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둥’ 둔탁하지만 힘이 넘치는 소리에 어깨가 들썩인다. 사물놀이나 농악놀이는 타악기 위주로 편성되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어깨춤을 추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물놀이에 쓰이는 장구와 북은 가죽으로 만든 악기로 팔음(八音) 분류법 중‘혁(革)’부에 속한다. 타악기 중에는 혁부에 속하는 악기가 많다.
농경의례에서 유래한 타악기
사물놀이는 농악놀이(풍물)에 쓰이는 타악기 가운데 주요 악기인 꽹과리, 장구, 북, 징
4개(四物)만으로 편성한 일종의 실내악이다.‘사물놀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덕수 씨
가 중심이 돼 1970년대 후반 농악놀이에 쓰이던 악기의 수와 규모를 줄여 소극장에서 공연한 게 사물놀이의 기원이다. 원래 사물은 불교 의식에 쓰이던 법고(法鼓),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의 네 가지 타악기를 말하는 용어인데, 최근에는 꽹과리, 장
구, 북, 징을 가리키는 데 더 많이 쓰인다.
농악놀이는 언제 시작됐을까. 농악놀이의 기원을 따라가면 북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그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예맥의 무천 같은 제천의식에서 농악놀이 같은 의식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악놀이도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집단적인 제례의식 중 하나인‘군무(群舞)’의 장단을 맞추기 위한 과정에서 농악놀이가 생겼다는 뜻이다. 가장 원초적인 악기인 타악기가 제례의식의 반주에 쓰였으며, 점차 다양한 타악기가 편성되면서 오늘날의 농악놀이와 같은 형태가 됐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북이 가장 먼저 제례의식에 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악기를 만들거나 연주하는 법이 다른악기보다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각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고대악기 중에서도 북과 비슷한 악기를 찾아볼 수 있다. 장구는 그 기원이 불분명하지만 고려가요인 한림별곡과 조선시대 음악책인 악학궤범에 ‘장고’라는 용어가 남아 있다.
‘장고(杖鼓)’는‘손에 든 채로 치는 북’이라는 뜻인데,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져 쓰인 악기로 보인다. 현재는 장구로 명칭을 통일해 부른다. 농악놀이가 점차 자리를 잡으며 삼국시대에는 농경과 관련된 제례의식뿐 아니라 자연재해가 생길 때 산천에 지내는 제사, 군대의 열병식에 쓰이기도 했다. 고구려에서는 전쟁 때 농악놀이를 이용해 사기를 올렸으며 신라의 화랑도 역시 군사훈련, 전쟁에 농악놀이를 동원했다.
양쪽에 쓰는 가죽이 같으면 북, 다르면 장구
장구와 북은 반주악기로도 쓰인다. 반주자는 장구나 북을 쳐서 음악의 빠르기를 조절하거나 합주곡에서 각 악기가 박자를 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반주 장단이라고 한다. 시계추처럼 좌우로 움직이며 박자를 일정하게 맞추는 장치인 메트로놈 역할을 반주자가 장구나 북을 쳐서 하는 셈이다.
현악기나 관악기가 모두 편성돼 규모가 큰 합주곡에서는 북과 장구가 함께 반주에 쓰이며
산조나 소규모 기악곡, 가야금 병주에서는 장구만으로 반주한다. 판소리에서는 고수가 북으로 반주한다.
북은 대개 양쪽 모두 소가죽을 이용해 만든다. 하지만 장구는 양쪽에 각각 다른 가죽을 쓰며 연주법도 다르다. 장구의 오른편은 채편이라고 하는데, 두께가 얇은 말가죽을 써서 만들며 대나무를 쪼개 만든 채로 연주한다. 왼편은 북편이라고 하며 소가죽을 쓰거나 채편보다 두꺼운 말가죽으로 만든다.
북편은 손으로 치거나 동그랗게 깎은 박달나무를 대나무 뿌리에 끼워 만든 궁굴채로 친다. 사물놀이나 농악, 무용 반주에서는 궁굴채를 사용해 크게 연주하고 그 외에는 대개 손으로 친다.
채편은 가죽의 한가운데인 복판이나 가죽의 둘레 부분(변죽)을 친다. 일반적으로 합주 반주와 같이 큰 소리가 필요할 경우에는 복판을 치고, 현악기로만 이뤄진 합주인 줄풍류나 독주와 같이 반주 소리가 작아야 할 경우에는 변죽을 친다. 변죽은 장구의 몸통 부분과 맞닿아 있어 이 부분을 칠 경우 소리가 작기 때문이다. 여기서‘변죽을 울리다(치다)’란 표현이 비롯됐다. 이는 중심에서 벗어난 부분을 때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현재는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장구의 몸통 부분은 공명현상을 일으켜 소리를 크게 하는 울림통 역할을 하며, 초기에 기와나무를 써서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오동나무로 많이 만든다. 재밌는 사실은 장구의 양쪽이 내는 소리의 음높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두께가 얇은 가죽을 쓴 채편이 두께가 두꺼운 북편보다 음이 높고 맑은 소리를 낸다. 같은 힘을 줘 가죽을 때리더라도 두께가 얇을수록 진동수가 높아져 높은음을 내기 때문이다.
장구는 관현악합주 반주부터 가곡, 가사, 시조, 잡가, 민요, 무악, 산조 반주에 이르기까지 현재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국악곡 중에는 산조의 진양조, 중모리 장단처럼 그 리듬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서양악과 비교했을 때 영산회상의 상령산이나 세령산처럼 그 리듬을 느끼기 어려운 곡도 많다.
그래서 국악 반주에는 반주자가 장구나 북을 양손으로 동시에 치는‘합(合) 장단’이 있다. 이는 한 악절의 시작을 나타내는 신호다. 만약 국악과 좀 더 친숙해지고 싶다면 합 장단에 귀를 기울여 보자. 어느새 리듬에 맞춰 어깨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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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례에서 유래한 타악기
사물놀이는 농악놀이(풍물)에 쓰이는 타악기 가운데 주요 악기인 꽹과리, 장구, 북, 징
4개(四物)만으로 편성한 일종의 실내악이다.‘사물놀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덕수 씨
가 중심이 돼 1970년대 후반 농악놀이에 쓰이던 악기의 수와 규모를 줄여 소극장에서 공연한 게 사물놀이의 기원이다. 원래 사물은 불교 의식에 쓰이던 법고(法鼓),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의 네 가지 타악기를 말하는 용어인데, 최근에는 꽹과리, 장
구, 북, 징을 가리키는 데 더 많이 쓰인다.
농악놀이는 언제 시작됐을까. 농악놀이의 기원을 따라가면 북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그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예맥의 무천 같은 제천의식에서 농악놀이 같은 의식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악놀이도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집단적인 제례의식 중 하나인‘군무(群舞)’의 장단을 맞추기 위한 과정에서 농악놀이가 생겼다는 뜻이다. 가장 원초적인 악기인 타악기가 제례의식의 반주에 쓰였으며, 점차 다양한 타악기가 편성되면서 오늘날의 농악놀이와 같은 형태가 됐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북이 가장 먼저 제례의식에 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악기를 만들거나 연주하는 법이 다른악기보다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각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고대악기 중에서도 북과 비슷한 악기를 찾아볼 수 있다. 장구는 그 기원이 불분명하지만 고려가요인 한림별곡과 조선시대 음악책인 악학궤범에 ‘장고’라는 용어가 남아 있다.
‘장고(杖鼓)’는‘손에 든 채로 치는 북’이라는 뜻인데,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져 쓰인 악기로 보인다. 현재는 장구로 명칭을 통일해 부른다. 농악놀이가 점차 자리를 잡으며 삼국시대에는 농경과 관련된 제례의식뿐 아니라 자연재해가 생길 때 산천에 지내는 제사, 군대의 열병식에 쓰이기도 했다. 고구려에서는 전쟁 때 농악놀이를 이용해 사기를 올렸으며 신라의 화랑도 역시 군사훈련, 전쟁에 농악놀이를 동원했다.
양쪽에 쓰는 가죽이 같으면 북, 다르면 장구
현악기나 관악기가 모두 편성돼 규모가 큰 합주곡에서는 북과 장구가 함께 반주에 쓰이며
산조나 소규모 기악곡, 가야금 병주에서는 장구만으로 반주한다. 판소리에서는 고수가 북으로 반주한다.
북은 대개 양쪽 모두 소가죽을 이용해 만든다. 하지만 장구는 양쪽에 각각 다른 가죽을 쓰며 연주법도 다르다. 장구의 오른편은 채편이라고 하는데, 두께가 얇은 말가죽을 써서 만들며 대나무를 쪼개 만든 채로 연주한다. 왼편은 북편이라고 하며 소가죽을 쓰거나 채편보다 두꺼운 말가죽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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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편은 손으로 치거나 동그랗게 깎은 박달나무를 대나무 뿌리에 끼워 만든 궁굴채로 친다. 사물놀이나 농악, 무용 반주에서는 궁굴채를 사용해 크게 연주하고 그 외에는 대개 손으로 친다.
채편은 가죽의 한가운데인 복판이나 가죽의 둘레 부분(변죽)을 친다. 일반적으로 합주 반주와 같이 큰 소리가 필요할 경우에는 복판을 치고, 현악기로만 이뤄진 합주인 줄풍류나 독주와 같이 반주 소리가 작아야 할 경우에는 변죽을 친다. 변죽은 장구의 몸통 부분과 맞닿아 있어 이 부분을 칠 경우 소리가 작기 때문이다. 여기서‘변죽을 울리다(치다)’란 표현이 비롯됐다. 이는 중심에서 벗어난 부분을 때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현재는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장구의 몸통 부분은 공명현상을 일으켜 소리를 크게 하는 울림통 역할을 하며, 초기에 기와나무를 써서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오동나무로 많이 만든다. 재밌는 사실은 장구의 양쪽이 내는 소리의 음높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두께가 얇은 가죽을 쓴 채편이 두께가 두꺼운 북편보다 음이 높고 맑은 소리를 낸다. 같은 힘을 줘 가죽을 때리더라도 두께가 얇을수록 진동수가 높아져 높은음을 내기 때문이다.
장구는 관현악합주 반주부터 가곡, 가사, 시조, 잡가, 민요, 무악, 산조 반주에 이르기까지 현재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국악곡 중에는 산조의 진양조, 중모리 장단처럼 그 리듬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서양악과 비교했을 때 영산회상의 상령산이나 세령산처럼 그 리듬을 느끼기 어려운 곡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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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국악 반주에는 반주자가 장구나 북을 양손으로 동시에 치는‘합(合) 장단’이 있다. 이는 한 악절의 시작을 나타내는 신호다. 만약 국악과 좀 더 친숙해지고 싶다면 합 장단에 귀를 기울여 보자. 어느새 리듬에 맞춰 어깨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