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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가장 품위 있는 죽음? 웰빙 위한 웰다잉 시대

지난해 9월 브라질에서 열린 ‘2016 리우 패럴림픽’에 출전했던 한 선수는 경기를 앞두고 놀라운 선언을 한다. 육상 선수인 마리케 베르보트는 평생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는데, “올림픽이 끝나면 안락사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그는 안락사를 보류했지만 전세계가 죽음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의학기기 의존 벗고 삶을 마치는 존엄사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201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8.7명). 다른 OECD 국가 중 스웨덴(12.3명)이나 핀란드(15.8명) 같은 국가도 자살률이 평균(12명)보다 높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자살과 다르다. 국내에서는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많지만, 북유럽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존엄사)’가 많기 때문이다.

존엄사란 의식이 다시 돌아오기 어렵거나 병의 증상이 더욱 나빠지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약물 투여, 혈액투석 같은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의식이 있는 환자가 약물 투여 등 적극적 행위를 통해 생을 마감하는 ‘적극적 안락사’와는 다르다.

몇몇 국가에서는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1993년 ‘환자자기결정법’, 네덜란드는 2001년 ‘생명종결 및 자살조력 통제 법률’, 독일은 2009년 ‘사전의료의향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를 퇴원시킨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었다. 이후 ‘연명치료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있었다.
 

내년 2월부터 국내에서 ‘존엄사 법’이 시행된다.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가족이 동의할 때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16년 1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치료 결정에 관한 법’, 일명 ‘존엄사 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제도는 2년 동안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 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제도에 따르면, 말기 암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말기로 임종을 앞두고 있는 환자는 사전연명치료의향서나 연명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미리 알릴 수 있다. 의사를 알릴 수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가족 2명의 동의를 받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남아 있는 가족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고, 또 환자 본인에게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빼앗는다. 존엄사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가슴으로는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죽음에 대해 고찰해보고, 이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어야 하는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품위 있는 삶 위해 품위 있는 죽음 고찰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간에게 네 가지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권리다. 영적 권리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권리로 품위 있게 세상을 떠나는 일도 포함된다. 이미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죽음에 대해 의학, 인문학, 철학 등 여러 분야를 연구해 이로부터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사나톨로지’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나톨로지스트는 의사와 간호사, 호스피스, 뇌과학자, 인문학자 등 각계 전문가들이 두루 포함돼 있다.

유럽이나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인종이 다양하고 이민자도 많다. 문화와 생각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루다보니, 갈등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구성원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감대 형성 같은 철학 교육을 중요시했다.

사나톨로지도 오래 전부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초중고교 때부터 사회와 철학 과목에서 사나톨로지 개념을 배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같은 주제로 삶을 성찰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미국 후드칼리지나 뉴욕대처럼 사나톨로지를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사나톨로지 불모지다. 국내에 이 학문을 처음 알린 임병식 한국사나톨로지협회장은 “우리나라에 현재 사나톨로지스트가 120여 명 있으며 특히 서울대와 고려대, 부산대 등에서 여러 분야 전문가가 연구하고 학회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나톨로지 같은 학문적 기반이 없이 실용적인 목적만을 위해 ‘존엄사 법’이 생겨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존엄사 법이 시행되기까지 남아 있는 일 년의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고찰해보고 이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와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나톨로지스트인 이범수 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한다면 청소년 자살률도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나톨로지가 발달한 국가와 아닌 국가에서는 급작스러운 죽음을 겪었을 때 대처하는 과정이 다르다. (상상하기 싫지만) 만약 다른 나라에서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임 회장은 “사나톨로지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먼저 유가족이 겪어야 하는 슬픔과 상실감을 공감하고 감정적으로 해소해주려 노력했을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감정 해소 과정 없이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원인을 찾아내거나 물질적 보상을 하는 데에만 급급했다”면서 “결국 생존자나 유가족에게 아픔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의학기술 발달할수록 죽음 멀어질까
미국의 컴퓨터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이 되면 인류는 죽음을 초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미래에는 사람과 기계가 항상 연결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의 수명을 연장할 거라고 본다. 줄기세포로 바이오프린팅한 인공장기나,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를 이용해 유전자를 교정해 난치병을 정복하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미래에 되살아나 치료받기를 원하는 부유한 난치병 환자들을 사망한 지 2분 이내에 액체질소를 이용해 영하 196℃로 얼려 놓는 곳도 있다. 가상현실을 이용해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는 방법을 상상하기도 한다.

‘혹시 미래에는 의학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해 죽음을 피하려는 ‘진시황 세대’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범수 교수는 “진시황은 영생을 위해 수은을 먹다가 오히려 일찍 죽었다”며 “긴 수명보다 알찬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임병식 회장은 “오히려 그런 미래가 오면 인류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생에는 한계가 있고 미래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꿈과 목표를 갖고 도전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더욱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얻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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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일러스트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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