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도, 과목도 매우 많은 스탠퍼드대는 시험을 보는 방식도 정말 다양하다. 대부분의 인문학 수업은 시험을 보는 대신 에세이를 제출한다. 개인적으로는 에세이 작성이 어려워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는 수업을 선호한다.
사회학이나 이공계 수업들은 보통 학기 중에 중간고사를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세 번까지 본다. 기말고사는 마지막 수업으로부터 1주일 뒤에 치른다. 스탠퍼드대는 1년이 네 학기로 이뤄진 쿼터제이기 때문에 10주 안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다. 이공계 수업을 네 개씩 듣는 친구들은 약 6주 동안 중간고사만 여덟 번 보기도 한다.
그래서 특별히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할 만한 시험 기간은 없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4주차부터 8주차까지 내내 시험 기간이다. 시험은 수업 중에 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수업이 없는 저녁 7시에도 본다. 모든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살고 있어 가능한 제도인 것 같다.
보통 수강생이 많은 기초과목 수업일수록 학생들을 평가하기 쉽게 중간고사를 여러 차례 치르는 편이다.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시험이 많은 것이 오히려 점수를 만회하는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 기초과목인 일반화학 수업의 경우 3·6·9주차에 중간고사를 보고, 이 중에 가장 못 본 시험의 점수를 폐기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그래서 한 번은 시험을 못 보더라도 다른 두 번의 중간고사와 마지막 기말고사를 잘 치르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시험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2학년 때 들었던 심리학 개론 수업은 암기과목에 가까워서 한국의 중·고등학교 시험처럼 OMR 카드에 답을 체크해 제출하는 객관식과 서술형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래서 교과서, 수업, 토론 세션에서 배운 내용을 전부 외우고 있어야 했다.
이에 반해 화학 시험의 경우 고등학교 때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 풀었던 형식의 서술형 문제들로 이뤄져 있고, 필요한 공식들은 대부분 시험지 맨 앞장에 주어지기 때문에 암기보다는 내용을 잘 이해하고 연습문제를 많이 풀면 유리하다.
어떤 과목들은 ‘Take-home Exam’이라는 것을 실시한다. 말 그대로 시험을 집에서 기간 내에 풀어 제출하는 것인데, 교과서와 수업자료를 참고해서 풀기도 하지만, 시험장에서 보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 동안 자료를 보지 않고 문제를 풀 때도 있다. 이 경우 학생이 자료를 참고하는지는 양심에 맡긴다.
스탠퍼드대에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양심 제도다. 여기서는 ‘Honor code’라고 부르는데, 교실에서 시험을 함께 치르는 경우에도 감독관은 시험장 밖에 앉아서 질문이 있는 경우에만 답하고 정작 시험장 안에는 학생들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학교가 학생들을 믿는다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이 제도를 악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스탠퍼드대와 달리 1년에 두 학기로 진행되는 미국의 다른 대학은 기말고사 기간 직전 일주일을 ‘Dead Week’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일주일은 수업도, 과제도 없고 오로지 기말고사 준비만 하는 기간이다.
그런데 스탠퍼드대는 쿼터제라 그럴 여유가 없다. 그래서 말로만 ‘Dead Week’라고 하고, 실제로는 수업도 과제도 있는 시험 직전의 1주일을 보낸다. 재미있는 전통 중 하나는, 이 시험 전 일주일 동안은 밤 12시가 되면 다 같이 1분 동안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Primal Scream’이라고 불리는 이 전통이 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시험 준비의 고통을 나누자는 의미인 것 같다. 나는 1학년 때만 해도 함께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고학년이 된 지금은 1학년들의 절규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기말고사 기간은 보통 5일인데, 수업에 따라 이틀 만에 모든 시험이 끝날 수도 있고, 시험이 하나도 없다가 마지막 날에 몰리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집에 일찍 돌아가거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하다. 그렇지만 시험 준비 시간이 그만큼 짧다는 뜻이기도 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말고사 기간에는 수업이 없어 늦게까지 공부하고 늦게 일어나 점심을 먹는 경우가 많다. 이 때 특히 인기 많은 곳이 학교 안에 밤 9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열려있는 식당 세 곳이다.
‘Late Night’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출출한 새벽을 달래줄 고열량 패스트푸드를 판매한다. 나는 이곳에서 치킨 텐더를 많이 사먹었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끼리 방에 모여서 파티를 열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 시험이 끝난 후 느끼는 해방감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