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기상학자로 살아온 수십 년 동안 이처럼 강렬하고 화려한 색을 띠는 놀라운 하늘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림을 공부하게 됐는데, 에드워드 뭉크가 그린 그림인 ‘절규’를 보곤 자연스레 그 날의 하늘을 떠올린 겁니다. 필자가 노르웨이 오슬로대 지질학과 욘 에길 크리스챤슨 교수와 노르웨이 기상연구소 외위빈드 노들리 연구원과 함께 진주구름과 뭉크의 ‘절규’를 비교 분석한 이유입니다.
고도 20km에서 나타나는 희귀한 기상현상
과학용어로 ‘자개구름(nacreous cloud)’이라고 부르는 진주구름은 보통 추운 지방의 성층권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극지 성층권 구름’이라고도 부르죠. 보통 여객기가 지나는 고도보다 2~3배 더 높은 곳(고도 20~30km)에서 나타납니다(우리가 잘 아는 대부분의 구름을 포함한 전반적인 날씨 현상은 비행기 순항 고도의 약 4분의 1 수준인 고도 2~3km에서 나타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고도 20~30km에서 기압은 지상의 2%이하입니다. 이곳의 엷은 대기는 보통 건조하고 깨끗하며, 지상과는 물리 현상이 상당히 다릅니다. 이런 이유로 이곳에서 구름 입자가 형성되려면 온도가 영하 90℃ 이하가 돼야 합니다. 보통 성층권의 온도는 영하 85℃ 밑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데,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에서는 산꼭대기의 상층 대기에서 특정 조건 아래 만들어지는 바람의 단열 냉각으로 5℃가 추가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진주구름은 북극과 남극 주위에서 주로 만들어지고, 드물게는 알프스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에 나타나는 것이죠.
진주구름은 1870년 스웨덴에서 처음 관측됐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크리스티아니아 천문대에서 1871년부터 1880년대까지 자주 관찰했습니다. 당시 기록은 아주 다채로운 색상을 나타냈다고 남아 있습니다. 그 중 두 건은 카를 스퇴르머라는 15세의 청소년이 관찰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수학자가 됐는데, 북극광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죠. 그는 진주구름을 보곤 “당신이 다른 세계에 있다고 믿게 될 정도로 아름답다”고 적었습니다.
이토록 화려한 광채의 비밀은 구름 입자의 지름이 1μm(마이크로미터, 10-6m)에 가깝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가시광선의 파장(0.42~0.76μm)과 비슷한 수준 입니다. 마치 프리즘처럼 구름 입자를 통해 빛이 굴절, 산란, 확산된 뒤 또 다시 간섭을 일으켜 다양한 색상의 파장이 사라지거나 증폭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진주구름을 자주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주구름은 일몰 직후 또는 일출 직전에만 볼 수 있습니다. 두께가 얇고 입자의 밀도가 낮은 데다(광학적 깊이가 얕음. 즉, 더 투명함) 높은 고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태양광선이 구름을 수직으로 통과하는 낮 시간대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태양광선이 구름과 평행을 이룰 때에만 우리 눈에 보이죠. 이 때 지구의 표면은 어둠 속에 있고, 우리는 진주구름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볼 수 있습니다.
“피와 칼처럼 불타는 구름,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에드워드 뭉크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는 일생의 역작인 ‘절규’를 그리기 전,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일몰 무렵,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걸었다
슬픔의 숨결을 느꼈다
하늘이 갑자기 피처럼 붉게 변했다
나는 멈춰 섰고, 죽을 것 같은 피곤함을 느끼며
울타리에 기대 섰다
피와 칼처럼 타는 듯이 붉은 구름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멀어져 갔고 나는 두려움에 떨며
거기에 서 있었다
자연을 통해 거대하고 무한한 절규를 느꼈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크리스티안 스크레스비그는 1908년 쓴 저서 ‘예술가들 사이의 낮과 밤’
에 뭉크의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스크레스비그가 뭉크의 환상과 두려움을 더 깊게 만들었다는 대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얼마 동안 그는 석양의 추억을 그리길 원했다. 피와 같은 그 붉은 빛을. 아니,
그건 실제로 굳어버린 피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처럼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구름만 생각했을 것이다.
뭉크는 그를 불안으로 사로잡은 그 일로 슬픔에 잠겼다. 슬프게도, 그림의 헛된 영감이 충분치 않았다. 나는 그가 ‘불가능을 갈망하고 종교적으로 절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겐 그것을 그리길 권했다. 그래서 그는 독특한 그림인 ‘절규’를 그렸다.”
그 이후 에드워드 뭉크가 이전엔 결코 본 적이 없고 설명할 수 없었던 대기 현상에 대해 특출한 상상력을 갖게 됐음이 분명합니다. 하늘에 있었지만 흔히 아는 구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누구와도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죠. 그가 아는 어떤 사람도 같은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 12월, 필자의 경험도 비슷했습니다. 동료와 친구들, 그리고 이웃 대부분이 필자가 본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물론 몇 명은 봤을 겁니다). 진주구름이 약 40분 동안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뭉크는 그의 친구들 중 누구도 보지 못한 진주구름을 혼자서만 목격한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숨이 막히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지도 못했죠. 친구 스크레스비그가 그림을 그리도록 강요하기 전까지는요.
크라카타우 화산재는 물결 무늬를 만들지 않았다
2000년대 초, 3명의 미국 천문학자들은 다른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 화산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뒤, 하늘의 광활한 영역이 붉게 물든 사건에서 뭉크가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했죠. 실제로 당시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먼지가 성층권까지 퍼져 나갔고, 대기 순환의 여러 메커니즘으로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화산재가 관찰됐습니다. 심지어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가 속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요. 크라카타우 화산재는 실제로 2~3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경탄할만한 석양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의문점이 있습니다. 뭉크가 본 것이 몇 년이나 지속된, 화산재로 물든 하늘이었다면, 그는 왜 친구들에게 설명하기를 그토록 어려워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화산 폭발의 결과물을 여러 번 목격했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만한 좋은 배경이 있었습니다. 또, 당시 본 것을 떠올려 그리기가 너무 어려웠다면, 뭉크는 왜 그와 같은 석양을 다시 보려고 시도하지 않았을까요. 필자는 크라카타우 화산 가설이 뭉크가 느낀 두려움을 설명하기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층권으로 퍼진 화산재가 진주구름을 더 자주 만들었을 수는 있습니다.

의문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절규에 묘사된 하늘의 구불구불한 무늬는, 대기의 오염원이 만들어낸 일반적인 연무와는 다릅니다. 낮은 고도의 태양 빛과, 낮은 고도에 생기는 흔히 볼 수 있는 적운의 조합으로 하늘이 매우 다채로운 색상이 보일 수는 있겠죠. 그러나 구불구불한 무늬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크라카타우 화산은 적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폭발성 분출물의 황산 가스가 성층권에 도달한 뒤 ‘브르워-돕슨 순환(적도 부근의 상승 기류로 공기가 성층권 하부로 유입된 뒤 남북 두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됐을 겁니다. 몇 주 뒤 가스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한 황산염 에어로졸로 바뀌어 전 지구에 실안개 층을 형성했을 거고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볼 때 성층권의 안개 층은 널리 뻗어 나갔을 겁니다. ‘절규’에 그려진 물결 무늬와는 다르게요. 실제로 1883년과 1884년 유럽과 북미에 나타난 색다른 일몰에 대한 자료에 화려한 색상은 묘사돼 있지만 물결 모양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무엇을 본 걸까
우리 연구팀은 에드워드 뭉크가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하늘에서 봤고, 그 때문에 두려워했다고 확신합니다. 또 그건 분명 사람들 대부분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됐고, 그 때문에도 뭉크는 더 좌절했을 겁니다. 그 사건이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걸로 예상되는 시각에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둠이 온 대신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든 거죠. 우리 연구팀은 화산 폭발 가설이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1880년대 노르웨이에 진주구름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예술계는 결코 절규와 같은 상징적인 작품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절규’가 그려진 배경을 근거에 기반해 확실히 결론 내릴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추론도 단지 가설일 뿐이죠. 그런데 영원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더 있습니다. 동시대에 살았던 두 인물, 화가 에드워드 뭉크와 과학자 카를 스퇴르머가 왜 한 번도 만나거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미스터리입니다.
스베인 피케(Svein M. Fikke)_fikke@metconsult.no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자연과학 학위(Cand. Real.)를 받았다. 현재 민간 기상컨설턴트다. 극단적인 날씨가 먼 곳의 노출된 지형에 있는 사회기반시설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전문가이다. 노르웨이 기상연구소와 노르웨이 전력 그리드 회사(Statnett)에서 근무했으며, 국제 프로젝트에 대한 폭넓은 경험이 있다.
+ 더 읽을거리
Svein M. Fikke et al., ‘Screaming Clouds’(doi:10.1002/wea.2786)
Olson, Donald W. et al., ‘When the Sky Ran Red: The Story Behind the ‘Scream’’, Sky&Telescope, Feb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