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고순도 플루오린화수소(HF),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절차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허가를 간소화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최대 1100여 종에 이르는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도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에 파급력이 큰 소재로 포토레지스트와 고순도 플루오린화수소 두 가지를 꼽는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로 이번 수출 규제 조치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Q 일본의 수출 규제는 왜 문제인가?
A 국내 반도체 업체는 제조에 특화, 소재는 일본에서 주로 공급
2017년은 국내 반도체 시장에 역사적인 해였다. 1983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지 30여 년 만에 반도체 매출 세계 1위(약 65조500억 원)를 석권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비하면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했던 삼성전자는 24년간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던 인텔을 2위로 끌어내렸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인텔에 이어 3위(약 28조 원)를 차지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사업이 반도체 ‘제조’라는 점이다. 반도체 업체는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뉜다. 만들어진 반도체를 사용하는 IT업체, 그에 맞는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반도체소자업체, 그리고 반도체에 들어가는 재료를 공급하는 소재·부품·장비업체까지 세 부문이 긴밀히 연결돼 반도체 산업이 굴러간다.
이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소자업체다. 소재·부품·장비업체에서 재료를 공급받아 IT업체에서 의뢰한 반도체를 제조한다. 그리고 소재·부품·장비업체는 대부분 해외, 특히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다.
국내에도 몇몇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재료를 공급하고 있지만, 비중이 적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소재·부품·장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국산 재료 사용 비율이 소재는 50%, 장비는 18%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발표하며 재료 공급에 큰 장애물을 설치한 셈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8월 7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공동 주최로 열린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공동 토론회(이하 토론회)’에서 “일본이 소재 공급을 중단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연결 고리를 일방적으로 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Q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화수소는 반도체 공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A 포토레지스트로 덮고, 플루오린화수소로 깎고
반도체 제조 공정을 세분화하면 수백 단계에 이르고, 여기에 들어가는 소재만 수천 가지다. 반도체 제조 공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판화 제작에 비유해 보자. 판화가 고무판을 조각칼로 도려내 틀을 완성한 것이라면, 반도체 공정은 얇은 기판 위에 쌓은 물질들을 빛과 부식제라는 조각칼로 파내고 다듬어 회로를 그려내는 것이다.
우선 웨이퍼라고 불리는 얇은 기판에 반도체를 구성하는 물질들을 한 층씩 얹는다. 그리고 한 층씩 얹을 때마다 부식제를 뿌려 원하는 회로 모양을 만들어 간다. 단, 부식제를 뿌리기 전에 부식제에 깎여 나가면 안 되는 영역은 다른 물질로 덮어놔야 하는데, 이 덮는 물질이 이번 수출 규제의 핵심 품목인 포토레지스트다.
포토레지스트는 우리말로 감광제라 불리며, 직역하면 빛을 감지하는 물질이다. 액체 상태여서 감광액으로도 불린다. 포토레지스트를 반도체 기판 위에 얇게 바르고 굳히면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다. 이 위에 회로 모양을 본 뜬 판을 덧대고 빛을 투영해 포토레지스트의 일부를 녹이면 아래층의 물질 중 부식제가 작용할 부분만 드러나게 된다. 이를 ‘노광 공정’이라고 한다.
이어서 부식제를 뿌리면 포토레지스트가 덮지 않은 영역만 깎여나간다. 여기에 사용되는 부식제가 바로 플루오린화수소이며, 이를 ‘식각 공정’이라고 한다. 포토레지스트로 덮고, 플루오린화수소로 깎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하면 정밀한 회로가 그려진 반도체가 완성된다.
▲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입처 다변화와 국산화를 꾀하고 있다.
Q 포토레지스트는 국내 생산 못 하나?
A 13.5nm 차세대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이 전량 생산
디지털기기의 소형화가 진행되면서 반도체도 작아졌다. 대신 성능은 더 발전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화수소도 성능 향상이 필수였다.
포토레지스트는 더 짧은 파장대의 빛을 받아들여야 한다.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얇은 폭의 회로를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포토레지스트가 24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의 긴 파장의 빛에 반응하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지금은 그보다 짧은 193nm 파장의 빛에 반응하는 포토레지스트가 공급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최근에는 초소형 반도체 개발을 위해 13.5nm 파장 대역의 빛에 반응하는 새로운 포토레지스트인 ‘극자외선(EUV·Extreme Ultraviolet)용 포토레지스트’도 개발되고 있다. 올해 말 경기 화성에 완공될 삼성전자의 새로운 반도체 공장에는 EUV를 이용하는 반도체 생산라인이 처음 들어선다.
이번에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포토레지스트는 파장이 193nm 미만의 빛에 반응하는 것으로 EUV용 포토레지스트에 해당한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현재 일본이 전량 생산하고 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 개발은 기존의 포토레지스트 개발과는 기술 수준이 다르다. 빛의 파장이 248nm에서 193nm로 짧아질 때는 포토레지스트를 개량하는 수준에서 가능했지만, 13.5nm로 대폭 줄어들면 포토레지스트뿐만 아니라 노광 공정에 들어가는 다른 재료와 환경 조건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 13.5nm의 빛은 공기 중이나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렌즈 등을 지날 때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EUV는 장비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고, 기존 렌즈가 아닌 특수 거울을 사용한다. 소재뿐만 아니라 부품과 장비 업체와도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이유다.
SK하이닉스와 반도체 신소재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 최리노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학과장은 “삼성전자가 원하는 EUV 공정을 구축하기 위해 한창 일본과 네덜란드의 소재·부품·장비 업체들과 협업하고 있던 중에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이뤄졌다”며 “지금까지 세워놓은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주로 생산되는 반도체인 D램과 낸드(NAND)플래시에는 EUV가 사용되지 않는 만큼 전문가들은 당장의 반도체 생산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의 도약을 표방하면서 전면에 내세웠던 EUV 생산라인 구축에는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
국내 포토레지스트 생산 업체인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은 7일 토론회에서 “현재 국내에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다”며 “지금부터 개발을 시작해도 최소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8월 8일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이후 처음으로 삼성전자가 신청한 EUV용 포토레지스트 수출 신청을 허가했다.
Q 플루오린화수소의 순도가 중요한가?
A 순도보다 원하는 품질 구현이 관건
플루오린화수소는 플루오린화칼슘(CaF2)으로 이뤄진 광물인 형석을 고온의 황산과 반응시켜 만든 물질이다. 유리를 녹일 수 있어서 예전부터 유리 세공에 사용돼왔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 들어가는 플루오린화수소는 원재료에 섞인 규소나 붕소, 비소, 인, 황 같은 불순물을 제거한 고순도의 물질을 사용한다.
식각 공정은 크게 액체 상태의 플루오린화수소를 사용하는 습식과, 기체 상태의 플루오린화수소를 사용하는 건식으로 나뉜다. 액체보다는 기체를 이용했을 때 회로를 미세하게 깎아내기에 유리해 반도체 소형화에 따라 차츰 기체 상태의 플루오린화수소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액체 상태의 플루오린화수소는 국내 업체인 솔브레인 등이 일본의 수출 규제 이전부터 일부 공급하고 있어 공급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문제는 기체 상태의 플루오린화수소다. 이는 현재 일본의 반도체 소재 업체인 쇼와덴코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기체 상태의 플루오린화수소를 국내에서 아예 못 만드는 건 아니다. 2011년 국내 소재 업체가 초음파 진동기를 이용해 기체 상태의 플루오린화수소를 99.999%의 고순도로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은 7일 토론회에서 “솔브레인도 99.999%의 고순도 플루오린화수소 기체를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현재 삼성전자에서 테스트 중이며, 운반과 보관에 필요한 용기를 확보해야하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지금부터 국내에서 기체 상태의 고순도 플루오린화수소를 생산해도 실제 공정에 적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최 교수는 “플루오린화수소를 정제하는 방법과 재료는 모두 알려져 있다”며 “핵심은 순도가 아닌 제조 노하우”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순도 높은 플루오린화수소를 생산한다고 해도 일본에서 생산된 것과 품질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마치 가방을 생산할 때 똑같은 재료와 공정을 거쳐도 각 업체가 가진 제조 노하우에 따라 다른 품질의 가방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그간 일본 소재 업체는 삼성전자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삼성전자가 원하는 품질의 플루오린화수소 기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조 노하우를 갖췄다.
최 교수는 “같은 순도의 플루오린화수소라도 화학구조나 잔존한 불순물들의 특성 등에 따라 회로가 미세하게 덜 깎이거나, 더 깎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반도체용 고순도 플루오린화수소는 스텔라케미파 모리타화학공업 등 일본 기업들이 세계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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