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로 빵을 만들고, 흙으로 벽돌을 제조하는 일은 모두 분체공학의 산물. 이제는 신소재개발에 더 없이 중요한 기초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분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리둥절해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자로 '粉体로 표기됨을 알면 비로소 '분말 혹은 가루에 관계한 어떤 물질'임을 알고 고개를 그덕인다. 단순히 '가루'라고 하면 그 어감상 학문적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나 분체공학은 틀림없이 가루의 연구에서 출발했다.
분체는 주로 공업상의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분체를 알려면 공업에서 어떠한 재료가 분체로 간주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분체가 관계하는 산업은 매우 다양햔데, 크게 세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표1). 원료도 분체를 사용하는 경우, 중간공정에서 분체를 취급하는 경우, 제품이 분체인 경우등이다.
최근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분체를 제조하고 있으며 분체의 장점을 이용해서 큰 이득을 얻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분체에 의해 발생하는 대기오염 분진 폭발 진폐증 등 분체가 지닌 위험에도 동시에 노출돼 있다. 따라서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 분체의 상태나 거동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액체가루, 기체가루도 다룬다
분체(분립체)라고 하면, 무엇을 머리 속에 그리게 될까. 아마도 소금 설탕 인스탄트 커피 소맥분과 같은 식료품, 시멘트 안료 페라이트 초전도체와 같은 공업제품, 모래 꽃가루와 같은 천연물 등을 떠올릴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약7천만t의 석회석을 파내어, 3천만t 남짓한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분체재료다. 특히 석회석은 미세하게 분쇄, 서브(sub)미크론(1μ이하) 영역에 있는 탄산칼슘 미(微)분체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매년 2천5백만t을 수입하고 있는 철광석과 1천2백만t을 들여오는 곡류의 원료도 분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분체의 특성은 무엇인가. 대체로 다음 3가지가 분체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첫째 고체가 잘게 부서져 있을 뿐 아니라 그 각 부분이 서로 구속받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이 조건에 대해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이론(異論)이 나왔다. 액체의 기체중 분산계나 액체중 분산계도 분체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실제로 근자에 발행된 국제학술지 '파우더 테크놀러지'(powder technology)에서는 액적을 분체로 포함시키고 있다. 에어로졸(액체의 기체중 분산계)이 되면, 분산입자가 고체인지 액체인지 거의 분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체는 '유체중에 분산되 안정하고 명확한 계면을 가진 고체 또는 액체'를 포함시킨다고, 좀더 확장해서 정의해도 무방하다.
둘째 분체는 확률·통계적 특성을 갖는다. 분체의 갖가지 상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일정한 분포를 나타낸다는 얘기다.
분체입자는 원래 균일한 입자경을 갖고 있지 않다. 입자의 크기가 약간씩 다른 것이다. 그리고 형상과 비중도 서로 조금씩 다를 뿐더러 표면특성도 각각이다. 따라서 분체입자에 관한 각종 데이터는 통계적 처리를 거친 즉 확률적인 자료일 수 밖에 없다.
셋째 분체는 표면특성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분체는 고체이면서도 표면적이 엄청나게 크다. 더욱이 세분화하면 할수록 표면적은 더욱 커진다(표2). 때문에 계면(경계선)이라는 특별한 상태가 고체알맹이보다 훨씬 더 분체의 성질을 좌우하게 된다.
모든 물질이 다 그렇듯이, 분체도 특정한 기능을 부가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분체화하는 여러 목적중 하나는 많은 접촉점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충전구조에서 이 목표는 고체를 잘게 부수어 수를 늘리고, 표면적을 증가시키고, 미세하게 함으로써 달성된다. 수가 많아지면 고체를 넓은 평면에 펼칠 수도 있고, 형태를 자유로이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원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용되고 있었다. 예컨대 로스코동굴 속에 벽화를 그리니 구석기시대의 고대인은, 채색된 암석을 잘게 부수어 그 색깔이 벽면에 골고루 번지게 했다. 또 칠을 얇게 입힐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분말야금에 응용되기도
인류는 1만2천년 전부터 곡물을 재배해 왔다. 그들은 이 곡물들을 어떻게 해서 먹었을까. 쌀과 같이 연한 곡물은 단순히 익히거나 밥을 지음으로써 효과적으로 영양성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리의 경우에는 달랐다.
고민고민하던 옛 사람들은 마침내 비결을 알아냈다. 보리를 잘게 부수어 표면적을 늘리고, 물과 섞어 반죽을 하면 쉽게 수분이 침투하므로, 그런 후에 구우면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탄수화물 입자의 표면적을 크게 넓힌, 7천년전의 대발견이다.
같은 시기에, 인류는 몇몇 종류의 흙을 이겨서 다지면 벽돌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분체가 형태를 자유롭게 취할 수 있다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더구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이긴 흙 속에 짧게 썬 파피루스 잎 등을 섞어 넣어 보다 강한 성형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가지 성분을 혼합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분체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다.
옛 사람들은 단순히 고체를 잘게 부숴 작게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득을 얻어냈다. 지금도 표면적을 증가시켜 잘 타게 하거나(미분탄 연소), 미세한 금속가루를 활용, 형태가 자유로운 다공질 물질을 만들고 있다(분말야금).
파행적으로 발달해
위상화학(topochemistry)에 포함되는 분체과학은 공학적 측면과 이학(理學)적 측면이 있다. 예컨대 분체가 화학공업을 비롯, 의약품 농업 식품 제련 요업 등의 원료 중간체 제품으로 활용된다면 분체공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반면 분체역학 분체물성 분체화학 분체계측 등을 다룬다면 분체의 이학이 되니다. 물론 그 경계는 명확치 않다(표3).
분체공학은 여러 형태로 세분화돼 있으나 아직 기초적인 이념과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특히 분체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크게 미흡하다.
단위조작을 중심으로 전문분야가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만 치우친 탓이다. 분체의 거동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하고 원인과 결과, 입구와 출구에만 집착하는 연구가 지금껏 유행했던 것이다. 그 결과 분체공학과는 거의 무관한, '설계기법'등이 연구의 주류를 이뤄왔다.
실제로 전문가가 한 분야에만 너무 깊이 파고 들면 연구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 더 깊숙이 증진하기 위해서는 '안식각(angle of repose)과 같이 퍼진 모양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심오한 곳에 이를 수 없다"는 한 과학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신소재 개발에도 분체처리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화학반응에 의해 제조된 분체의 활약이 돋보인다.
원료분체의 제조기술은 그 목적에 따라 선택된다. 특히 그 생성계가 고상(固狀)이냐, 액상(液狀)이냐, 기상(氣狀)이냐에 따라 제조방법이 달라진다.
그런데 종래에 널리 쓰였던 기계적 분쇄법의 경우 불순물의 혼입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는 화학적인 반응에 의한 분체의 제조가 유행을 타고 있다. 또 침전생성이나 염류의 열분해, 분체원료의 고상반응 등도 최근 크게 각광을 받는 분체제조법이다. 그리고 보다 잘게 빻아진 재료를 얻기 위한 CVD(Chemical Vapor Deposition)법, 예를 들면 SiC${ㅣ}_{4}$나 TiC${ㅣ}_{4}$등의 분해에 의하여 SiO${O}_{2}$나 Ti${O}_{2}$를 제조하는 방법도 널리 쓰이는 제법이다. 이밖에 금속 초미립자의 제조에 이용되고 있는 PVD(Physical Vapor Deposition)법, 불활성 기체중에서 금속을 증발시켜 미립자를 제조하는 기법이 가루공학의 신무기로 떠오르고 있다(표4).
화학적 방법으로 얻어진 분체는 대체로 결정성장을 한다. 따라서 입자형상이 매우 규칙적이고 입도의 제어도 용이하다. 아울러 제법에 따라서는 복잡한 구조, 예를 들어 형해입자나 고차의 응집입자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때로는 응집하여 부피가 큰 분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체를 처리하는 기술이 크게 미흡한 실정이고, 처리대상도 특수한 물질에 한정돼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혼합 수송 정량공급 성형 등의 기술을 확립하는 작업이 곧 시작돼야 한다.
분체기기→분체재료→기초분야 순(順)
분체는 현재 이학과 공학의 각 방면에서 현대과학에 어울리는 깊이를 가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간의 통합성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또한 이학과 공학을 결합시키는 중간 매개적 연구도 적다. 이학의 각 분야간의 결합도, 공학의 각 분야간의 관련도 부족하고, 이론과 응용을 연결해줄 가교도 아주 불충분한 상태다.
일본분체공학회에서 분체공학과 관련해 실시한 기술예측 설문조사 자료가 있다(표5). 실현 예상시기중 삼각형의 밑변은 회답자의 수를 나타내고, 정점의 위치는 그 평균치다.
이 표를 보면 실현예측시기가 분체기기→분체재료→기초분야의 순으로 나타난다. 더구나 상당히 오랜 기간 수요선행형 공학선행형 경향이 지속될 전망임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이른바 신소재 혁명이란 들뜬 분위기 속에서, 그 기초의 하나인 분체공학이 우리가 어리둥절할 만큼 빠른 속도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의 제4의 상태(가루)를 다루는 분체공학은 항간의 생각과는 달리 화려함이 없는 수수한 학문체계이다. 그중에는 학문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과제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좀체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