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구축 10주년 4개의 눈으로 우주를 보다

 

“해외 연구자들이 자국의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를 발표하는 걸 볼 때 부러웠죠.”
10년 전, 해외 천문학자들이 수천만 광년 떨어진 천체를 자국의 전파관측망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할 때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은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던 2009년, 한국에도 처음으로 초장기선 전파 간섭계인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Korean VLBI Network)’이 구축됐다. 비로소 우리나라 천문학자들만의 새롭고 독특한 연구가 빛을 발할 준비가 된 것이다.

 

올해 4월 초, 블랙홀의 그림자가 담긴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붉고 어스름한 빛 한가운데로 검은색 동그라미가 뻥 뚫린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블랙홀의 모습이었다. 


당시 미국 ‘천체물리학저널 레터스’ 특별판에는 이에 관한 논문이 6편 발표됐는데, 여기에 유독 눈이 가는 이름들이 있었다. 블랙홀 관측에 기여한 위대한 과학자 200여 명 사이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한국 과학자 8명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중 5명은 한국천문연구원 소속으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었다. doi: 10.3847/2041-8213/ab0ec7


발표 직후 블랙홀 관측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속한 국가에서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우리나라도 서울에서 간담회를 열고 블랙홀 그림자 관측에 대한 연구결과와 그 의미를 설명했다. 세계적인 천문 연구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주변국에 머물렀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KVN 덕분이었다.


전파망원경을 여러 기 연결하는 이유


여러 빛 중 하나인 전파는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더 긴 빛이다. 빛의 파장이 길다는 건 여러 가지 뜻을 갖는다. 그중 하나가 아주 멀리서,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출발한 빛이라는 의미다. 우주의 팽창으로 별이 지구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별이 발하는 빛의 파장은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더 멀리, 그리고 더 자세히 우주를 보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바람이었다. 그래서 아주 멀리 있는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 전파를 수신하고 이를 컴퓨터로 다룰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바꿔줄 전파망원경이 필요했다.


이런 바람으로 1931년 우주에서 오는 우주전파가 처음 발견된 이후 전파천문학이 탄생했고, 전파망원경도 발전을 거듭해 광학망원경(가시광선)으로는 볼 수 없던 천체들을 하나씩 관찰해 나갔다. 


하지만 파장이 길다는 전파의 특성상 극복할 수 없는 한계도 명확했다. 전파로 얻은 천체 사진의 분해능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가령 전파망원경은 광학망원경보다 구경이 200배 커도 분해능은 100분의 1이 안 되는 수준이다. 과거 전파망원경의 분해능을 높이기 위해 구경을 계속 키워봤지만, 그렇다고 구경을 무한정 크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전파천문학자 마틴 라일은 전파간섭계와 이를 활용한 구경 합성 기술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 기술은 멀리 떨어진 두 전파망원경이 각각 수신한 전파 신호를 합성하는 것으로, 그 결과 두 전파망원경의 거리에 해당하는 구경의 초대형 망원경으로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가령 1km 떨어진 전파망원경 두 대를 연결하면 구경이 1km인 전파망원경 한 기와 동일한 분해능을 보이는 것이다.


이 효과를 이용하기 위해 수백km 이상 멀리 떨어진 전파망원경들이 특수한 방법으로 연결됐다. 우선 서로 다른 전파망원경에서 동시에 같은 천체를 관측한 데이터를 저장장치에 모아 상관센터(correlation center)라는 곳으로 전송한다. 그 뒤, 상관기라고 불리는 일종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데이터들을 합성한다. 이를 초장기선 전파 간섭계(VLBI·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라고 부른다.


VLBI는 전파망원경의 거리가 멀수록 천체 이미지의 분해능이 더 높아지고, 전파망원경이 많을수록 더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국가 간 공동연구로 진행된다. 


1967년 첫 VLBI 관측이 이뤄진 이후 ‘유럽 VLBI 전파망원경 네트워크(EVN·European VLBI Network)’, ‘아시아-태평양 망원경(APT·Asia Pacific Telescope) 네트워크’등 국제공동연구 네트워크가 꾸려졌고, 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밝은 천체들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 올해 4월 10일 발표된 블랙홀 그림자 사진.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자 5명이 이 연구에 일조했다.
 

 

구경 21m 전파망원경 3기 연결해 구경 500km 효과


이런 흐름 속에 2001년 우리나라도 총 3기의 전파망원경을 배치해 VLBI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KVN 탄생이 결정된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을 주축으로 구경 21m의 전파망원경을 서울(연세대), 울산(울산대), 제주(탐라대)에 각각 설치해 초정밀 천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측지학, 지구물리학 등의 연구에 활용하기로 했다.


“보람이 있었던 만큼 고생도 엄청 했죠.”


2004년부터 KVN 건설에 참여했고, 2014년부터 4년간 KVN그룹장을 맡았던 변도영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KVN그룹 책임연구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국내에는 VLBI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인력이 거의 없었다. 천문학자들과 공학자들이 모여 전파망원경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부터 소프트웨어까지 하나씩 만들어갔다. 다행히 국제 협력이 활발한 분야여서 유럽,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변 책임연구원은 “울산 전파망원경이 가장 먼저 들어섰는데, 당시 1주일간 함께 망원경을 테스트하던 미국 엔지니어들이 나를 보며 제발 잠 좀 자고 오라고 했다”며 “당시 KVN의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테스트 기간에는 잘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KVN을 구축할 때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은 서로 떨어진 망원경의 시간을 맞추는 것이었다. VLBI 관측의 핵심은 ‘동시에’ 관측하는 것인데, 전파망원경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시차가 발생했다. 이를 각 전파망원경에 있는 수소원자시계와 소프트웨어로 단 10µs(마이크로초‧1µs는 100만분의 1초) 이하의 차이가 나게 맞춰야 했다.


2008년 건설된 망원경 3기는 이런 조정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09년 블랙홀이 포함된 활동성은하핵을 대상으로 첫 관측에 성공했다. 3기의 전파망원경은 구경 500km의 전파망원경과 같은 분해능을 나타냈다. 이후 KVN은 활동성은하핵과 더불어 만기형별을 연구하며 별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한편,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독보적인 연구 영역도 구축했다.

 

▲ PDF 파일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KVN만의 ‘동시 다주파수 관측 시스템’ 수출


지난 10년간 KVN의 최고 성과라면 단연 여러 종류의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하는 ‘동시 다주파수 관측’ 기술 개발을 꼽을 수 있다. 주파수는 파장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여러 파장의 빛을 동시에 관측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변 책임연구원은 “전파망원경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대기 조건도 서로 다르다”며 “각 전파망원경에서 수신하는 신호가 대기의 영향을 받아 수시로 변한다”고 말했다. 특히 KVN이 관측하는 밀리미터파(파장이 1~10mm인 전파)의 경우 대기 중 수증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때문에 KVN 전파망원경 3기가 수신한 신호를 합쳐 원하는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신호의 위상부터 맞춰야 한다. 위상이 다른 신호를 합치면 원하는 데이터 대신 잡음만 나온다. 가령 전파망원경 두 기가 100GHz 대역에서 파장 3mm인 밀리미터파를 수신한다고 할 때 동일한 위상을 유지하는 시간은 30초에 불과하다. 위상 조정 없이는 원하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길이가 30초로 매우 짧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주파수를 관측하면 이 시간을 대폭 늘릴 수 있다. 변 책임연구원은 “여러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하면 그중 위상이 잘 변하지 않는 낮은 주파수의 신호로 대기에 의해 생기는 위상 변화를 추적할 수 있고, 이를 이용해서 높은 주파수 대역의 위상 변화를 보정할 수 있다”며 “관측 지속 시간이 두 시간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KVN그룹 연구원들은 이전에 없던 수신시스템을 새롭게 개발했다. 기존에는 전파망원경의 전면부에 놓인 여러 수신기가 번갈아 작동하는 방식이었다면, KVN그룹 연구원들은 수신기 사이에 전파를 주파수별로 나눌 수 있는 필터와 거울을 설치해 동시에 여러 주파수를 관측할 수 있게 했다. 여러 주파수의 전파가 들어오면 필터를 통해 주파수가 하나씩 걸러지고, 걸러진 전파는 각 주파수에 맞는 수신기에 꽂히는 식이다. 


2011년 3개 주파수(22GHz, 43GHz, 86GHz)를 동시에 관측한 데 이어, 2013년에는 129GHz를 추가해 4개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2018년에는 지구로부터 약 5200광년 떨어진 만기형별인 VX Sgr을 관측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여러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한 장점을 살려 천체의 입체적인 공간분포를 더 정밀하게 관측한 결과, 특정 전파가 바깥쪽에서 더 많이 나오는 비대칭형 구조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doi: 10.1038/s41467-018-04767-8


한국보다 먼저 구축된 해외의 전파망원경에는 이런 동시 다주파수 관측 시스템이 없다. KVN의 동시 다주파수 관측 시스템이 알려지면서 해외 천문대들이 KVN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KVN 시스템을 그대로 수출할 수는 없었다. 수신시스템이 가로세로 2m로 꽤 큰 공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KVN은 건설 당시부터 동시 다주파수 관측 개발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안테나에 수신기를 놓을 공간을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훨씬 전에 구축된 해외 전파망원경은 수신기를 위한 여유 공간이 가로세로 1m 안팎이었다. 


이에 동시 다주파수 관측 시스템을 처음 개발한 한석태 전파천문본부 전파기술개발그룹 책임연구원이 다시 한 번 기지를 발휘했다. 수신시스템의 크기를 키운 원인인 필터의 각도와 거울의 초점 거리를 최적화해 전체 크기를 가로 60cm, 세로 98cm로 대폭 줄인 것이다. 이 크기면 해외 전파망원경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한 책임연구원은 2018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큰 VLBI 학술대회인 ‘유럽전파천문학학술대회’에서 이를 처음 공개했다. 이후 지금까지 핀란드, 이탈리아,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KVN의 동시 다주파수 관측 시스템을 구매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의가 진행 중인 나라도 있다. 한 책임연구원은 “여러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하는 KVN만의 독창적인 관측기법은 향후 국제 전파천문 관측기법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 네 번째 전파망원경 구축


KVN은 구축 후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전파관측망으로 발돋움했다. KVN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오충식 KVN그룹 선임연구원은 “1년에 두 차례 KVN 사용 신청을 받고 있는데, 신청자 중 80%는 해외 과학자들”이라고 말했다.


KVN 연구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도약을 앞두고 있다. 현재 가장 큰 목표는 내년부터 건설을 시작할 KVN의 네 번째 전파망원경이다. 변 책임연구원은 “전파망원경의 수가 늘어날수록 왜곡이 적고 감도가 좋아 더 정확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며 “현재 강원 평창, 영월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으며, 내년 초에 착공해 2023년 완공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전파망원경은 더 높은 주파수 대역도 관측할 수 있게 건설할 계획이다. 변 책임연구원은 “주파수가 높아지면 분해능 또한 높아진다”며 “새로 건설할 KVN 전파망원경은 230GHz 대역까지 동시에 관측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수의 전파관측망과의 협력도 이어갈 계획이다. KVN은 2012년부터 일본, 중국과 함께 전파망원경 10기로 구성된 ‘동아시아 우주전파관측망(EAVN·East Asian VLBI Network)’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EAVN은 망원경 사이의 거리가 최대 5000km에 이르며, 여기서 나온 데이터가 이번 블랙홀 그림자 관측에도 기여했다. 또 한국천문연구원은 3개국의 관측 데이터가 모이는 상관센터를 개소해 EAVN의 구심점 역할도 하고 있다.


변 책임연구원은 “2016년 중국에서 VLBI 관련 워크숍이 열렸는데, 한국 참가자들이 KVN을 이용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보고 나를 포함해 KVN 초창기 연구원들이 모두 흐뭇해 했다”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눈앞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파관측망은 순수 천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 개발도 필요한 분야”라며 “두 분야 모두에 관심 있는 인재들이 향후 KVN의 미래를 이끌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한국천문연구원은 2023년 강원 지역에 전파망원경을 건설해 더 다양하고, 더 선명한 천체를 관측하는 동시에 전 세계 여러 전파망원경과 협력해 그간 관측하기 어려웠던 천체들을 포착할 계획이다. 사진은 칠레에 위치한 전파관측망 알마(ALMA).

 

 

KVN 주역 5인이 "나에게 KVN이란"

 

KVN 프로젝트가 처음 논의된 2001년부터 따지면 18년 동안 KVN을 세계적인 관측 시스템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말 그대로 밤낮을 가라지 않고 KVN 구축에 헌신했다. 거대한 전파망원경을 세운 건설 파트, 동시관측시스템을 구축한 기술 파트, 전 세계의 전파망원경 사용 요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운영 파트, 전파망원경의 데이터를 모으고 보정하는 상관 파트,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과학연구 파트까지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힘을 모았다. 
이들이 생각하는, 또 기억하는 KVN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혈압 안고 살지만 뿌듯”  위석오 선임연구원  


VLBI 시스템에 대해 경험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그에 맞는 전파망원경을 건설한다는 것은 어쩌면 도박과도 같았다. 그만큼 건설 당시 압박감이 상당했다. 


바쁘게 현장을 뛰어다니던 10여 년 전 어느 날, 당시 KVN 건설 책임자였던 김현구 전파천문본부 대덕전파천문대 책임연구원과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혈압을 잰 적이 있는데, 두 사람 다 혈압계로 측정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는 수치가 나타났다. 그날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 날이 돼서야 병원에 잠깐 들릴 만큼 휴식을 취할 수도 없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금까지 고혈압 약을 복용할 만큼 고생한 기억이 많지만, 지금은 고생한 날보다 KVN이 이룩한 발자국들이 더 진하게 남아 있다. 


KVN이 해외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건설됐다면, 이제는 VLBI 시스템의 설계부터 건설까지 모두 국산화가 이뤄졌고, 오히려 세계를 이끄는 시스템으로 거듭났다. KVN의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욱 기대된다.

 

 

“인연처럼 만난 전파망원경”  제도흥 선임연구원   


땅속에 묻힌 파이프를 찾는 전파 안테나를 만들던 내가, 하늘에서 오는 전파를 관측하는 전파망원경을 만들게 된 것을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KVN을 건설할 당시 전파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수신기를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는 2명뿐이었다. 2명 모두 전파망원경용 수신기를 개발한 경험이 없었을 뿐더러, 값비싼 수신기를 해외에서 사 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내야만 했다.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 국내외 연구소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수신기를 만들었지만, 정작 전파망원경에 장착하니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타났다. 느리게 회전하는 안테나가 만든 미세한 진동이 우리를 그토록 괴롭힐 줄 몰랐다. 한밤중에 전파망원경을 오르내린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어엿하게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KVN이 천문학자들이 사랑하고,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관측 시스템으로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

 

 

“해외와 어깨 나란히 실감”  오충식 선임연구원  


2001년 천문학을 전공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깊은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KVN 프로젝트가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KVN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학교에 방문한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들과 만나게 되면서 KVN에 깊이 빠지게 됐다. 마치 표류하던 배가 저 멀리서 작은 등불을 발견한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전파망원경 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KVN이 본격 운영되기 시작한 2009년 돌아왔다. 현재 KVN을 사용하고자 하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요청을 검토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1년에 두 차례 있는 신청 기간에 수많은 천문학자들의 제안서를 받을 때면 KVN이 세계의 다른 선진 관측 시스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한다. 그리고 KVN의 이런 성과가 불과 10년 만에 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보람을 느낀다.

 

 

“자식과 같이 성장한 KVN”  염재환 선임연구원     


2009년은 KVN이 탄생하고, 개인적으로는 아이도 탄생한 특별한 해였다. 당시 출산예정일과 해외 출장이 겹쳐 고민에 빠졌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 문제에 부딪혔을 땐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비난과 원성, 박수와 축하도 많이 받았다. 10년간 KVN이 성장하는 동안 내 아이도 함께 나이를 먹고 성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KVN과 함께 하면서 정말 즐거웠다. 배워가는 기쁨도 있었고, 성공 이후 느낄 수 있는 성취감도 맛봤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로봇 제어기를 개발하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KVN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30대를 오롯이 보냈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점에서 자긍심이 생긴다. 10년, 20년 뒤에는 화성에도 KVN의 전파망원경이 한 대 정도 설치되면 좋겠다. 그때는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이 ‘화성 KVN’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지, 즐거운 기대를 해 본다.

 

 

“당신은 나의 동반자”  이상성 책임연구원   


KVN는 내게 있어 인생의 동반자나 다름없다. KVN 건설을 계기로 이뤄진 한국과 독일 간의 인력양성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로 유학을 갔고,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1m 지름의 전파망원경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순간도 함께 했다. KVN으로 관측한 데이터로 낸 첫 번째와 두 번째 논문을 쓴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전 세계 천문학계는 선진국들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 거대 천문관측 시설과 저명한 천문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을 앞세운 선진국의 천문학은 따라잡기가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레이더 기술을 선도한 독일은 전파관측시스템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그런 독일과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기만 하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남윤종

🎓️ 진로 추천

  • 천문학
  • 항공·우주공학
  • 전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