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4~10일은 ‘세계우주주간 (World Space Week)’이다. 유엔이 1999년 제정한 세계우주주간은 우주 개발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두 가지 사건을 기념한다. 1957년 10월 4일 러시아의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와 1967년 10월 10일 우주의 평화적인 목적을 위한 최초의 조약인 ‘국제우주조약’ 발효다.
지구에서 열리는 전 세계 우주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큰 세계우주주간은 인간에게 우주가 주는 이점을 알리고 우주 개발을 위한 공공의 관심과 원조를 유도하며 전 세계 우주 관련 기관의 활동을 독려하는 게 목표다. 유엔 산하 비영리기관인 세계우주주간협회는 매년 주제를 정해 각국 우주청, 우주산업계, 학계 등이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86개국이 참가해 5400개에 이르는 우주 관련 행사가 열렸다.
세계우주주간협회는 2020년 세계우주주간 의장으로 세계적인 위성운용회사 SES의 스티브 콜러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SES는 정지궤도와 중궤도에 70개가 넘는 인공위성을 운용 중인 세계 최대 위성운용회사다.
콜러 CEO는 신임 의장에 선임되면서 세계우주주간 운영을 도와 각국의 우주청, 산업계, 학계 등의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지구에서 가장 큰 우주 행사인 세계우주주간의 의장을 맡게 돼 기쁘다”며 “위성 기술을 통해 인류가 누릴 광범위한 혜택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점도 흥분된다”고 밝혔다.
콜러 CEO가 의장으로 선임된 것은 내년 세계우주주간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년 주제는 ‘위성 기술과 오늘날 위성의 주요 역할’이다. 2018년 4월 SES의 새 수장으로 부임한 콜러 CEO는 위성 산업계의 베테랑으로 불린다. 그는 O3b 네트웍스라는 위성 기업의 대표를 지내며 전 세계를 인공위성을 기반으로 하는 초고속 인터넷으로 묶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최근 진행 중인 위성 인터넷망 ‘스타링크(Starlink)’보다 한발 앞서 위성을 통해 인터넷망을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O3b 네트웍스는 2014년 위성 12기를 발사해 군집을 이루는 데 성공했고, 2016년 O3b 네트웍스는 SES에 인수됐다.
콜러 CEO는 2018년 취임식에서 “SES가 이제껏 쌓아온 성과와 기틀 위에서 다음 단계의 발전으로 이끌 수 있는 역할을 맡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위성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도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니스 스톤 세계우주주간협회장은 콜러 CEO에 대해 “그는 우주 산업을 통해 지구 곳곳의 사람들의 삶과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고 꾸준히 노력해왔다”고 평가했다.
룩셈부르크 정부 투자로 1985년 설립된 SES는 위성을 이용해 전 세계에 통신, 방송, 데이터 중계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7년 매출액은 20억 유로(약 2조6700억 원)에 이른다. SES는 1988년 첫 번째 위성 아스트라 1A를 발사하며 유럽 최초의 민간 위성운용회사가 됐다.
콜러 CEO는 “SES 설립 당시 많은 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며 “위성 사업 모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1990년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고 유럽에 화해와 통합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위성 서비스 시장은 급성장했다. 동시에 SES도 성장했다. 1990년 영국 스카이TV, 독일 Pro 7, Sat.1, RTL 등의 방송국에 위성 서비스를 제공하며 140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했다.
유럽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SES는 더 먼 해외로 눈을 돌려 영상 전송과 데이터 연결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통신위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영상을 전송하고 데이터 공유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1999년부터 지속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한 SES는 현재 홍콩, 아르헨티나,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위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콜러 CEO는 “전 세계 3억5000만 가구에 SES 위성을 통해 영상이 제공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지상에서 놀랄 만한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우주에서 놀랄 만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구 어디에서나 영상을 보며 서로 데이터를 공유하는 환경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주 산업은 인간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SES는 우주 기술 혁신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여러 대의 위성이 동일한 궤도를 공유하는 ‘코로케이션(Co-Location)’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코로케이션이란 위성이 늘어나면서 포화 상태에 이른 정지궤도 밀집 지역에 신호 간섭을 없애면서도 위성을 가까이 위치시키는 기술이다. 서로 다른 위성들이 비슷한 주파수 대역의 신호를 내보내면서 발생하는 신호 간섭 문제는 위성 통신 서비스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데, 코로케이션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SES를 유럽 위성 서비스 시장 1위로 만든 아스트라 1A 근처에는 인공위성 7기가 떠 있다.
SES는 더 나아가 이들 위성을 하나의 군집으로 묶어 상호 보완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통해 지상의 안테나가 위성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채널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고, 이는 안정적인 영상 제공으로 이어졌다.
스포츠 중계에 사용되는 디지털 방송, HDTV, 3DTV 영상 기술이 발전한 것도 SES의 공이 크다. 위성에서 보낸 전파를 가정의 안테나로 직접 수신하는 최신 DTH 전송 기술도 SES가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SES는 민간 우주 산업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스페이스X의 첫 고객이자 함께 도전하는 동반자 역할도 해왔다. 스페이스X는 2013년 우주발사체 팰컨 9에 SES의 정지궤도위성 SES-8을 실어 보냈다. 2017년에는 세계 최초로 1단을 재사용한 팰컨 9 발사에 인공위성 SES-10을 실어 올리는 모험 아닌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 위성은 초고화질(UHD) 영상 송수신과 관련한 국제기술 표준 마련에 활용되고 있다.
콜러 CEO는 “SES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에게 성공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며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다보면 파괴적인 기술을 만나게 되고, 파괴적인 기술은 더 큰 가능성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SES는 또 다른 혁신을 준비 중이다. 콜러 CEO는 2018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위성산업주간 콘퍼런스에서 “앞으로 한 종류의 위성만 구매할 것”이라며 “완전히 동일한 위성은 동일하게 기능하는 만큼 우리가 원하는 곳 어디에든 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SES는 발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위성 3기를 쌓아 한꺼번에 쏘아 올리는 계획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