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요소를 바꾸는 것은 인공지능(AI)이 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 색깔을 다른 색으로 염색해줘’와 같은 명령은 AI가 쉽게 수행하죠. 하지만 ‘사람 얼굴을 고양이로 바꿔줘’와 같은 명령은 아직 잘 수행하지 못합니다. 즉, 하나의 개체를 아예 성격이 다른 개체로 바꾸는 건 잘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앞으로 이것이 인공신경망의 과제가 될 겁니다.”
9월 2일 경기도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산학협력센터의 한 강의실. 2학기 개강 첫날, 처음 개설된 ‘심층신경망’ 수업 현장을 찾았다. 이 수업은 성균관대가 이번에 신설한 일반대학원 인공지능학과의 핵심과목 26개 중 하나다.
성균관대를 포함해 KAIST, 고려대 등 3개 대학은 9월부터 AI대학원을 열고 AI 전문 인력 육성에 시동을 걸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대학원별로 5년간 90억 원을 지원한다. 하반기에는 2개 대학을 추가로 선정한다.
과학동아는 3개 AI대학원을 찾아 대표 수업을 하나씩 들어 봤다.
성균관대∣최다 교원 확보, 하드웨어 전문가 양성
심층신경망을 강의한 이종욱 성균관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심층신경망을 활용한 AI의 학습 기법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 실생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라며 “특히 오늘 수업은 컴퓨터 비전과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심층신경망이 어떻게 쓰이는지 예제를 중심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인공지능학과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신이 있다는 점이다. 성균관대는 기존에 운영하던 AI‧로봇학과를 인공지능학과로 전면 재편했다. AI‧로봇학과를 비롯해 소프트웨어학과, 전기전자과에 흩어져 AI를 연구하던 교수들을 모두 인공지능학과로 모았다. 덕분에 세 학교 중 가장 많은 15명의 전임교원을 확보했다.
로봇 분야를 연구했던 만큼 AI 구동 프로세서 등 하드웨어 연구에도 강점이 있다. 이지형 성균관대 인공지능학과 학과장은 “AI 자체를 개발하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고성능 AI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2016년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펼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는 1MW(메가와트) 이상의 전기를 썼다. 이 정도면 아파트 몇 개 동의 전기 소비량에 해당한다.
이 학과장은 “구동 속도와 계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AI에 특화된 하드웨어 프로세서를 개발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커리큘럼에도 드러난다. ‘인공지능’ ‘기계학습’ ‘데이터마이닝’ 등 소프트웨어 관련 과목과 함께 ‘VLSI 설계’ ‘고급컴퓨터구조’ ‘임베디드시스템’등 하드웨어 과목도 개설됐다. 또 ‘병렬및분산컴퓨팅’ ‘SW-HW 통합설계론’ ‘인공지능 구조 최적화’ 등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융합한 과목도 3개 포함됐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과목의 비율은 약 2대 1이다.
성균관대 인공지능학과는 이번에 석사와 박사과정을 포함해 총 25명을 선발했다. 내년부터는 두 학기에 나눠 연간 50명(석사 40명, 박사·석박사통합 과정 10명)을 선발해 AI 전문 인재로 양성할 예정이다.
KAIST∣젊고 유능한 교수진, 취향 존중하는 커리큘럼
“One way to control the capacity of a learning algorithm is by choosing its hypothesis space, the set of functions the learning algorithm is allowed to select as the solution(학습 알고리즘의 능력을 제어하는 방법중 하나는 학습 알고리즘이 솔루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의 집단인 가설 공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9월 7일 대전 유성구 KAIST LG이노베이션홀 강의실에서 진행된 ‘인공지능을 위한 기계학습’ 수업은 마치 해외 대학 강의를 연상시켰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KAIST의 규정에 따라 이 수업도 영어로 진행됐다. 기계학습에 관한 수업인데, PPT에는 수식이 난무했다. 영어에 수학이라니,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하지만 학생들의 눈은 빛났다.
수업을 진행한 황성주 KAIST AI대학원 교수는 “오늘 수업은 선형대수학, 최적화 이론 등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수학에 관한 내용”이라며 “각자 학부에서 배운 내용을 상기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복습 개념의 수업”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 수업의 가장 큰 특징으로 프로젝트 과제를 꼽았다. 황 교수는 “학생 5명이 한 팀을 이뤄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과제로 수행해야 한다”며 “기초과목이지만 스스로 학생들이 주제를 선정해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도록 유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37세의 젊은 교수다운 유연함이었다.
KAIST AI대학원의 최대 장점은 젊고 유능한 교수진이다. 현재 8명이 소속된 AI대학원 교수진은 평균 연령이 40세로 비교적 젊다. 연구 성과는 우수하다. 6년간 이들이 인공신경망학회(NeurIPS), 국제기계학습콘퍼런스(ICML), 미국 인공지능학회(AAAI), 인공지능국제회의(IJCAI)등 AI 분야의 대표적인 국제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만 80편에 이른다.
정송 AI대학원장은 “특히 기계학습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ICML과 NeurIPS에 논문을 발표한 한국인 상위 10명 중 3명이 KAIST 교수”라며 “내년에는 2명을 추가로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AIST AI대학원의 커리큘럼은 AI와 기계학습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핵심전공과정뿐만 아니라 AI와 다른 전공을 융합한 융합전공과정과 AI를 주전공으로 다른 분야를 부전공으로 삼는 융합 부전공과정도 운영한다.
정 대학원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춰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며 “특히 융합과정의 경우에는 AI대학원의 교수와 다른 학과의 교수가 공동으로 지도교수를 맡아 학생을 지도한다”고 설명했다.
실무 경험도 커리큘럼에 공식적으로 포함시켰다. 국내외 기업에서 인턴십을 수료해야 졸업할 수 있다. 정 대학원장은 “AI대학원을 위한 성남연구센터가 곧 운영될 예정”이라며 “카카오, 네이버 등 IT 기업이 다수 포진한 성남에서 학생들이 손쉽게 기업들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KAIST AI대학원은 매년 60명(석사과정 40명, 박사과정 20명)을 선발해 AI 전문 인력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올해는 총 32명을 선발했다.
고려대∣실용주의 앞세운 산학협력
9월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우정정보관의 한 강의실에서는 석흥일 인공지능학과 교수의 ‘기계학습’ 강의가 한창이었다.
“As soft prerequisites for AI, we assume basic comfortability with linear algebra and matrix calculus and introductory probability(AI를 배우기 위해서는 선형대수학과 행렬 미적분 그리고 입문 수준의 확률통계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고려대 일반대학원 인공지능학과 역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날 강의 주제는 AI의 기초에 해당하는 선형대수학이었다.
석 교수는 “AI의 핵심인 기계학습에는 딥러닝 외에도 다양한 알고리즘이 있다”며 “이 알고리즘들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하려면 선형대수학을 포함한 수학적 지식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AI대학원의 가장 큰 특징은 산학협력을 통한 실용적인 인재 양성이다. 이성환 주임교수는 “헬스케어, 금융, 지능형 에이전트, 게임, 자율주행, 국방 등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AI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학과 커리큘럼과 연구프로그램 모두 산업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때문에 딥러닝, 빅데이터, 신경망 등 AI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 수업 외에도 ‘컴퓨터 비전 기술’ ‘자연어 처리’ ‘음성인식’ 등 AI의 활용 과목들과, ‘IT 창업 및 경영’ ‘지적재산권법’ ‘기술사업화’ ‘기술마케팅’ ‘창업보육 정책 및 법규’ 등 산업현장과 창업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수업이 모두 전공필수로 지정돼있다.
이 주임교수는 “산학협력이나 창업과 관련된 수업의 경우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문가를 산학협력 중점교수로 영입해 심도 있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학기에는 전체 커리큘럼 중 9개 과목을 우선 개설했다.
졸업 요건 중에는 국내외 AI 분야 기업에서 3개월 이상 인턴십을 이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를 위해 고려대는 여러 기업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학생들이 산업현장에서 견문을 넓힐 수 있게 하고 있다. 특히 국내 5개 기업(넷마블, 삼성전자, NC소프트, 인터파크, 에이아이트릭스)으로부터는 연구비를 지원받아 기업이 필요로 하는 AI 기술을 학생들이 협업해 개발하는 산학협력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 인공지능학과는 나머지 두 AI대학원과 달리 석사과정이 없다. 연간 50여 명의 정원 전원을 박사과정 또는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선발한다. 첫 학기인 이번 학기에는 총 28명을 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