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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반도체 강국이라면서 소재산업은 부실한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한편으로 국내 소재 산업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제조 강국이라는 명성 뒤에 소재 수입 의존도 심화라는 문제가 가려져 있었다. 연구개발(R&D)은 어떨까. 역설적으로 국내 과학계의 소재 분야 논문 실적은 세계 4위 수준으로 과학계 전체에서도 성과가 가장 좋다. 


수준 높은 연구와 부실한 산업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빠져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국내 소재 분야 전반을 진단했다.

 

 

양과 질 우수한 국내 소재 연구


올해 6월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07~2017 주요국의 피인용 상위 1% 논문실적 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1년 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저널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피인용 상위 1% 논문은 총 4396건이다. 미국(7만4400건), 중국(2만3869건)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고, 우리나라는 일본(7268건), 스웨덴(5120건), 벨기에(4662건)에 이어 15위에 올랐다. 


점유율로 환산하면 우리나라는 2.97%다. 연도별로 세분화하면 국내 논문 점유율은 2007년 1.88%에서 2017년 3.53%로 11년 만에 약 2배 증가하며 전반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재료과학 분야의 강세다. 연구 분야별 논문 실적에서 국내 재료과학 분야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과학계 전 분야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순위다. 


재료과학 연구는 양과 질 모두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11년간 국내 과학자들이 재료과학 분야 저널에 발표한 전체 논문의 점유율(6.75%)보다 피인용 상위 1%에서 차지하는 점유율(6.94%)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글로벌 학술정보회사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상위 1% 연구자(HCR·Highly Cited Researcher)들을 토대로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에 국내 연구자는 총 53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단일 분야로는 재료과학 연구자들(7명)이 화학과 함께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여러 분야를 교차해 연구하는 크로스 필드 분야 연구자들까지 포함하면 53명 중 20명 가까이가 재료과학 연구자다.

 

 

국내 연구진이 선도하는 차세대 소재


국내 소재 연구 중에서도 특히 몇몇 분야는 한국이 이끌고 있다.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중 크로스 필드 분야에 선정된 이규태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차세대 이차전지로 불리는 소듐(Na) 이온전지 분야의 권위자다. 


이 교수는 “현재 이차전지에 주로 사용하는 리튬은 매장량이 한정돼 있어 이를 소듐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이차전지 가격을 3분의 2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며 “전기자동차의 경우 5분 이내에 충전을 완료하고 400~500km를 달릴 수 있는 소듐 이온전지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널리 사용되는 리튬 이온전지를 개선하기 위한 전극 소재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차전지는 삼성과 LG 등 대기업의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 덕분에 국내 연구가 활성화됐다”며 “현재 일본과 미국에서도 차세대 이차전지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가장 앞섰다”고 말했다.


최근 광전환 효율(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효율) 25.2%로 세계 1위에 오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도 성균관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한국화학연구원 등 국내 연구진이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분야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금속, 유기물, 할로겐족(플루오린, 염소, 브로민 등)이 결합된 화합물 결정 구조를 갖고 있어 빛 흡수가 뛰어나고 전하 이동이 용이해 유력한 차세대 태양전지 후보로 꼽힌다. 광전환 효율만 보면 현재 사용되는 실리콘 기반 태양전지의 최고 효율(26.7%)에 근접한 상태다. 다만 아직까지 주변 환경에 따라 광전환 효율이 급격히 감소하거나, 수명이 단축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서장원 한국화학연구원 에너지소재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페로브스카이트의 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해 실리콘 소재와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텐덤 태양전지)도 연구 중”이라며 “상용화를 위해 영국 기업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서 책임연구원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는 딱히 라이벌 국가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연구진들이 앞서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소재 분야에서는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 같은 탄소 소재, MRI(자기공명영상) 조영제 같은 바이오소재 등에서 국내 연구진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 평가 방식이 만든 차세대 소재 연구 편향


반면 실제 소재산업은 발전이 더딘 상황이다. 특히 이번 일본 수출 규제로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올해 상반기 대일 무역적자 중 소재·부품 적자 비중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최리노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학과장은 “반도체 산업 세계 1위에 취해있던 국내 기류에 소재 기술 수준의 민낯을 드러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R&D와 산업 사이에 연결고리가 끊어진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연구 평가 방식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대부분의 R&D 예산을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정부가 피인용 지수와 같은 획일화된 기준으로 연구 성과를 평가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평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연구 분야별 균형이 붕괴됐다. 최 교수는 “현재 각 대학의 소재 연구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당장 산업에 적용할 수 없는 차세대 소재들만 연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잘 알려진 소재를 개선하는 연구보다 차세대 소재를 연구해야 피인용 지수가 높게 나오고, 그래야만 정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미래 소재 연구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현재 산업에 당장 필요한 연구들이 잘 이뤄지지 않다보니 기업에서 대학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바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매년 바뀌는 연구 주제도 문제다. 이 교수는 “이전에 냈던 연구 결과를 조금 더 개선한 연구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며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연구 주제로 바꿀 수밖에 없고,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에너지소재연구센터장은 “일본이 소재 강국이 된 것은 20~30년간 한 연구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연구 과제를 따내기 위해 매번 연구 주제를 바꾸고 대학과 출연연이 서로 소모적인 경쟁을 벌이는 국내 분위기에서는 일본의 소재 기술을 따라 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 산업에 필요한 소재 연구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 분야를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차세대 소재 연구와 당장 산업에 필요한 연구를 기업과 출연연, 대학에 적절히 분배하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소재산업 문제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 교수는 “보통 국가의 주력 산업은 경공업-중공업-전자산업-부품산업-소재산업 순으로 이어진다”며 “우리나라가 현재 반도체 제조와 같은 부품산업까지 빠르게 도달했고, 이제 소재산업을 활성화시킬 차례”라고 진단했다. 


가령 우리나라보다 산업 발전이 빨랐던 일본은 소재산업까지 활성화된 단계이며, 중국은 전자산업에서 최근 반도체 제조와 이차전지를 비롯한 부품산업에 진입하며 빠르게 우리나라를 추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부품산업의 활성화를 달성한 뒤 소재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라면서도 “이번 일본 수출 규제를 계기로 소재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소재산업을 위한 실질적인 소재 연구에도 집중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용어정리

피인용 상위 1%
피인용 횟수, 즉 해당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된 횟수가 상위 1%에 포함되는 논문. 인용이 많이 될수록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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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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