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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父子)가 경영하는 전문소프트웨어사 컴퓨터 재벌의 기초를 다진다

소프트웨어 황제를 꿈꾸는 약관의 대학생이 아버지를 사장으로 모시고 소프트웨어 전문회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아버지는 사장, 아들은 개발부장
 

하이테크 세계는 나이와 경륜에 구애받지 않고 스타를 탄생시킨다. 오직 개인의 능력과 집념에 의할뿐이다. 30세의 나이로 소프트웨어계의 황제로 불리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윌리엄 게이츠'가 그렇고, 24세의 젊은 나이로 '애플신화'를 탄생시켜 일약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 좁스' 또한 그러하다. 이들 신화의 주인공들은 세계의 꿈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컴퓨터와 씨름하여 신화의 재현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컴퓨터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게이츠나 좁스와 같은 스타는 탄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회사의 개발부장으로 일하면서 2백여 작품을 개발해 그 중 상당수를 상품화 하고 있는 약관의 대학생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인하대 수학과(3년)에 다니면서 '스태틱 소프트'사의 개발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황건순군. 이 회사는 황건순군의 아버지 황선탁씨가 아들의 꿈을 펴기 위해 만들었다. 아버지는 경영책임자이고 아들은 기술책임자인 셈이다.

아버지는 사장, 아들은 개발부장

'스태틱 소프트'사는 황건순군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설립되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취미삼아 게임소프트웨어를 만들던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사업자 등록을 내준 것이다. 회사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황선탁씨 자신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발벗고 나섰다. 회사를 차렸다고는 하지만 직원은 황군과 그의 친구 하나가 고작이었고 사무실도 집옆의 8평짜리 지하실 하나를 빌려 썼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지사(용산 전자랜드 매장)를 둔 버젓한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회사로 성장했다.

황건순군이 컴퓨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중학 3학년 때. 국민학교 시절부터 라디오 등 전자제품 조립에 관심을 가졌던 황군이 '라디오와 모형'이란 잡지에 실린 컴퓨터로 게임도 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부터이다. 그 당시(82년)는 국내에 개인용컴퓨터(PC)가 보급되기 전이므로 지금처럼 보급되기 전이므로 지금처럼 학원에서나 전시장을 통해 손쉽게 컴퓨터와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졸라 컴퓨터학원(중앙전산학원)에 갔으나, PC과정은 없었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대형컴퓨터 과정만이 있었다. 원장을 설득해 청강생(?)으로 7개월간의 정규 과정을 마친 황군의 그 때 상황을 주위에서는 '물고기가 비로소 물을 만난 것'으로 표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 프로그래밍을 시작, 갤러그(우주선 격파게임) 슈퍼제비우스 등 게임프로그램을 비롯 타이니포트란 등 프로그래밍언어 등을 개발해나갔다.

황선탁씨는 "건순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양가족에서 제외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각종 컴퓨터경진대회에서 입상해 받는 상금과 개발한 프로그램을 판매한 건순군의 수입이 아버지의 수입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건순군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자질은 경진대회의 화려한 입상경력에서 단적으로 증명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삼성전자가 개최한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 입상한 이후 20여차례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85년 제2회 전국 퍼스널컴퓨터 경진대회 소프트웨어 공모부문에서 '분자모델'로 과학기술처 장관상을 받은 것과 87년 같은 대회에서 SPC-1500용 한글워드프로세서로 상공부 장관상을 받은 것.

특히 한글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은 8비트컴퓨터를 가지고 한글 문서편집을 가능케 한 것으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황군이 공모전 입상 이후 인연을 맺은 삼성측에서는 새로운 PC를 개발하면 황군에게 먼저 성능 테스트를 시켜볼 정도. SPC-1500도 시중에 나오기 전에 이미 황군의 손을 거쳐 단점이 체크돼 보완됐다.


소프트웨어 황제를 꿈꾸는 약관의 대학생
 

고3때 학원강사로도 능력 발휘

황군은 어린 나이에 학원강사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고3때 안양에 있는 컴퓨터학원에서 어셈블러 (기계어)강좌를 맡아 훌륭히 해냈다고 한다. 황선탁씨는 "고3 때와 대학1년 때 2번에 걸쳐 강사를 했는데 수강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특A급 강사료를 받았고,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그 후 그 학원은 유명해져 경영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아들자랑(?)을 늘어놨다.

황사장이 아들인 개발부장에 거는 기대는 크다. 그저 단순히 회사를 키우려는 욕심만은 아니다. 본인이 갖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황군은 자신의 적성이 컴퓨터에 맞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컴퓨터에 심취하려면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한데, 그런점에서 일단 합격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컴퓨터하고만 씨름하는 사람임을 스스로 부인하는 황군은 대학에서 5인조 보컬그룹의 기타 리더이며 아버지와 함께 가끔 낚시를 다니기도 한다. 대학생활과 회사생활 취미생활 등을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아직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한곳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신중한 선택을 위해서다.

"대학4학년이 되는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진로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회사도 키워야겠고 공부도 계속하고 싶고, 분야도 이제까지의 소프트웨어분야에서 하드웨어분야로 바꾸어 보고 싶고…"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서 컴퓨터 관련학과에 진학한 친구들과 같이 서클을 만들어 나름대로 앞으로를 대비하고 있다는 황군은 올해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시기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황선탁씨는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물질적인 면에서 풍부하게 지원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컴퓨터 관련 사업은 풍부한 자본력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꽤 돈을 벌었으나 대부분 시설투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조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본인도 그렇고 아버지도 대학원에 진학, 공부를 계속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월수입 2백만원 이상을 올리는 컴퓨터의 귀재'라고 주위에 알려져 있다고 하자 "그렇게 돈을 버는지는 모르겠고 귀재는 무슨 귀재냐. 앞으로 잘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겠다"고 말했다. "작년 9월에 개장한 용산 전자랜드의 제2판매장 수익은 건순이 몫"이라고 말한 황선탁씨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아들의 월급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컴퓨터와 오래 마주하다 보니 외로와지는 것 같다는 황군은 기술적 장애의 모든 해답을 책에서 찾고 있다. 특별히 일어를 배우지 않았어도 독해력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아버지가 옆에서 귀띔한다. 일본 컴퓨터잡지를 4개나 구독하고 있다고. 성격이 날카로와진 것이 컴퓨터를 사귀고 나서 얻은 유일한 흠이라는 황군이 우리의 짧은 컴퓨터역사속에서 '게이츠'나 '좁스'와 같은 신화를 창조해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

198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정경택 기자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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