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내게 정말 엄청난 일을 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비록 내가 상상했던 것과 같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이제까지의 삶을 즐길 수 있었죠. 마찬가지로 미래에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과학은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_헬렌 샤먼
2007년 3월 러시아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GCTC· Gagarin Cosmonaut Training Center)에 입소해 훈련을 받을 당시,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 중 하나는 GCTC를 거쳐 간 다른 나라 우주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러시아에 있는 우주인 훈련센터라 러시아 우주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다른 나라 우주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특히 러시아어 선생님들은 30년 넘게 GCTC에서 우주인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다보니 러시아 출신이 아닌 거의 모든 우주인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분들 중 몇 년 전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던 이고르 머쿨로프는 당시 나를 보고 20여 년 전 GCTC에서 훈련을 받았던 영국 최초 우주인 헬렌 샤먼이 생각난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영국 최초의 우주인이 여성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분일지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훈련 초반 정신없는 일정에 서투른 러시아어로 좌충우돌하던 때의 나는 훈련 외에 다른 궁금증을 해소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건 비행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가진 인터뷰에서였다. 렉스 할이라는 영국 기자는 GCTC와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스페이스센터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전 세계 우주인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Women Astronauts(여성우주인)’라는 책을 선물하면서 “당신이 우주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한 나라의 첫 우주인이 여성이 되는 드문 사례가 또 하나 생길 것”이라며 “영국 최초 우주인인 샤먼 박사와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선물한 책에는 샤먼 박사가 짧게 소개돼 있었다. 화학자 출신으로 1989년 영국 최초 우주인 후보 2명 중 한 명으로 선발돼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고, 1991년 5월 소유스를 타고 러시아 미르(Mir) 우주정거장에서 우주 실험을 수행했다는 정도였다.
“어린 시절 나에겐 특별한 꿈이 없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1년, 우주인들의 모임인 우주탐험가협회(ASE) 연례회의에서 드디어 샤먼 박사를 만났다. 그해 우주인 모임은 인류 최초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의 비행 50주년을 맞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그래서 다른 해보다도 많은 우주인들이 참석했다. 첫날 저녁식사 시간에 몇몇 선배 여성 우주인들이 회의에 참석한 여성 우주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샤먼 박사의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불쑥 다가가 내 소개를 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샤먼 박사의 첫인상은 편한 언니 같았다. 그래서일까. GCTC에서 러시아어 선생님에게 그와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부터, 유명해지거나 공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우주인에 지원했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힘들었던 넋두리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첫 만남에서 별별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것 같다.
그는 이해한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 역시 비행 후 몇 년간 바쁘게 대외활동을 하면서 비슷한 경험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활동을 멈추고 15년 정도 극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유리 가가린 비행 50주년이기에 가능했던 행운이었다.
당시에는 그와 나의 공통점이 ‘한 나라의 최초 우주인이 된 여성’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과학동아에 글을 쓰기 위해 그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대표적인 증거가 강연이나 외부 행사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어릴 때부터 우주인을 꿈꿨는가’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그는 놀랍게도 “어린 시절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며 “특히 우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엄마처럼 간호사가 되면 어떨까, 기계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기계를 다루는 사람은 어떨까 생각했던 게 전부였다고 말이다.
“단 1시간도 잘 해보려고 노력한 적 없으면서, 높이뛰기 선수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피아니스트가 돼 콘서트를 열 생각까지 했었잖아.”
쾌활한 그의 얘기에 너무나도 공감이 됐다. 사실 나도 어린 시절 막연히 판사가 되면 어떨까, 멋진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오페라 가수도 괜찮겠지, 태권도 국가대표가 되면 멋질 텐데 하면서 미래를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 터라 누군가 어릴 적 꿈에 대해 질문하면 우주인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멋진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망설여졌던 적도 있었다.
심지어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도 내겐 깜짝 놀랄 이야기였다. 내 경우에는 막연히 이공계가 나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KAIST에 진학해서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했고, 그 때도 고민이 많았다. 물리와 화학은 고등학교 때와 너무나도 다르고 어려웠으며, 수학은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임을 깨달았다. 이후 전공 선택은 암흑 속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샤먼 박사도 대학에 막 진학했을 때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그 뒤 직업은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과학, 언어, 음악에 모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차근차근 혼자만의 논리를 만들었다. 과학 분야는 언어, 음악과 달리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고는 배우고 익히기가 쉽지 않다. 과학 중에서도 자연과학 분야를 선택한다면 향후 공학이나 의학 분야로 갈 수 있을 테고, 그중에서 화학을 선택한다면 생물이나 물리 분야까지도 외연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화학을 해보자!
1만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주인이 되기까지
우주인으로 선발되는 과정도 샤먼 박사와 나는 공통점이 많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그를 인터뷰하며 처음 알게 된 것이지만, 샤먼 박사도 2011년에 나를 만나기 전부터 나와 우리나라 우주인 선발 과정에 대해 듣고 본인과 아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한국 우주인 선발 사업의 경우는 정부가 주도한 과학기술사업이었다. 반면 영국의 우주인 선발 사업은 ‘주노 프로젝트(Project Juno)’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민간 회사들이 자금을 모아 영국 최초 우주인의 비행을 후원했다.
1989년 시작된 주노 프로젝트는 영국 전역에서 우주인 후보를 공모했다. 샤먼 박사는 퇴근 길 저녁 라디오에서 우연히 우주인 선발 광고를 들었다. 그는 ‘당연히 최종 선발되진 않겠지만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다고 했다. 모든 선발 과정에서 언제든 탈락할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고, 본인에게 적합한 자리가 아니라면 특별한 경험을 한 것에 만족하고자 했다.
듣는 순간 내 얘기 같아 소름이 돋았다. 나 역시 우연히 신문 기사를 통해 한국 최초로 우주인을 선발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최종 선발되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우주인으로 적합한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주노 프로젝트에는 1만3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1989년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다. 그중 249명이 의학 검사를 위한 서류 심사에 통과하고, 그중 35명이 정밀 의학검사와 정신검사를 받았다.
이후 16명이 뽑혀 중력가속도테스트(G테스트) 같은 우주 비행과 관련된 테스트를 수행했다. 그중 6명이 마지막 선발 시험인 의학검사와 심층면접을 치렀고, 거기서 최종적으로 2명이 선발돼 러시아 GCTC에서 훈련을 받았다. 내가 고산 씨와 함께 했던 것처럼, 샤먼 박사 외 나머지 한 명의 후보는 남성이었다.
샤먼 박사는 나보다 6개월 더 긴, 총 18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다. 영국 민간 회사들이 주노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모금에 실패하면서 하마터면 우주 비행 자체가 취소될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GCTC에서 훈련 중이던 샤먼 박사는 내일이라도 당장 훈련이 중단될 수도 있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예산이 부족하니 비행 자체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과학 임무 없이 비행만 하고 돌아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을 타국에서 견디기 힘들지 않았을까. 그는 “당시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훈련에 집중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비행이 계획대로 진행됐을 때, 걱정하느라 놓친 훈련을 다시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던 일에 집중하고 하루하루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주노 프로젝트는 러시아와 영국의 협력 사업이 됐다. 영국 최초 우주인의 소유스 탑승과 미르 우주정거장 비행이 국제적으로 미칠 영향력을 기대해, 영국 최초 우주인이 러시아의 과학 실험을 수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영국 우주인의 우주 비행을 러시아 정부가 일부 후원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실험을 물었다. 그는 “모든 실험이 러시아에서 준비한 과학 실험이다 보니 자세한 실험의 배경이나 이후 분석 결과에 대해 알 수 없어 아쉽다”면서도 화학자 출신답게 “루시퍼레이스(luciferase)라는 발광효소 단백질 결정 성장 실험이 가장 좋았다”고 답했다. 우주에서는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 비해 단백질이 더 크고 균일한, 질 좋은 결정으로 성장한다.
그는 그밖에도 다양한 실험을 했다. 자기장을 이용해서 식물의 뿌리를 한 방향으로 자라게 하는 실험과 미래 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에 사용할 물질을 테스트하기 위해 세라믹 필름 시편들을 우주 환경에 노출시키는 실험도 했다. “우주 환경에 노출된 시편에서 금속 냄새가 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고 말하는 그는 천생 과학자였다.
미르 우주정거장엔 사우나가 있었다?
“뭐든 추가로 물어볼 것이 있으면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고 물어봐요. 확실하지 않은 인터넷에서 찾느라 고생하지 말고. 언제든 대답해 줄게요.”
샤먼 박사는 e메일 인터뷰 답신 끝에 항상 이렇게 적었다. 대외활동을 일절 중단할 정도로 인터뷰에 시달렸던 그였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질문을 더욱 신중하게 골랐던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우주인에 함께 도전한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주인 도전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덕분인지 서로 각별하게 느낀다. 나의 경우도 한국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245명 예비후보에 들었던 이들과 연락하고 지내고, 마지막 10명 후보 중 일부는 미국에서도 소식을 전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됐다.
샤먼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최종 후보들과 계속해서 우정을 이어왔고, 특히 함께 우주인 후보 최종 2인에 올랐던 티모시 메이스와는 평생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고 했다. 샤먼 박사는 그가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무척이나 서운해 했다.
2001년 폐기돼 지금은 볼 수 없는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에 대한 궁금증도 직접 다녀온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샤워실이나 사우나가 정말로 있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샤먼 박사는 “미르에 샤워실이 있긴 했지만 사용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설치하고, 사용하고, 마지막 정리를 위해 닦는 시간이 거의 8시간 가까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가 갔을 때는 그저 짐을 쌓아두는 창고처럼 쓰였다고 했다. 덕분에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우주에서 씻는 방법에 관해 물으면 좀 더 리얼한 답을 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책 ‘여성우주인’에 언급된, 평소 과학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는 소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과학을 사랑하고,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온 사람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과학은 내게 정말 엄청난 일을 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리고 과학은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