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부: 스무살 때 웜홀을 만들었더라면
줄거리: 잘 나가던 캠퍼스 커플 마진주(장나라)와 최반도(손호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지만 행복함도 잠시, 아내는 육아에 남편은 일에 지쳐 이혼을 선언한다. “모든 것을 다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는 부부. 다음 날 놀랍게도 18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네이버 웹툰 ‘한 번 더 해요’를 각색한 드라마 고백부부는 이름 ‘고백(go back)’에서 짐작할 수 있듯 ‘타임 슬립(Time slip)’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마음대로 거스르는 타임 슬립은 스토리를 흥미롭게 끌고 가기에 참 편한 장치죠. 드라마나 영화에도 곧잘 등장합니다.
타임 슬립은 과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중력파 연구로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이론물리 파인만 명예교수는 1988년 우주의 특이점을 이어 서로 다른 시공간이 연결되는 ‘웜홀’을 이용하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손 교수는 이 논문 덕분에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고문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웜홀을 이용해 타임 슬립을 구현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특수한 물질을 이용해 웜홀을 만든 뒤, 한쪽 입구(A)는 현재에 두고 다른 쪽 입구(B)는 광속에 가깝게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면 시간지연현상에 따라 광속으로 멀어지는 B에서는 시간이 매우 천천히 흐릅니다. 그러다 A와 B의 시간차가 18년이 됐을 때 B를 다시 A에 가까이 오게 하면 18년의 시간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웜홀을 만들기 이전의 과거로는 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고백부부에서는 2017년에 사는 부부가 1999년으로 돌아가는데, 1999년 당시에 웜홀을 미리 만들어놨어야만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 곳(그래서 2017년이 된 곳)과 천천히 흐른 곳(1999년)을 오고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더 큰 문제는 주인공들이 웜홀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해도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는 겁니다. 주름과 흰머리를 간직한 채 과거로 돌아가 대학생인 자신을 보게 되겠죠. 이런 만남이 자신의 인생을 큰 혼란에 빠트릴 걸 알기에 보통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힌트를 줍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아빠가 책장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요.
따라서 저라면 두 주인공을 물리학과 커플로 하고, 이들이 중력장 장치로 실험을 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시공간을 입체로 구부려 웜홀을 만들어버렸다는 스토리를 쓰겠습니다. 그 결과 먼 미래에 있는 자신들이 이혼을 한 채 돌아와, “저 남자(또는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열심히 준다는 설정을 넣고 싶습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드라마와 원작 웹툰에는 웜홀에 대한 복선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들이 과거로 갈 때 심각한 지진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원작 웹툰에서는 ‘구구구’ 번개가 칩니다). 지진이 일어난 지역에는 중력이상이 발생합니다. 물론 시공간을 구부릴 정도의 엄청난 중력 변화는 아니지만, 중력과 지진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999년에 사는 고백부부 주인공들은 결국 결혼을 하게 될까요? 이 내용까지는 차마 스포일러를 할 수가 없네요. 사실 과거의 부부가 결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행우주론’ 가설에 따르면 주인공들이 결혼을 안 한 우주1과 한 우주2가 모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닫힌 우주’ 가설도 있습니다. 결혼을 막아 과거를 바꾸면 미래의 아들 서진이는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우주를 그리시겠습니까.
신과 함께: 과학으로 편안한 저승길을
줄거리: 직장생활 중 과한 음주로 39세에 요절한 주인공 김자홍. 기차를 타고 저승에 도착한 그는 자신에게 선임된 국선변호사 진기한과 함께 49일 동안 7가지 지옥문을 지나며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심판받는다. 그런데 첫 번째 ‘도산(刀山)지옥’에서부터 난관이 시작된다.
12월 개봉 예정인 영화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싱크로율 99%의 캐스팅 라인업 때문에 공식 트레일러가 공개되기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다만 웹툰에서 저승 재판을 변호하는 진기한 변호사가 영화에서 빠진 것은 팬들에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결단력이 탁월해 위기 때마다 주인공을 구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볼 수 없다니요.
진 변호사는 의뢰인이 저승의 세 번째 지옥인 한빙지옥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서천 식물원에 가서 뼈살이 꽃, 살살이꽃을 훔칩니다. 참고로 한빙지옥은 타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사람, 특히 부모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사람을 심판하는 지옥입니다. 작가는 이곳을 통과하는 모든 사람들은 손과 발이 잘린다고 설정했습니다. 진 변호사는 훔친 뼈살이꽃, 살살이꽃으로 잘린 조직을 재생시킵니다.
실제로 동물의 재생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입니다. 양서류의 일종인 영원(newt)은 다리가 잘려도 두 달만 지나면 새 다리가 나옵니다. 다리 외에도 망막, 수정체, 턱 등이 재생 가능합니다. 비결은 줄기세포입니다. 근육세포나 골격세포를 줄기세포로 역분화 해 훼손된 조직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절단된 부분에 미분화된 줄기세포 덩어리가 생기고, 이것이 새로운 조직으로 분화합니다.
저라면 이것으로 손과 발을 재생시키는 데서 끝내지는 않을 겁니다. 유전자를 교정해 기능을 높여야죠. 요즘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핫’한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한빙지옥 다음으로 지날 네 번째 지옥이 검수(劍樹)지옥인데, 칼로 이뤄진 숲에서도 베지 않는 손과 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거해지옥에서 거대한 톱으로 몸이 잘리는 형벌을 받아도 계속해서 팔과 다리가 자라나게 한다든가요. 염라대왕이 당황한다는 설정, 은근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좋아하면 울리는: 심박수로 벌어지는 해프닝
줄거리: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알람을 울리는 특이한 애플리케이션(앱)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앱을 사용하며 좋아하는 이에게 앱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회.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만 우연히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있는 기능을 얻게 된다.
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좋아하면 울리는’은 내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 나라에서 방영될 예정입니다. 이 웹툰은 특이하게도 스마트폰 알람 앱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요. 아이돌 가수가 알람을 많이 받으려고 콘서트장에 무리하게 팬을 끌어 모으고, 알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스토리는 ‘좋아요’에 목을 매는 현실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웹툰에 나오는 앱은 반경 10m 내 위치 정보를 추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앱이 위치 정보를 토대로 서비스를 제공하죠. 가령 ‘카카오택시’는 ‘콜’을 누르면 반경 1km에 있는 택시 기사들에게 정보가 전해지고, ‘야놀자’는 반경 3km 이내 숙소를 집중적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반경 10m는 너무 좁은 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몇 걸음 옮기는 것만으로 정체가 탄로납니다.
어쨌든 이런 앱을 만드는 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헬스케어 산업에서 생체신호를 활용한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웨어러블 센서, 또는 삼키는 센서를 이용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나타나는 생체신호, 즉 심박수가 빨라지거나 호흡량이 많아지고 시선이 고정되며, 피부 온도, 혈중 호르몬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측정만 하면 됩니다.
손목에 찬 장치로 혈류량을 측정해 실시간 심박수를 측정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돼 있습니다. 또 신축성 있는 센서를 장착한 다양한 스마트 셔츠로 입은 사람의 심전도는 물론 자세와 생체활동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저라면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좋아하면 울리는 앱이 여러 가지 오해를 일으키는 상황을 그리고 싶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건물 4층에 있는 음악실에 걸어 올라갔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여학생이 “나도 사랑해” 고백하면서 엉뚱하게 커플이 맺어지는 겁니다. 힘들어서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량이 늘어난 것뿐인데 말이죠. ‘동공 지진’을 측정할 수 있는 시선 추적 기술이 있어도 재밌겠네요. 수학 시험 시간에 긴급 재난 문자처럼 단체로 알람이 울려댈 겁니다.
웹툰은 시즌 5 마지막 즈음에서 개발자만 알고 있는 ‘창’과 ‘방패’ 기능을 공개했습니다. 방패는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수 있는 기능이고, 창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알람을 울릴 수 있는 기능입니다. 이런 기술은 센서 네트워크 상의 보안 기술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방패는 센서 노드 간에 보안키를 설정해 만들고, 창은 보안키를 해킹하면 가능합니다. 보안키를 해킹하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의 숨 막히는 대결,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