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읍!
시원하게 허공을 가르는 돌려차기. 발끝은 한 점을 향한다. 바로 지름 3cm 남짓한 작은 병뚜껑. 발에 맞은 병뚜껑은 병 입구에서 몇 차례 빙글빙글 돌고는 이윽고 허공을 향해 날아간다.
병 속에 있던 물은 사방으로 튀고, 도전 성공을 축하하는 환호성이 터진다. 병이 쓰러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에서 일명 ‘병뚜껑 챌린지(bottle cap challenge)’로 불리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말 그대로 병뚜껑을 여는 도전이다. 단, 손이 아니라 발차기로 열어야 한다. 병을 쓰러뜨려도 실패다. ‘핵인싸’의 필수템이 된 병뚜껑 챌린지. 홍석철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병뚜껑 챌린지의 성공을 좌우하는 물리학적 포인트 세 가지를 정리해봤다.
Point 1 돌림힘의 크기를 따져라
병뚜껑 챌린지 성공을 위한 첫 번째 팁은 돌림힘(토크·torque)이다. 돌림힘은 물리학적으로는 회전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식으로 나타내면 거리(r)에 힘(F)을 외적으로 곱한 값이다(τ = r × F).
홍 교수는 “돌려차기와 병뚜껑을 여는 동작 모두 회전 운동과 관계된 돌림힘을 잘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발로 병뚜껑을 쓸어내면서 뚜껑 겉면에 힘을 가하면 돌림힘이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발차기를 할 때 생기는 돌림힘을 병뚜껑으로 전달해 병뚜껑이 회전하도록 만드는 것이 포인트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병뚜껑의 입장에서 병뚜껑 챌린지를 분석해보자. 모든 과정에서 병은 움직이지 않으며 병뚜껑과 병 사이 마찰력은 없다고 가정했다. 병뚜껑을 돌게 하는 돌림힘은 발차기에서 받은 힘이다. 이때 병뚜껑이 받는 돌림힘은 발로 병뚜껑 가장자리를 밀어준 힘에 병뚜껑의 반지름을 곱한 값이다.
이렇게 발차기에 맞아 회전을 시작한 병뚜껑은 병 입구의 나사산을 따라 미끄러지듯 빙그르르 올라간다. 이는 빗면을 따라 올라가는 운동과 같다. 나사산을 다 오르고 나면 병뚜껑은 병에서 분리돼 공중으로 날아간다. 이는 돌림힘이 해준 일이 병뚜껑의 운동에너지를 증가시킨 뒤 위치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병뚜껑의 에너지가 증가하는데, 그 에너지 변화는 돌림힘에서 온 것이다.
에너지 변화, 즉 일은 힘과 거리의 곱이다. 또한 돌림힘에 회전각을 곱한 값이기도 하다. 따라서 발차기가 만든 돌림힘으로 발이 병뚜껑을 밀어주는 동안 병뚜껑이 회전한 각도를 곱하면 발차기가 전달한 에너지를 구할 수 있다. 발차기가 전달한 에너지가 병뚜껑을 분리하는 데 필요한 위치에너지 변화량보다 크면 병뚜껑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발차기로 병뚜껑을 여는 건 에너지 관점에서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실제로 병뚜껑을 열기 위해서는 발차기 동작에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훨씬 적은 양의 에너지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병 입구의 높이를 2cm, 병뚜껑의 무게를 5g이라고 할 때 실제로 필요한 에너지는 약 9.8×10-4J(줄)이다. 1mJ(밀리줄)에도 못 미치는 매우 작은 에너지다.
홍 교수는 “이 정도 에너지는 뚜껑 옆면을 발끝으로 살짝만 밀어줘도 충분히 가할 수 있다”며 “이렇게 작은 에너지를 가하기 위해 발차기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섬세하게 뚜껑을 벗겨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병뚜껑 챌린지에 감탄하고 열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Point 2 없으면 안 되는 마찰력
이번에는 지금까지 없다고 가정했던, 병뚜껑이 병 입구의 나사산을 타고 올라갈 때 발생하는 마찰력에 주목해보자. 마찰력은 두 물체의 접촉면에서 발생하며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는 힘이다.
마찰력은 일반적으로 운동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형성된다. 마찰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정지마찰력(정지마찰계수×힘), 다른 하나는 운동마찰력(운동마찰계수×힘)이다.
정지 마찰력은 물체가 정지 중일 때 형성되는 마찰력으로, 이 마찰력보다 더 큰 힘이 작용해야 물체가 움직일 수 있다.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한 뒤에는 운동마찰력이 생긴다. 일반적으로는 운동마찰계수은 정지마찰계수보다 작거나 같다. 따라서 운동마찰력은 정지마찰력보다 작다.
병뚜껑이 닫혀있는 상태는 정지마찰력이 적용되는 상태다. 이 상태에서 처음 병뚜껑을 움직일 때는 잘 열리지 않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 작은 힘으로도 쉽게 열린다. 홍 교수는 “병을 헐겁게 잠그느냐 꽉 잠그느냐에 따라 처음 정지마찰력이 달라진다”며 “병뚜껑을 살짝 헐겁게 잠그면 정지마찰력이 작아져 병뚜껑 챌린지에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병뚜껑 챌린지의 성공을 위해 마찰력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바로 발과 병뚜껑이 닿는 순간이다. 발로 병뚜껑을 열기 위해서는 발의 미는 힘을 병뚜껑에 전달해야 하는데, 이때는 마찰력이 필요하다. 마찰력이 없다면 발이 병뚜껑을 열지 못하고 미끄러질 것이다. 따라서 바닥이 매끄러운 신발보다는 거친 신발을 신는 게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또 병을 손으로 잡지 않을 때는 병과 바닥 사이의 마찰력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홍 교수는 “병과 바닥 사이에 마찰력이 없다면 병을 차는 순간 병이 그대로 밀려서 쓰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Point 3 병을 손으로 안 잡고도 성공하려면?
병뚜껑을 여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병을 쓰러뜨리지 않아야 비로소 병뚜껑 챌린지에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병뚜껑 챌린지 영상 중에는 병을 바닥에 두고 도전한 경우가 별로 없다. 누군가 병을 손으로 잡고 있거나 단단히 고정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 병은 발차기에서 생기는 힘을 버텨낼 수 있어 생각보다 성공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병뚜껑에 돌림힘이 전달될 수 있도록 병뚜껑의 겉면을 쓸고 지나갈 정도의 길이(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누군가 병을 꽉 잡고 있는 경우에는 발을 살짝 더 뻗어 병 입구를 밀어내듯 뚜껑을 열 수도 있다. 홍 교수는 “이때는 발이 뚜껑을 밀면서 뚜껑에 미치는 수직항력이 커져 마찰력이 상승한다”며 “돌림힘을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어 뚜껑을 열기가 더 수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 그런데 만약 병이 고정돼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병이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발차기의 힘, 특히 병을 밀치는 힘을 줄여야 한다. 가령 미국 영화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의 병뚜껑 챌린지 영상을 보면 병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채 힘껏 걷어차 병뚜껑이 열리는 대신 병이 통째로 날아간다.
병이 고정되지 않았을 때 병을 쓰러뜨리지 않으면서도 병뚜껑을 열려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할까. 2L 페트병의 반지름이 5cm, 높이는 30cm, 물을 절반 정도 채워서 질량은 1kg으로 가정했다. 홍 교수는 “페트병의 중력으로 인한 돌림힘이 병을 미는 힘에 의한 돌림힘 보다 크면 된다”고 설명했다.
페트병의 중력(질량×중력가속도)은 약 9.8N(뉴턴)이다. 여기에 반지름을 곱하면 돌림힘은 0.49N·m가 된다. 페트병의 높이가 30cm이므로 돌림힘이 0.49N·m를 넘지 않으려면 최대 약 1.6N의 힘으로 차면 된다.
1.6N의 작은 힘으로 병뚜껑을 열 수 있을까. 병뚜껑을 차는 동안 발차기로 1rad(라디안·1rad는 약 57.3도)회전했다고 가정할 때 병뚜껑에 가한 에너지는 1.6N에 반지름과 회전각을 곱해 2.4×10-2J이다. 홍 교수는 “앞서 병뚜껑을 열 때 필요한 에너지가 9.8×10-4J였는데, 이보다는 에너지가 훨씬 큰 만큼 충분히 병뚜껑을 열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