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학과 신경생리학의 발전으로 신경제어가 가능해짐에 따라 인공귀나 인공눈 등 신경보철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천개의 안구, 1천5백개의 간, 3천쌍의 고환. 어느 러시아 회시가 인간의 장기를 암거래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 회사의 매매계약서는 지난 11월 하순 캐나다의 텔레비전방송에 소개되어 시청자를 경악시켰다. 사람의 장기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짭짤한 돈벌이가 되는 유망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장기의 공급원은 죽은 사람, 특히 교통사고의 사망자이다. 그러나 시체에서 빼낸 장기로는 물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중남미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암거래상의 사냥감이 되고 있다. 1992년 온두라스의 수도에서 8백여 명의 어린이가 실종되었는데, 장기 장사꾼에게 납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환자의 각막을 떼어내서 불법판매한 혐의로 정신병원이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숟가락으로 눈알을 도려낸 어린 환자의 주검이 늪에서 발견되어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각막은 개당 7천달러에 암거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공장기의 개발
사람의 장기는 질병과 기능장애를 극복하여 수명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그 수요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더욱이 손상된 인체를 타인의 장기로 치환하는 이식기술의 발달로 장기 매매사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를 인공적으로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인공장기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신체의 거의 모든 부문에 대해 개발되고 있다. 코뼈 손가락뼈 발가락뼈 등 인공뼈, 어깨관절 팔관절 무릎관절 등 인공관절, 힘줄 근육 피부 등 인공조직은 신체의 기능에 버금갈 정도로 개발되어 실용화되고 있다. 인공수정체 인공치아 의수족은 국내외적으로 상업적인 생산단계에 있다. 인공유방이나 인공성기 역시 거의 완벽한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장기 중에서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개발된 것은 인공신장과 인공심장이다. 인공신장은 혈액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서 피를 깨끗하게 하는 장치이다. 처음에는 기구가 커서 체외에 설치하였으나 몸에 휴대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정밀성이 요구되는 인공장기는 인공심장이다. 1982년 미국 유타대학에서 시술하여 1백13일동안 생명을 연장시킨 뒤부터 여러차례 이식수술에 성공하였다. 생존기간의 최고기록은 6백22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에서 설계한 인공심장으로 송아지 등 동물에 실험 중이다. 이밖에도 당뇨병 치료를 위하여 인공췌장이 개발되고 있다.
이와같이 인공장기에 의하여 인체의 손상된 부위가 대부분 보완되고 있지만 신경계의 보철(補綴) 기술은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다. 신경계가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신경계의 정점인 뇌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의 기능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신경보철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감각의 신경보철
신경계는 외부환경의 정보를 처리하여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기관이다. 외부의 정보는 맨먼저 감각기관의 수용기(receptor)세포에 의하여 탐지된다. 감각수용기는 입력된 정보를 감각신경으로 보낸다. 감각신경이 이 정보를 뇌로 전달하면 정보가 처리된다. 뇌의 출력정보는 운동신경에 의하여 효과기(effector)세포로 보내진다. 효과기는 정보의 처리결과에 상응하는 신체의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신경계가 일단 손상되면 감각 도는 운동기능의 장애가 발생한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방식으로 신경계의 결손기능을 보완하려는 시도를 신경보철이라 이른다.
신경계는 재생이 불가능하므로 대부분의 장애자는 온전한 다른 감각을 빌려쓴다. 예컨대 맹인용 점자는 촉각을, 귀머거리의 독순술(讀盾術)은 시각을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감각대체를 응용한 장치로는 원격로봇(telerobot)과 보코더(vocoder)가 있다. 일본에서는 원격조작되는 멜독(MELDOG)로봇을 개발했다. 맹인 인도견의 역할을 한다. 로봇의 시각을 빌리는 셈이다. 보코더는 음성을 분석 및 합성하는 장치이다. 보코더를 착용한 청각장애자는 소리의 진동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독순술로 지각한 상대방의 언어를 더욱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개념의 신경보철기술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신경보철은 전자공학과 신경생리학의 발전으로 신경제어(neural control)라 불리는 분야가 출현함에 따라 80년대 후반부터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주된 연구목표는 신경계의 결손부위를 대체하는 전자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경계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손상된 감각이나 운동기능을 복구 또는 보완하는 장치이다. 현재 개발중인 신경제어장치는 인공눈과 인공귀, 마비된 근육 자극장치, 심장박동조절기, 고통 감소 또는 성기능 치유를 위한 신경자극장치 등 다종다양하다(그림1). 이 가운데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분야는 감각에 관련된 신경보철이다.
감각은 인간이 환경과 접촉하는 첫 단계이다. 환경의 변화에 관한 정보, 즉 자극을 받으면 감각경험이 일어난다. 감각경험은 감각계통의 신경회로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유발된다. 감각신경회로는 수용기와 감각뉴런으로 구성된다. 수용기는 환경 속에 산재되어 있는 특정 형태의 물리적 에너지를 전기적 에너지로 바꾸어준다. 눈의 간상체와 추상체세포, 귀의 유모세포, 혀의 미뢰가 대표적인 수용기이다. 수용기의 정보는 감각뉴런에 의하여 뇌의 신피질로 전달된다. 신피질은 감각정보에 따라 처리하는 부위가 다르다. 예컨대 시각정보는 후두엽의 시각피질, 청각정보는 측두엽의 청각피질에서 제각기 처리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뇌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해석함으로써 외부세계를 지각하게 된다. 따라서 감각기관 또는 신피질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지각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신경계의 결손기능을 전자장치로 대행시키는 기술이 감각신경보철이다. 주된 연구분야는 시각 및 청각장애이다.
망막과 시각피질
시각은 눈에 들어오는 광선자극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시각체계는 광학계통 망막 시각통로의 세단계로 나눌 수 있다. 광학계통은 눈의 구조(그림2)에서 망막을 제외한 부분이다. 주요기능은 입력되는 광선에너지에 담겨 있는 정보, 즉 이미지가 망막 위에 떨어질 때 초점을 맞추어주는 일이다. 광선이 눈에 들어올 때는 제일 먼저 일종의 보호 창문인 각막과 마주친다. 각막은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하여 광선을 구부리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공막에 의하여 지탱된다. 눈의 하얀 부분으로 보이는 것이 공막이다. 각막을 지난 광선은 젤리와 같은 수양액을 횡단하여 동공을 통과한다. 동공은 홍채의 중심에 있는 구멍이다. 홍채는 사진기의 조리개처럼 동공의 크기를 자동 제어하는 볼록렌즈 모양의 수정체로 가는 빛의 양을 조절한다. 동공과 함께 모양근에 의하여 렌즈의 초점이 조절된다. 모양근은 수정체에 붙어 있는 근육이다. 수정체를 떠난 광선은 눈의 모양을 유지시키는 초자액을 통과한 다음에 망막에 도달한다. 눈에 들어온 광선은 여러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각막에 들어온 광선에너지의 절반 정도가 망막에 도달하게 된다.
시각체계의 두번째 단계인 망막은 수용기와 뉴런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시각정보의 변환이 종료됨과 동시에 처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눈동자의 뒤에 위치한 망막은 두께가 종이 한장 정도에 불과하지만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망막의 수용기에는 간상체와 추상체가 있다. 간상체는 명암정보만을 처리하지만 추상체는 빨강 파랑 초록 등 세종류의 색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색채시각을 제공한다. 색맹이나 색약인 사람은 추상체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수용기는 기능뿐만 아니라 분포된 상태 역시 서로 다르다. 간상체는 망막의 주변 부위에 많지만 추상체는 중심부위, 특히 중심와에 밀집해 있다. 하나의 눈은 약 6백만개의 추상체와 1억2천만개의 간상체를 갖고 있다.
수용기의 전기에너지는 망막에 있는 네 종류의 뉴런을 차례로 통과한다. 끝에 있는 뉴런은 신경절세포이다. 한눈에 1백만개가 있으므로 1억2천6백만개의 수용기로부터 신경절세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시각정보의 압축이 일어난다. 신경절세포의 축색돌기가 모여서 시신경을 형성한다.
시각체계의 마지막 단계인 시각통로는 망막의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경로이다. 시각통로는 시신경에서 출발하여 시각피질에서 끝난다.
인공시각의 가능성
시각장애는 시각피질이나 망막에 이상이 있을 때 야기된다. 맹인의 80%는 시각피질, 나머지 20%는 망막의 수용기가 손상되어 있다. 따라서 인공시각은 지난 25년간 대부분 시각피질의 전기자극을 통해 시각을 유도하는 연구에 집중되었다. 먼저 장님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시각피질에 수백개의 미세전극을 이식한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크기의 카메라가 부착된 특수안경을 쓴다. 카메라에 잡힌 이미지는 전선을 통해 두뇌에 삽입된 전극으로 보내진다. 카메라의 전기신호가 미세전극을 통해 시각피질의 뉴런을 자극함으로써 장님은 이미지를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맹인의 20%는 온전한 시신경을 갖고 있지만 유전적 결함이나 질병으로 망막의 수용기가 손상되어 있다. 인공망막이 필요한 것이다. 인공망막은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전자소자이다. 인공망막을 눈의 망막 앞에 이식하여 신경절세포를 전기적으로 직접 자극하면 시각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칩으로 인공망막이 개발되었고 이것을 눈에 이식하여 망막에 고정시키는 기술까지 개발되었지만 아직까지 시술은 되지 않고 있다. 눈의 이식거부 가능성에 대해 검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토끼의 눈에 집어넣고 실험 중이다. 어쨌든 망막이식으로 맹인이 글을 읽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예상된다.
유모세포의 죽음
청각은 귀가 소리를 들을 때 시작된다. 귀는 소리의 기계적 에너지를 모으는 외이, 이 에너지를 가능한 한 원래 그대로 전달하는 중이, 이 에너지를 전기적 에너지로 바꾸는 내이로 구성된다(그림3). 깔때기와 같은 작용을 하는 외이는 귓바퀴와 외청도를 포함한다. 귓바퀴가 소리를 모으면 외청도를 지나서 고막에 이른다. 고막은 외이와 중이를 갈라놓은 경계이다. 소리의 진동이 고막을 두드리면 고막은 중이에 있는 청소골을 가볍게 흔든다. 추골 침골 등골 등 세개의 작은 뼈들이 연쇄를 이루고 있는 청소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귀의 내부로 들어오면서 약해진 소리의 진동을 더욱 세게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청소골을 지나온 고막의 진동은 등골의 움직임에 따라 내이에 있는 난원창으로 전달된다. 고막과 난원항은 크기가 약 20대 1이므로 고막의 약한 진동에도 난원창은 대단히 크게 진동한다. 난원창은 와우각(蝸牛殼)의 입구이다. 달팽이 모양의 완두콩만한 와우각 안에는 청각 수용기가 들어 있다. 등골이 난원창 위를 누를 때 와우각을 가득 채운 액체 안에서 압력파가 생성된다. 압력이 높을 때는 와우각의 뒷문에 해당되는 정원창에 의하여 경감된다. 압력파는 와우각에 깔려 있는 기저막을 진동시킨다. 망막과 유사한 피부조각으로서 그 위에 털이 늘어서 있다. 이 털이 연결된 세포가 유모세포이다. 한 귀에 1만6천개의 유모세포가 네줄로 와우각에 붙어있다. 기저막의 진동으로 유모세포가 진동하면 털이 구부러지면서 물리적 에너지가 전기적 에너지로 변환된다. 이 에너지는 와우각에서 시발되는 청신경을 따라서 뇌의 청각피질로 보내진다.
청각장애는 대부분 유모세포의 결손에서 비롯된다. 와우각의 철통같은 보호를 받지만 노화, 항생제 등 약물 또는 각종 소음에 의하여 쉽게 죽는다. 야구장의 함성소리로 유모세포의 털이 수십여개씩 파손될 정도이다. 요컨대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유모세포를 잃게 된다. 남자의 경우 평균적으로 65살이 되면 출생 당시 유모세포의 40% 가량이 없어진다. 노인들이 소리를 증폭하는 보청기를 끼는 이유이다. 그러나 청각장애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와우각 이식이 필요하다.
결실맺은 인공와우각 연구
청각장애자는 유모세포가 없더라도 청신경은 대개 살아있다. 따라서 청신경을 인위적으로 자극하면 뇌가 소리를 지각할 수 있다. 청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신경보철장치가 인공와우각이다. 마이크로폰 음향처리장치 수신기 미세전극의 네가지로 구성된다. 귀 안의 마이크로폰이 소리를 모아서 허리에 휴대한 음향처리장치로 보내면 소리가 전기적 신호로 바뀐다. 이 신호는 두개골에 이식된 수신기로 중계된다. 수신기의 신호는 전선을 따라서 와우각의 오목한 부분에 박혀있는 미세전극으로 보내진다. 미세전극이 전기적 자극을 청신경으로 전달하면 뇌가 소리를 듣게 된다. 말하자면 인공와우각은 유모세포의 에너지 변환과정을 우회하여 청각을 회복하는 장치이다.
인공와우각 연구는 80년대에 결실을 맺었다. 미국 식품의약품국(FDA)는 1984년에 처음으로 성인용 인공와우각의 상용화를 승인했으며 1990년에는 그 용도를 어린아이까지 확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이식수술에 성공하였다. 세계적으로 아이들 2천명을 포함하여 8천명 정도가 시술을 받았다. 이 중에서 20%가 정상적인 청각기능을 회복했으며 60%는 독순술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20%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오랫동안 포유류나 조류의 손상된 유모세포는 재생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5년 새의 유모세포가 다시 성장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에 힘입어 포유류를 연구한 결과, 1993년 3월에 마침내 기니피그(실험쥐)에서 유모세포가 재생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연구진들은 사람의 유모세포를 재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 흥분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연구결과가 나올지 그 귀추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