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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로켓] 우주로 가는 관문 발사장 명당을 찾아서

 

제주도에서 가볼만한 곳이라고 하면 흔히 한라산 백록담, 천지연폭포, 해수욕장 같은 곳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1990년대 우리가 조금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쩌면 발사체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 발사대도 제주에서 꼭 가보고 싶은 명소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발사장 터 찾아 전국을 뒤지다 

 

민간 로켓 발사장을 확보하는 것은 로켓 연구자들의 오랜 소망이었다. 민간 전용 발사장이 없으면 군사 시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미사일 같은 무기류를 쏘는 게 아니냐는 오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로켓인 코리아 사운딩 로켓(KSR) 시리즈를 군사 시설에서 발사하는 내내 각종 제약이 뒤따랐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평화적 용도의 로켓 개발을 계속 추진하려면 대외적으로 투명한 민간 전용 로켓 발사장을 짓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당시는 발사대를 건설하는 기술은커녕, 어떤 곳이 발사장으로 적합한지 기초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필자는 1991년 연구비 1200만 원을 지원받아 발사장 기초연구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1200만 원의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 선임연구원 1인당 600만 원의 연구비가 지원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당시 홍재학 한국항공우주연구소장이 특별히 힘을 실어줬다. 


좋은 집을 구할 때 발품을 팔아야 하듯, 좋은 발사장 터를 찾아내기 위해서도 열심히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과 필리핀을 피해 로켓을 발사해야 해 지리적 위치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발품이 중요했다. 동해안에 있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에서 경북 울진군까지, 지금은 가거도로 불리는 최서남단 소흑산도에서 최남단 마라도까지,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 현지답사를 다녔다. 우주센터 건설에 초석을 놓은 것이다. 

 

 

방위각, 안전성, 확장성… 발사장의 3가지 조건

 

본격으로 우주센터를 건립하는 사업에 착수한 건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99년 3월이었다. 우주센터 건립 후보지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일부 지역에서는 힘 있는(?) 기관을 통해 우주센터를 가져가겠다는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런 요구들은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우주센터의 위치를 선정할 때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조건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발사 시 발사 방위각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다. 방위각이 넓을수록 더 넓은 방향으로 로켓을 쏠 수 있다. 지리적 위치가 유리한 미국이나 일본 등은 이러한 발사 방위각이 30도 이상 확보돼 있다. 


방위각은 발사체 분리부터 폭발까지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정한다. 발사체가 비행할 때 발사체의 전체 또는 부분체가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에 낙하하게 되면 매우 심각한 사고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런 위험성이 있을 경우 로켓을 중도에 폭파시켜서 사고를 방지한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우주발사체의 경우 목표 지점까지 비행한 뒤 분리된 단이 낙하하는 거리가 3000km를 넘어갈 수 있으므로,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과 필리핀을 고려해 발사 방위각 허용범위를 설정할 수밖에 없다. 


발사체의 비행을 강제적으로 중단시키는 경우에는 발사체가 그 지점에서 바로 낙하하지 않고 관성력에 의해 더 멀리 날아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순간낙하점 한계선). 이를 사전에 판단하고 폭파 명령을 내리기까지의 시간 지연을 고려해 비행종단 한계선은 순간낙하점 한계선 보다 5도 정도 안쪽으로 설정한다.


발사장 부지 자체의 안전성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로켓은 극한 환경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지상 환경시험을 모두 통과해 일차적으로 성능이 검증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우주 공간에서 계획대로 비행을 실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로켓 개발 선진국인 미국, 러시아, 유럽 등도 초기 개발에서는 폭발과 같은 빈번한 발사 실패가 있었다. 


실패 사례를 조사해 보면, 발사체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기술적 성숙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주센터 주변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기술력이 갖춰진 뒤에는 인공위성의 궤도 진입 단계에서 실패가 조금 더 많이 일어난다. 


당시 우리는 추진기관, 유도제어장치 등에 대한 비행 검증 실적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사 초기 단계에서 사고가 날 확률에 철저히 대비해야 했다. 


우주센터가 필요에 따라 시설이나 장비를 확장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보통 초기에는 우주센터가 저궤도 소형위성 발사를 목적으로 운영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위성의 크기를 키운 중·대형위성 발사가 이뤄질 수 있다. 해외위성 발사 용역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우주센터 확장이 불가피하다. 안전 영역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고, 우주센터의 시설도 늘려야 한다. 우주센터 운용 초기에는 2km 정도의 안전반경이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한 번 건설하면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되는 시설이기 때문에 국가의 장기적 안목에서 확장 가능성이 우수한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다. 

 

 

 

제주도 vs. 고흥 vs. 남해

 

이 모든 조건을 따졌을 때 애초에 필자가 생각한 최적의 후보지는 고흥이 아니었다. 우리 연구팀은 경남, 경북, 전남, 제주 등 11개 지역을 분석했다. 그 중 필자의 마음 속 1위는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모슬포) 지역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발사 방위각이었다. 대정읍은 발사가 가능한 방위각이 30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컸다. 또한 섬이지만 육지로 간주해도 무방할 만큼 교통, 통신,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기에 용이한 지역이었다. 대정읍에 우주센터 기지를 두고, 남쪽으로 10.5km 떨어진 마라도에 발사대를 설치하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가 거셌다. 당시 인근 송악산 지역 일대를 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민간 사업자의 계획이 있었고, 관광단지로 개발되는 것이 우주센터가 들어서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지역 주민들은 우주센터 건립을 강하게 반대했다. 


중앙 정부와 제주도청의 고위공무원들이 나서서 주민설명회를 시도했지만, 설명조차 듣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 지역 중·고교 교문 앞에까지 우주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모습을 보고 아쉬웠지만 마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자 후보지는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외나로도)와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두 곳으로 좁혀졌다. 고흥군 외나로도의 경우 발사 방위각이 15도로 비교적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사대 설치 예정지 주위로 산이 있어, 만에 하나 발사 초기 단계에서 실패할 경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1시간 넘게 길도 없는 산을 타고 올라가 직접 발사장 후보지를 보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남해군 양아리는 발사 방위각 범위가 2도 정도로 좁은 편이었지만, 남해군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발사 방향으로는 안전성을 확보하기가 양호했다. 게다가 기반 시설이 이미 어느 정도 구축돼 있어 우주센터를 건설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됐다. 


그밖에 굴과 꿀빵으로 유명한 경남 통영시 사량도도 후보에 있었지만, 발사 방위각이 2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다 발사궤도 5~15km 상에 욕지도, 두미도, 추도 등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 놓여 있어 아쉽게도 탈락했다. 

 

 

고흥에 나로우주센터가 서다 

 

결국 2001년 1월 30일 정부는 우주센터 부지로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지역(북위 34.26도, 동경 127.32도)을 확정해 발표했다. 우리 연구팀이 고흥군 외나로도 지역이 남해군 양아리 지역보다 우주센터 위치 선정의 주요 조건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의견을 ‘우주센터추진위원회’에 제출한 뒤였다. 


이는 발사 방위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한 결과였다. 남해군 양아리 지역은 고흥군 외나로도보다 개발이 더 많이 돼 있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유명 관광지인 상주해수욕장이 인접해 안전반경을 2km 이상 확보하기 어려웠고, 건설을 위해서는 당장 120여 가구를 이주시켜야 했다. 반면 고흥군 외나로도 지역은 상당 부분이 국공유지였고, 거주민이 40가구에 불과했다. 안전반경도 3km 이상 됐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고흥군 외나로도 지역이 우주센터 후보지로 확정된 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로 뜬금없이 실무책임자인 필자의 고향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필자의 고향은 경남인데, 경남 지역에서 우주센터 유치 의사를 강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후보지가 전남 지역으로 정해진 데 대해 누군가 의구심을 제기한 탓이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렇게 지역감정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물론 이는 당연히 근거 없는 추측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 고흥이 우주센터 후보지가 된 것은 오래 전부터 예정된 일이라며 입담을 과시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고흥이라는 지명의 의미가 높을 ‘고(高)’에 흥할 ‘흥(興)’, 즉 ‘높은 곳에서 흥한다’는 뜻이므로 고흥에서 하늘 높이 로켓을 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게 아닌가. 꿈보다 해몽이라고. 과학적인 설명은 아니었지만 10년 넘게 최적의 발사장을 찾아 전국을 헤맨 필자로서는 듣기에 나쁘지만은 않았다. 로켓 발사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라는데, 싫을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발사대가 건설되고, 여기서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발사가 이뤄지면서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는 많은 국민들이 찾아오는 특별한 관광지가 됐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제2발사장 건설 계획이 없는지 문의가 올 정도로 말이다. 2013년 나로호 발사 성공에 이어 2021년 누리호 성공까지, 고흥의 흥함을 계속해서 바라고 응원한다. 

 

 

 

조광래 
198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과학로켓 개발을 시작해 이후 30년 넘게 발사체 개발에 몸담았다. 1993년 1단형 과학로켓 KSR-Ⅰ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90년대 후반 KSR-III 사업부터 2002~2013년 나로호 사업까지 총 책임자를 맡았다. 2014~2017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맡아 2021년 발사 예정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 개발을 이끌었다. gwcho@ka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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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나로호개발책임자)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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