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우주를 떠도는 불모의 소행성에서 광물 자원을 채취하는 방법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언뜻 가장 허황돼 보이는 몽상가가 실은 가장 현실적인 혁신가일 때도 있다. 2016년, 룩셈부르크는 지구에서 수천만km 떨어진 우주의 소행성에서 자원을 캐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계획을 유럽에서 처음 밝혔다. 룩셈부르크 국내 및 해외 민간 기업이 우주 자원 탐사에 나설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대책을 마련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이 계획을 주도한 에티엔느 슈나이더 룩셈부르크 부총리 겸 경제부‧복지부 장관은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인간이 거주하는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원을 채취하는 것’을 꼽았다. 자연 환경 보호라니, SF를 연상시키는 상상력 넘치는 계획 이면에 숨은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였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1997년부터 룩셈부르크 사회주의노동자당 대표를 역임한 정치인 출신이다.. 2013년 룩셈부르크 총선에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에 임명돼 본격적으로 현실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2018년 총선 이후 재편된 내각에서는 부총리 겸 경제부‧복지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룩셈부르크와 영국에서 경영학과 금융을 전공해 과학이나 공학과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다. 하지만 우주 탐사와 개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전공인 금융 지식을 이용해 민간의 신생 우주 스타트업을 지원할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가 우주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2016년부터다. 그 해 2월, 룩셈부르크는 수천만km 떨어진 비교적 지구에 가까운 소행성(지구근접소행성)에서 금이나 백금, 텅스텐 등 금속 자원을 채취할 수 있도록 법령 작성에 착수할 계획임을 밝혔다. 지구근접소행성이 지닌 광물 자원을 채취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계획을 밝힌 사례는 유럽에서 처음이었고, 세계적으로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
특히 우주 자원을 채굴한 기업이 캐낸 자원에 대한 재산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이 역시 2015년 11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서명한 이후, 룩셈부르크가 두 번째였다. 룩셈부르크 정부는 “미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민간의 우주 자원 개발을 장려할 계획”이라며 “민간 투자사는 물론 다른 국가의 참여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계획을 세운 것은 투자 활성화를 통해 신생 우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기업들이 자신이 캐낸 미래 자원의 소유권을 갖도록 허용하면 투자사들도 룩셈부르크에 와 기회를 얻고자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원 소유권을 일종의 인센티브로 활용해 기업의 투자를 이끌고 이를 통해 전 세계 우주 기업을 유치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우주 자원 개발회사인 딥스페이스 인더스트리와 플래니터리 리소스 등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며 참여 의사를 밝혔고, 참여 기업은 2년 반 사이에 20개가 넘을 정도로 늘어났다. 초기에 참여를 밝힌 두 기업 외에 일본의 아이스페이스 등도 주력 파트너로 꼽힌다.
슈나이더 부총리가 발표한 계획에는 ‘룩셈부르크 우주자원 계획 (SpaceResources.lu Initiative) ’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룩셈부르크가 정부 주도로 우주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는 약 30년이 넘었지만, 정부가 나서서 종합적인 육성책을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우주자원 계획은 빠르게 성장하는 국제 산업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 계획이 될 것”이라며 “여러 단계를 거치며 룩셈부르크를 유럽의 우주 자원 탐사 및 활용의 중심지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산업의 관점에서 우주 자원 개발을 추진하지만, 곧바로 경제적 이익이 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긴 안목으로 투자에 임한다는 뜻이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우주자원 계획 공개 1년 반 뒤인 2017년 11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개최된 ‘뉴월드 콘퍼런스’에서 “룩셈부르크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를 우주 산업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비율이 단기간에 치솟을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GDP의 5%를 우주 산업에서 생산할 날도 물론 오겠지만, 10~15년 뒤가 될 것”이라며 “기업들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해 곤란을 겪을 수 있는데, 정부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와 투자 펀드를 이용해 이를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룩셈부르크 정부가 유독 우주 자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룩셈부르크의 자유롭고 비즈니스에 매우 친화적인 분위기가 투자의 붐을 이끌고 있는데, 이들이 이제 우주 기업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자리 등 다른 경제 지표도 마찬가지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2018년 말 의회에 참석해 “2016년 우주자원 계획 출범 이후 약 20개의 신생 민간 우주 기업에서 약 7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아직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구 관측 위성 기업인 클레오스, 우주 자원 개발 기업 스파이어 글로벌 룩셈부르크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고용과 투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2020년까지 400여 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룩셈부르크가 우주로 눈을 돌린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환경이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우리의 목표는 이전에 탐험하지 못했던, 우주를 떠도는 생명이 없는 소행성이 지닌 광물 자원에 접근하는 것”이라며 “지구 자연에 끼치는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자원 채취와 GDP 창출도 중요하지만, 그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19년 5월, 룩셈부르크는 미국과 상업적 우주 개발 분야에서 상호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두 나라는 정례적으로 회의를 열고 인력과 정보를 교류하며 우주 기업 설립과 운영을 돕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두 나라는 우주에 상업적인 기회가 넘쳐난다는 데 비전을 함께하고 있다”며 “규제를 개선하고 우주쓰레기 등 중요한 우주 개발 이슈를 해결하는 데에도 공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우주 연구와 탐사, 안보, 상업적 우주 이용 등의 분야에서도 보조를 맞춰 경제 성장을 위한 중요하고도 새로운 흐름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