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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엘사 아빠’ 김상진 감독 “애니메이터에게 필요한 건 상상력과 지구력”

‘라푼젤(Tangled)’ ‘겨울왕국(Frozen)’ ‘모아나’ ‘빅 히어로’…. 디즈니의 대표적 흥행작인 이들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영화 속 매력적인 캐릭터가 한국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최초로 월트디즈니애니메이션스튜디오 수석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김상진 감독(현 로커스 이사)을 과학동아 독자들과 함께 인터뷰했다.

 

 

 

“애니메이터의 길은 단거리 육상이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꽉 잡기 위해서는 꾸준히 고민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7월 8일 서울 강남구 로커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상진 감독은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인 디즈니의 수석 애니메이터가 되기까지 수많은 준비와 도전 과정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적록색약 있던 경제학도에서 애니메이터로


그는 어릴 적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었지만 미대에 진학할 수 없었다. 적색과 녹색의 구분이 힘든 적록색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당시에는 색약이 있으면 미대에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며 “그림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 경제학을 전공하면서도 꾸준히 미술 계통의 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1986년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한 애니메이션 회사의 구직 광고를 보게 됐다. 애니메이터는 애니메이션의 핵심인 움직이는 그림을 수작업이나 3D 그래픽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것도 애니메이터의 역할이다. 심장이 뛰었던 그는 과감히 도전했고, 합격했다.

 

애니메이터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89년 캐나다의 케네디 카툰스로 옮겨 경력을 쌓았지만 6년 뒤 회사가 폐업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막막했던 때 그가 마지막으로 도전한 곳이 디즈니였다. 그는 “도전하는 데는 돈 안 든다는 심정으로 부딪쳐봤는데, 한 번에 덜컥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가 입사한 1995년 이후 디즈니는 하락세를 겪고 있었다. ‘알라딘’ ‘라이온킹’ ‘포카혼타스’ 등이 큰 인기를 누렸던 황금기가 지나고, 컴퓨터그래픽(CG)으로 무장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들이 쏟아졌다. 

 

게다가 지금은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자회사지만 당시엔 별도 회사였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3D 애니메이션을 히트시키면서 디즈니는 큰 위협을 받았다. 많은 애니메이터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김 감독은 “CG를 배우고 3D 애니메이션을 익히면서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고 말했다. 

 

2010년 디즈니는 영화 ‘라푼젤’로 암흑기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도 ‘라푼젤’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그는 “영화가 처음 기획된 이후 개봉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린 작품”이라며 “캐릭터를 디자인하며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일이 즐거웠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자신감도 얻었다”고 회상했다. 

 

2003년 한국인 최초로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가 된 김 감독은 ‘라푼젤’에 이어 ‘겨울왕국’ 등을 성공으로 이끌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2016년 이런 타이틀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즐거운 일, 도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다.

 

그는 “디즈니에 남았다면 ‘겨울왕국 2’ ‘주먹왕 랄프 2’ 등 속편을 제작했을 것”이라며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하던 그에게 때마침 한국의 로커스가 새로운 캐릭터 디자인을 요청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7월 25일 개봉한 ‘레드슈즈’다. 레드슈즈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 속 매력적인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며 “캐릭터의 감정을 보여주는 눈과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에 주목하면 영화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멩이 하나까지 창조해내는 상상력 중요”


김 감독은 애니메이터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상상력과 지구력 두 가지를 꼽았다. 
김 감독은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와 달리 캐릭터, 건물, 배경, 심지어 풀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 모든 것을 100% 창조해내야 한다”며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상상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관찰과 경험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많이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심미안을 길러야 한다”며 “다양하게 많이 보는 것이 심미안을 기르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그는 “좋은 영감은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다”며 “지인과의 일화, 옛이야기, 영화 등 자신이 겪는 모든 경험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구력도 중요하다. 김 감독은 “일반적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작업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주인공의 경우 몇 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레드슈즈’ 또한 캐릭터 디자인부터 개봉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 김 감독은 “영화를 만들다 보면 시나리오도 바뀌고 이에 맞춰 캐릭터 디자인도 바뀔 수 있다”며 “애니메이터에게 지구력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가 2014년 미국 마하리시대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며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실패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도 실패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중략)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마세요. 노력하는 자도 실패할 수는 있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201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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