 그 제조 방법을 아직 복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마스쿠스 강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화려한 무늬 때문입니다. 선들이 꼬불꼬불 뒤엉킨 물결무늬가 다마스쿠스 강 전체에 그려져 있습니다. 따로 새기지 않은, 제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이 무늬는 다마스쿠스 강에 특별함을 더해줍니다. 그래서 미적으로 높게 평가받죠.


긱블은 이런 패턴이 새겨진 호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뭐, 땅을 파는데 더 실용적이라거나, 기계화됐을 때 에너지가 적게 든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이번 호미 머신을 기획한 긱블의 메이커 나모 님에게 물어봤더니 “그냥 물결무늬가 예뻤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게 ‘긱블다움’이라고나 할까요.

 

 

STEP 1. 두 종류의 철을 쉐킷쉐킷


다마스쿠스 강 같은 무늬는 만들고 싶고, 앞서 말했듯 다마스쿠스 강 제조 방법은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긱블은 다마스쿠스 강은 아니지만, 다마스쿠스 강과 비슷한 패턴의 무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긱블은 서울 은평구 수색동의 한 대장간을 섭외해 다마스쿠스 무늬의 호미를 만들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죠. 11월 12일 기자가 대장간을 ‘급습’했습니다.


긱블은 우선 세계 1위 철강회사인 포스코에서 두 종류의 철인 ‘고탄소강’과 ‘일반강’을 공수해 대장간에 도착했습니다. 철은 다른 금속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금속입니다. 종류도 무수히 많죠. 


순수한 철은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무르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원소를 섞습니다. 특히 탄소를 가장 많이 섞죠. 탄소를 많이 섞을수록 단단하지만, 너무 많이 섞으면 변형이 어렵고 쉽게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긱블은 포스코의 자문을 받아 탄소 함유량이 0.9~1.0%인 고탄소강과 0.25%인 일반강을 섞으면 다마스쿠스 강과 비슷한 무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마치 두 가지 색의 점토를 합쳐 주무르고, 뒤집고, 접기를 반복하면 두 색이 불규칙하게 뒤섞인 무늬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STEP 2. 감춰진 무늬 들춰내는 산성 용액


‘땅땅땅’.


대장간 주인인 류상준 씨는 먼저 네모반듯한 고탄소강 조각과 일반강 조각을 용접해 이어 붙였습니다. 합금을 제조하는 건 초보자가 하기에 위험하고 숙련도가 필요한 기술이라 긱블은 살짝 빠지고, 50년 넘게 대장장이로 일해 온 류 씨가 나섰습니다. 


류 씨는 이어붙인 합금을 2000도 가까운 열을 내는 화로에서 달구고, 두드려서 길쭉하게 만들고, 철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붕사를 뿌리고, 다시 화로에서 달구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적당히 길어진 합금을 이 번에는 접습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달구고 길쭉하게 뽑는 작업을 다시 반복합니다. 그 다음엔 합금을 배배 꼽니다. 합금이 접히고 뒤틀릴수록 고탄소강과 일반강은 점점 본래의 형체를 알기 힘들 정도로 뒤섞입니다. 점토로 했다면 1분 안에 끝나는 과정이겠지만, 금속인 철로 하는 것이라 꼬박 5시간이 걸렸습니다. 류 씨는 “이런 건 처음 만들어본다”며 “만드는 방법이 어려운 건 아니고 단지 귀찮은 작업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 고탄소강과 일반강이 뒤섞인 합금이 만들어지자 망치로 두드리고 연마기계로 다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호미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무늬가 없습니다. ‘자…, 잘못됐나?’ 


류 씨는 당황스러워하는 눈빛을 예상했다는 듯 “약품을 바르는 마지막 과정이 남았다”며 안심시켰습니다.


고탄소강과 일반강은 겉보기에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둘의 물성은 다르고, 그 물성은 합금이 돼도 남아 있습니다. 류 씨가 말한 약품의 정체는 강한 산성 액체입니다. 고탄소강과 일반강은 산에 의해 부식되는 속도가 다릅니다. 탄소가 적은 일반강이 더 쉽게 부식되죠.


그래서 호미를 산성 액체에 담갔다가 빼면 일반강만 더 검게 변합니다. 오래 담가두면 아예 일반강이 있는 부위만 패이기도 합니다. 비로소 합금의 숨겨진 무늬가 등장하는 것이죠. 그렇게 드디어 다마스쿠스 강 무늬의 호미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호미는 긱블의 공방으로 직행했습니다. 

 

 

STEP 3. 세상 처음 만든‘호미 머신’


이제 긱블이 나설 차례입니다. 호미를 장착할 기계를 만들 겁니다. 일단 나모 님이 구상한 호미 머신은 호미가 자동으로 반복해서 땅을 팔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 호미질하는 움직임을 가능한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합니다. 


언뜻 복잡한 기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호미질을 하는 손에 집중해보세요. 어떤 운동을 하고 있나요? 맞습니다. 호미질하는 손을 옆에서 보면 반복적으로 반원을 그리는 회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호미를 내리찍을 때는 반원으로, 끌어당길 때는 직선으로 움직여서 전체적으로는 반원에 가깝게 움직이죠.


이런 움직임을 완성하려면 기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나모 님은 우선 모터에 원판 모양의 크랭크를 연결했습니다. 모터를 구동하면 크랭크가 회전운동을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호미와 크랭크가 연결돼야 하니 호미의 손잡이를 긴 봉으로 연장하고 그 끝을 크랭크 바깥 부분에 붙여봤습니다. 


나모 님은 3차원(3D) 모델링 설계 프로그램으로 미리 부품들을 합쳐보고 완성품의 움직임도 시뮬레이션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에 성공할까요? 


모터를 작동시켜보니 호미가 허공에서 허우적대기만 하네요. 호미의 움직임에 제약을 두기 위해 호미의 중간 부분을 고정할 수 있는 ‘요동 링크’라는 부품을 하나 놓아봤습니다. 반원과 비슷한 모양을 그리며 움직이는 게 실제 호미질과 비슷해졌습니다. 요동 링크를 앞쪽에 설치하면 호미의 원운동이 작아지고, 뒤쪽에 설치하면 원운동이 커졌습니다. 나모 님은 요동 링크의 위치와 높이를 조금씩 조절하면서 실제 호미질과 비슷한 움직임을 완성했습니다. 


당연히 ‘호미 머신’이란 게 세상 처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가며 보완해야 합니다. 쓸모없는 것들만 만들어온 긱블의 메이커들에겐 아주 익숙한 일입니다.

 

 

STEP 4.  쓸모없는 물건은 있어도 쓸데없는 도전은 없다


계획대로 되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은데, 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호미가 땅을 파서 끌어당길 때 기계장치가 들썩이는 겁니다. 기계장치가 가벼워서 호미를 끌어당길 때 고정돼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계를 좀 더 무겁게 만들어야겠네요.


나모 님이 무거운 납축 배터리를 가져왔습니다. 배터리를 기계장치에 놓아야 하는데 만약 너무 앞에 놓으면 앞으로 쏠릴 테고, 너무 뒤에 놓으면 뒤로 자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또 긱블답게 앞쪽에도 놓아보고 뒤쪽에도 놓아보면서 기계의 무게 중심을 찾아갑니다. 수차례의 시도 끝에 마침내 납축 배터리를 놓을 최적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기계장치 중앙에서 약간 뒤쪽입니다. 여기에 납축 배터리를 놓고 글루건으로 고정했습니다.


이제 몸체에 바퀴를 달아 이동도 가능하게 해야 하고, 블루투스로 조종할 수 있도록 아두이노도 코딩해야 합니다. 각 부품들을 만들기 위해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팅기를 사용했는데, 3D 프린터 3대를 꼬박 24시간 돌렸답니다.


자, 이제 다마스쿠스 호미 머신이 완성되고 첫 작동의 순간! 나모 님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기계를 작동시킵니다. 이런…. 몇 번 움직이던 호미가 그대로 멈췄습니다. 처음 조립할 때 크랭크와 연장 봉을 연결해주는 핀이 조금 엇나갔는데, 빨리 만들고 싶어 무시하고 지나갔더니 결국엔 크랭크가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3D 프린터를 다시 16시간 돌려(헉!) 새로운 크랭크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정이 다돼서야 완성된 두 번째 호미 머신! 스마트폰으로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다행히 호미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마스쿠스 호미 머신의 최종 결말은 12월에 업로드되는 긱블의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해 보시죠!


이렇게 이번에도 긱블은 쓸모없는 물건을 하나 더 완성했습니다. 호미 머신의 쓸모없음에 다마스쿠스 강 무늬의 화려함이 유독 돋보입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을 만드는 걸까요. 여기에 긱블의 대장 차누 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쓸모없는 물건은 있어도 쓸데없는 도전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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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서동준 기자 기자
  • 도움

    긱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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