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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바람이 불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겨울이면 유독 주목받는 생선이 있다. ‘여름철 홍어는 개도 안 먹는다’ ‘날씨가 차면 홍어생각, 따뜻하면 굴비생각’이란 말처럼 홍어의 제철은 역시 겨울이다. 특히 전라도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홍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상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을 많이 차려 놓아도 전라도에선 홍어가 빠지면 차린 게 없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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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요리의 최고봉은 단연 홍어회다. 불그스레한 빛깔이 감도는 홍어회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면 쫀득쫀득한 맛도 일품이지만 찌릿한 암모니아 향이 알싸한 맛과 함께 입 안 가득 퍼지며 코를 뻥 뚫리게 한다. 이 맛을 잊지 못해 홍어회를 찾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여기에 막걸리(탁주)를 곁들이면 홍탁, 돼지 편육과 잘 익은 배추김치를 곁들이면 그 유명한 홍어삼합이 된다.

홍어회의 주인공은 참홍어

홍어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홍어회 외에도 다양하다. 말린 홍어에 갖가지 양념을 넣고 쪄서 만든 홍어찜, 홍어를 가자미처럼 잘게 썬 뒤 갖은 양념과 채 썬 무, 미나리와 버무린 홍어무침, 파릇파릇한 보리싹과 홍어 내장을 넣어서 끓인 홍어 애 보리국은 홍어로만 만들 수 있는 별미다. 이외에도 홍어는 죽, 탕, 전, 조림, 구이, 볶음, 찌개 등으로 요리해도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홍어과 물고기에는 총 11종이 있다. 이 중에서 홍어(Okamejei kenojei )와 참홍어(Raja pulchra ) 두 종이 종종 홍어라는 이름을 두고 혼동되곤 한다. 홍어와 참홍어 중 대체 어느 쪽이 진짜 홍어일까. 홍어회로 유명한 쪽을 진짜 홍어라고 한다면 그 주인공은 흑산 홍어라고 불리는 참홍어다. 홍어는 어시장이나 일반 횟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으로 간재미 또는 갱개미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참홍어는 주둥이가 뾰족하고 몸집이 크며, 몸 빛깔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 홍어와 간단히 구별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야 어찌 됐든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참홍어를 홍어라고 부르고 홍어를 간재미라고 부른다. 참홍어가 워낙 맛있고 유명하기 때문이리라. 홍어라는 이름을 빼앗긴 간재미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애초에 간재미에 홍어라는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정약전이 약 200년 전(1814년) 쓴 어류학서적인 ‘현산어보’의 기록을 살펴보면 홍어를 ‘간잠어(間簪魚)’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상 앞으로 참홍어를 홍어라고 부르기로 한다.

수놈이 암놈 따라 잡히는 이유

‘현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홍어의 본고장에 살았던 그가 홍어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리 없다. 다음은 그가 남긴 현산어보 중에서 홍어 항목의 일부를 옮긴 내용이다.

“큰 놈은 너비가 6~7자 정도이다. 모양은 연잎과 같은데 암놈은 크고 수놈은 작다.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머리 부분에 있는 주둥이는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진다. 입은 주둥이 아래쪽의 가슴과 배 사이에 일자로 벌어져 있다. 등 위에서 주둥이가 시작되는 부분에 코가 있으며, 코 뒤에 눈이 있다. 꼬리는 돼지꼬리처럼 생겼고, 위쪽에는 가시가 어지럽게 돋아나 있다.

수놈의 생식기는 두 개인데, 뼈로 이뤄져 있으며 굽은 칼 모양이다. 그 아래쪽에는 고환이 달려 있다. 양 날개에는 갈고리 모양의 잔가시가 돋아 있어 교미할 때 암놈의 몸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암놈이 낚싯바늘을 물면 수놈이 달려들어 교미를 하다가 낚시를 들어올릴 때 함께 끌려오는 경우가 있다. 암놈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놈은 색을 밝히다 죽는 셈이니 지나치게 색을 밝히는 자에게 교훈이 될 만하다.”

정약전은 홍어의 크기와 형태적 특징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너비가 6~7자라면 120~140cm 정도에 해당한다. 물고기치고는 지나치게 큰 것 같지만 지금도 흑산도 예리항에서는 이 정도 크기의 홍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물감을 풀어놓은 듯 붉은 몸빛, 연잎처럼 넓적한 몸체,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주둥이, 그 아래로 일자로 벌어진 입, 돼지꼬리와 비슷하게 생긴 꼬리…, 홍어의 특징적인 모습들이 정약전의 붓끝에서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홍어는 체외수정을 하는 여느 물고기들과는 달리 교미를 하고 체내수정을 한다. 그래서 홍어 수놈의 몸에는 막대기 모양으로 잘 발달한 생식기가 두 개씩이나 달려 있다. 수놈은 교미를 할 때 암놈과 배를 맞대고 꼬리를 꼰 자세를 취하는데, 억지로 떼 놓으려 해도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암놈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홍어의 수놈은 결국 이런 습성 때문에 종종 애꿎은 목숨을 잃곤 한다. 번식기를 맞아 짝을 찾느라 혈안이 된 수놈은 그물이나 낚싯바늘에 걸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암놈을 만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그러나 암놈을 끌어안고 사랑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암놈과 함께 갈고리에 찍혀 갑판 위에 내던져지는 신세가 되고 만다. 홍어 입장에서는 불운이지만 어부 입장에서는 ‘일석이조’로 더할 나위 없는 횡재다. 정약전도 이 같은 장면을 종종 목격했던 것 같다. 색을 너무 밝히면 난처한 지경에 이르게 되리라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왠지 희극적으로 느껴진다.

만만한 게 홍어좆

홍어는 암수의 가치가 크게 차이 나는 생선으로도 유명하다. 수놈은 암놈에 비해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맛도 한참 떨어져 가치가 확연히 차이 나기 때문이다. 암놈은 쫀득쫀득하고 맛이 차진데 비해 수놈은 왠지 퍽퍽하다. 수놈은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시가 단단하고 억세 먹기도 힘들다. 따라서 암놈이 수놈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악덕상인들은 비싼 값을 받기 위해 수놈의 생식기를 잘라내고 암놈으로 속여서 팔곤 한다. 일반 사람들이 홍어의 암수를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한 상술이다. 번식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수놈의 생식기가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만만한 것이 홍어좆’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홍어를 구입할 때 생식기를 떼낸 자국이 있는지 잘 살펴보면 비싼 값을 치르고 맛이 떨어지는 홍어를 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홍어는 큰 것 한 마리에 수십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값비싼 생선이다.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불법남획이 거듭되며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한때 4.5kg짜리 홍어 한 마리가 10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66년 만에 홍어가 대풍을 맞았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홍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일정 기간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막는 금어기 제도가 운영되고 바다 밑바닥까지 싹싹 훑어 씨를 말리는 저인망 어선을 단속한 덕분이다. 자연은 정직해서 언제나 자신이 받은 만큼을 되돌려준다. 인간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은 그동안 베풀었던 혜택을 순식간에 거둬 가버릴 수도, 더 많은 선물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삭힌 홍어 맛의 비밀

사람들은 홍어 요리라면 으레 삭힌 홍어를 떠올린다. 홍어를 삭히면 그 전보다 맛과 영양뿐 아니라 소화율까지 월등히 좋아진다고 한다. 맛깔스러운 전통 음식에 숨은 과학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삭힌 홍어의 참맛을 이해하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덥석 입 안에 넣었다가는 코에서 불이 나고, 입 천장이 홀랑 벗겨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독특한 홍어맛의 비밀은 물고기 자체의 성질과 삭혀서 먹는 특별한 요리법에 있다. 홍어의 몸에는 사람의 오줌 속에 들어 있는 성분인 요소가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요소는 단백질을 분해할 때 생기는 최종산물이다. 바닷속 생물들은 늘 수분 손실의 위험에 직면하며 살아간다.

김장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물이 빠져나가면서 금세 시들어 버리는데, 염분농도가 높은 바닷물 속에서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홍어는 이런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몸속의 요소 농도를 과감하게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수분은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므로 체내의 농도가 주변 바닷물의 농도와 비슷해지면 자연히 몸속의 수분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홍어를 단지에 담아두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일어나는데, 홍어를 삭힌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분해과정을 뜻한다. 이때 홍어의 몸속에 있던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되면서 홍어 특유의 자극적인 맛과 냄새를 만들어낸다.

가끔씩 공중 화장실 중에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한 냄새를 풍기는 곳을 볼 수 있다. 이런 화장실의 소변기는 대부분 누런 오줌 때로 덮여 있다. 오줌 때는 오줌 속에 녹아 있던 요소가 변기의 벽면을 타고 내려오다 굳은 결정인데, 여기에 미생물이 번식하면 요소가 암모니아로 변하면서 지독한 악취를 내게 된다. 이는 홍어 단지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똑같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악취가 입맛을 당기는 향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재밌지 않은가.

이태원 교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전통 문헌에 나타난 과학 관련 내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기행문식으로 정리한 ‘현산어보를 찾아서1~5(청어람미디어)’ 등이 있다.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태원 서울세화고 생물 교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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