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얼음’ 하면 떠오르는 ‘엘사’가 ‘겨울왕국2’로 돌아왔다. 엘사는 눈과 얼음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조종하는 능력자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단단하게 얼릴 수 있으며, 바닷물을 얼려 그 위를 걸어 다닐 수도 있다.
과학소설가로서의 필자는 이 작품들의 예술성에 감탄할 뿐이지만, 공학자로서의 필자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한지 과학적으로 계산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직접 해봤다. 엘사처럼 바다 위를 얼리면서 동시에 그 위를 달리려면 물리학적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말이다.
엘사┃ 얼음 발판 두께는 최소 34m
발밑의 얼음을 계속 얼려 나가면 당연히 바다도 건널 수 있다. 그런데 얼음을 얼리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먼저 시간당 어느 정도의 얼음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20대 성인이 된 엘사의 신체 조건을 영화 배경이 된 유럽 여성의 현재 평균 신체 조건으로 가정해 계산해보자. 유럽 여성의 평균 발 크기는 길이와 볼 너비가 각각 26.6cm, 13.3cm다. 엘사가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최소 약 354cm2의 면적(발 길이×폭)을 가지는 얼음판이 만들어져야 얼음 발판을 디디고 바다를 걸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엘사가 걸을 때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으려면 얼음판의 두께도 중요하다. 얼음의 두께는 부력에 의해 결정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판의 부력은 엘사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은 커야 한다.
얼음의 비중은 온도에 따라 다르고, 바닷물이 얼어 있는 경우에는 염분의 농도에 따라서도 다르다. 염분이 없는 순수한 0도 얼음의 비중은 0.917g/㎤다. 얼음의 부력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바닷물의 비중도 필요한데, 북유럽 바닷가에서 측정한 비중은 염분 때문에 물보다 조금 무거워서 0도에서 1.026g/㎤이다.
얼음의 두께가 Wcm라고 가정하면, 이 얼음은 전체가 물에 잠겼을 때 이 부피의 무게만큼 부력을 받는다. 즉 한쪽 발을 내디딜 때 얼음판의 부피인 (354×W)cm3에 바닷물의 비중인 1.026g/㎤과 지구의 중력가속도를 곱한 값인 (363×W)g중(그램중·질량 1g 물체에 지구의 중력가속도 9.8m/s²을 곱해 구한 힘의 단위)이 최대 부력이 된다.
얼음판의 자체 하중은 얼음판의 부피인 (354×W)㎤에 얼음의 비중인 0.917g/㎤과 중력가속도를 곱한 값인 (324×W)g중이 되며, 얼음판의 최대 부력만 가지고 얼음판의 자체 하중과 엘사가 달릴 때의 하중을 견뎌야 한다
.
이제 엘사가 달릴 때의 하중을 계산해보자. 엘사의 몸무게가 현재 유럽 여성 평균인 66.7kg이라고 하자. 아무리 조심해서 달려도 발바닥에 가해지는 힘은 최소한 체중의 2배가 넘으므로 엘사의 하중을 체중의 2배로 계산해 133.4kg중으로 가정하자. doi: 10.1177/0363546507309315
얼음판과 엘사의 하중을 합한 값이 최대 부력이 되도록 W를 계산하면 W는 무려 3420cm가 된다. 즉, 바다 위를 달리려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밑으로는 적어도 34m 두께의 얼음판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얼음을 얼리기 위해 만들어내야 하는 에너지는 얼마나 돼야 할까. 바닷물을 얼리려면 전체 온도가 균일하다고 해도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는 상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
다시 말해 얼음의 융해 잠열인 80cal/g 만큼의 에너지를 바닷물로부터 빼내야 한다. 엘사가 바닷물로부터 빼내야 하는 에너지의 양은 엘사의 평균 걸음과 얼음판의 부피, 그리고 얼음의 비중과 잠열을 곱한 값이다. 이를 위해 엘사가 분당 평균 176걸음을 움직이는 속도로 달린다고 가정했다. 이 조건으로 계산하면 34m 두께의 얼음을 얼리는데 무려 1.08GW(기가와트)가 필요하다.
1.08GW가 얼마나 큰 에너지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비슷한 힘을 내는 것으로 로켓 엔진과 비교할 수 있다. 지금은 퇴역한 미국의 우주왕복선에 들어가는 주 엔진(SSME)인 터보펌프엔진(Block II H2 Brayton turbo pump)의 최대 출력이 63.4MW(메가와트)다. 2030t(톤)에 이르는 거대한 우주왕복선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강력한 엔진도 엘사의 에너지에는 한참 못 미치는 셈이다.
엘사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우주왕복선 주 엔진 17개에 해당하며, 우주왕복선에 주 엔진 3기가 탑재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주왕복선 6기를 동시에 우주로 발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사실 이 정도라면 바닷물을 얼려서 발바닥으로 뛰는 것보다 ‘우주소년 아톰’처럼 발바닥에서 제트엔진을 뿜어서 날아가는 것이 훨씬 더 쉬울 듯싶다(‘우주소년 아톰’은 1960년대 일본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으로 로봇인 아톰이 주인공이다).
참고로 아톰의 힘은 10만 마력(1마력은 약 0.75kW)으로, 환산하면 75MW에 해당한다. 대략 우주왕복선 주 엔진 1기보다 약간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수준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큰 에너지원으로는 단연코 원자력발전소를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한울 원자력발전소가 한 기당 1GW 정도의 발전 용량을 가지고 있다. 엘사 같은 초능력자는 원자력발전소 하나와 맞먹는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쿠잔┃화력발전소 1~2기 수준 에너지 만들어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에는 엘사와 비슷한 능력을 보유한 얼음 능력자 ‘쿠잔’이 등장한다. 쿠잔은 ‘얼음얼음 열매’를 먹고 나서 얼음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됐는데, 엘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쿠잔은 바다를 얼려서 얼음을 만들고, 이 위를 자전거로 달린다. 얼음 위에서 자전거까지 타려면 엘사보다 쿠잔의 에너지가 더 크지는 않을까.
일반적으로 자전거 타이어는 폭이 3.5cm 정도다. 쿠잔이 얼리면서 지나가는 면적은 타이어 폭에 자전거 속도를 곱하면 얻을 수 있는데, 아무리 느릿느릿 간다고 해도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을 최저 속도인 시속 3km, 즉 초속 83cm 이상은 돼야 한다. 따라서 쿠잔이 자전거를 타고 바닷물을 얼리면서 지나갈 때 만들어지는 얼음의 면적은 초당 약 290cm²다.
이 얼음의 두께 역시 부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쿠잔의 경우 얼음이 지탱해야 하는 무게는 쿠잔의 체중에 자전거 중량까지 더해야 한다. 쿠잔은 동양인 남성 평균 몸무게인 68.6kg으로 가정하고, 자전거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초경량 자전거 무게인 4.4kg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얼음의 면적은 1초간 생성되는 얼음인 290cm² 라고 가정했다.
얼음의 두께가 W′cm라고 가정하면, 얼음판의 자체 하중은 얼음판의 부피인 290×W′㎤에 얼음의 비중인 0.917g/㎤과 중력가속도를 곱한 값인 266×W′g중이 되며, 여기에 쿠잔과 자전거를 합한 하중인 73kg중을 더하면 얼음이 지탱해야 하는 전체 하중, 즉 얼음판의 최대 부력이 나온다. 얼음판의 최대 부력은 얼음판의 부피에 바닷물의 비중을 곱한 값과 같은데, 이렇게 계산하면 얼음의 두께 W′는 2281cm, 즉 22.81m라는 결과가 나온다. 엘사보다는 얇은 편이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두께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쿠잔은 1초에 약 6.63×10의5승㎤(폭 3.5cm, 두께 2281cm, 길이 83cm/초)만큼 얼음을 만들어내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수 있다. 엘사와 마찬가지로 이때 필요한 물의 융해 잠열을 계산하면 203MW다.
이는 우주왕복선 주 엔진 3.2개에 해당한다. 엘사보다는 에너지가 훨씬 작지만 그래도 보통 100~150MW의 에너지를 내는 화력발전소 한두 기와 맞먹는 수준이다. 어쨌든 엘사와 쿠잔의 얼음 초능력을 비교해보면 엘사의 압도적 승리다.
아이스맨┃핵폭탄 막아내는 얼음 무기?
얼음을 얘기할 때 떠오르는 또 한 명의 히어로는 마블 코믹스의 엑스맨 일원인 ‘아이스맨’이다. 아이스맨은 자기 자신을 얼음으로 변하게 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주위의 습기를 모아서 얼음을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사물의 온도를 확 낮춰 얼려버릴 수도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신체를 얼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신체를 얼릴 수는 있어도 온몸의 세포가 얼어버리면 세포 내의 수분이 팽창해서 세포막을 파괴하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가장 유사한 사례를 찾자면 신체를 급속히 얼려 보관하는 냉동인간 연구가 있다. 특히 불치병 환자를 냉동했다가 치료법이 발견되면 그때 다시 해동시켜 병을 치료하겠다는 시도가 꽤 이뤄지고 있는데, 현재 과학 수준으로는 절망적이다.
그러니 아이스맨의 경우에도 순수하게 물리학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해보자. 아이스맨이 보여준 가장 어마어마한 능력은 핵폭탄이 터졌을 때 이를 곧바로 얼려버린 사건이다. 만화책에서는 굉장히 멋진 장면으로 묘사됐지만,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핵폭탄의 폭발력은 Mt(메가톤) 단위로 나타내는데, 이는 에너지의 단위가 아니라 일반적인 폭약인 TNT로 환산한 폭발력이다. 즉 1Mt의 핵폭탄은 TNT 폭약 100만t을 폭발시켰을 때와 같은 폭발력을 가진다.
역사상 가장 강한 핵폭탄은 옛 소련이 1961년 개발한 ‘차르 봄바(Tsar Bomba)’라는 핵폭탄인데, TNT로 환산했을 때 무려 50Mt의 폭발력을 가졌다.
단순히 생각하면 아이스맨이 핵폭탄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핵폭탄의 열을 빼앗아 얼려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물리학 법칙을 고려하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먼저 핵폭발에서 일어나는 물리학적 현상을 살펴보자. 원자핵이 분열되면 질량의 일부가 감소하고, 이 질량 차는 E=mc²에 해당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이 에너지는 주로 열에너지의 형태로 분출되는데, 핵폭발의 중심부에 있는 물질은 어마어마한 열에너지에 의해 기화된 다음 급격히 팽창하고, 팽창된 가스는 바깥쪽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다.
핵폭탄의 위력은 대부분 이 핵폭풍에서 나온다. 아이스맨이 핵폭탄을 막았다면 폭발 직전에 얼려버리는 게 아니라 폭발을 시작한 핵폭풍을 얼렸다는 의미가 된다. 문제는 이 핵폭풍을 일으키는 열에너지의 분포가 시간과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아이스맨이 이 핵폭풍을 얼리기 위해서는 시간과 거리에 따라 서로 다른 열에너지를 정밀하게 중화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농도가 서로 다른 염산, 황산, 질산이 무질서하게 흐르고 있는 도랑에 다양한 농도의 수산화나트륨을 뿌려 한순간에 중화시키는 격이다.
그냥 엄청난 냉기로 몽땅 꽁꽁 얼려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핵폭풍이 형성돼 고온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가스를 무작정 얼려버리면 팽창됐던 가스가 수축하면서 역방향인 안쪽으로 급격하게 움직이게 된다. 방향과 규모만 다를 뿐, 이 역시 일종의 핵폭풍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물리학적으로 본다면 아이스맨이 핵폭탄을 막아낸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재밌자고 보는 애니메이션에 왜 굳이 과학 법칙을 들이미냐고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원래 감성의 영역인 애니메이션에 논리의 최고봉인 물리학 이론을 들이댔으니 말이다. 그래도 친숙한 애니메이션에서 물리학 법칙을 생각해보면 물리학이 조금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독자 여러분도 그랬기를 기대한다.
이성수.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반도체 설계와 멀티미디어 시스템 설계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숭실대 IT대학 전자정보공학부 교수이며 과학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내 최초 컴퓨터통신망 연재 과학소설 ‘아틀란티스 광시곡’을 비롯해 다수의 과학소설 및 과학칼럼을 출판하고 연재했다. sslee@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