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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이 만난 우주인] 국제우주정거장의 첫 일본인 선장 와카타 고이치

 

“일본을 넘어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미래 우주 기술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_와카타 고이치

 

“후지산보다 높은 일본에 방문한 것을 환영합니다.”


2008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올라갔을 때 일본 모듈 입구에는 이런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일전 축구 경기 때는 우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던 일본이 우주에서만큼은 꽤 앞서 달리고 있다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 우리도 곧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실제로 훈련 중에 마주친 일본 우주인들은 미국, 러시아, 유럽 우주인들과는 다른 묘한  동질감이 있었다. 일본 우주인들도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필자와 고산 씨가 훈련을 위해 미국 휴스턴에 있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훈련 중인 일본 우주인들은 우리를 직접 집으로 초대해 점심을 함께 하기도 했다. 


‘The ichi brothers are back!(이치 형제가 돌아왔습니다!)’. 러시아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한 번은 메일함에 이치 형제가 돌아왔으니, NASA 숙소에서 저녁으로 카레를 함께 먹자는 내용의 e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매달 한 번 정도는 러시아에 단기 훈련 차 방문하는 NASA 우주인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았는데, 그날은 특별한 주인공이 있는 듯 했다. 


알고 보니 몇 년 뒤 우주비행을 앞두고 정기적으로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던 일본 우주인 노구치 소이치 씨와 와카타 고이치 박사가 훈련센터에 올 때마다 동료 우주인들을 초대해 직접 카레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러시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필자는 그때부터 일본 우주인이 우주인 훈련센터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은근히 카레를 기다리기도 했다(그리고 그 덕분에 훈련받던 전 세계 우주인들과 한국의 음식을 함께 나눠 먹을 용기도 냈다. 추석 땐 함께 송편을 만들어 쪄먹었고, 설에는 NASA 숙소에서 빌린 커다란 냄비에 떡국을 끓여 나눠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학회나 우주인 행사에서 와카타 박사를 만날 때면 항상 러시아에서 만들어줬던 카레를 아주 맛있게 먹었고 고마웠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마다 그는 요리에 소질이 없어서 간단하고 쉬운 요리를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우주인답지 않은 소박한 말투로 말이다. 

 

▲ 1995년 와카타 박사가 우주왕복선 임무(STS-72)를 앞두고 존슨우주센터에서 훈련하는 모습.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그는 1996년 일본인 최초로 미국 우주왕복선 과학임무 전문가가 됐다. 

 

 

"일본인이 국제우주정거장의 
선장이 된 것은 일본 유인 우주개발 역사에 큰 변환점을 가져왔다"

 

 

우주왕복선과 소유스호 모두 섭렵   


와카타 박사는 1996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우주왕복선 과학임무 전문가(Mission Specialist)로 활동한 우주인이다. 그는 이외에도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장기 상주하는 우주인이 돼 4개월 이상 머물며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고, 러시아 우주선인 소유스호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간 최초의 일본 우주인이기도 했다. 


국제적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일본 우주인 중에서 가장 많은 비행을 한 우주인으로, 총 4번의 비행을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우주왕복선과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를 모두 경험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두 우주선의 시스템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운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우주인인 셈이다.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러시아의 소유스호는 각각의 특징과 장점이 있다. 비행을 해보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차이점은 크기다. 우주왕복선이 소유스호의 캡슐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덕분에 소유스호는 저비용으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자주 왕복할 수 있다. 반면 우주왕복선은 국제우주정거장을 건설하기 위해 규모가 큰 모듈을 운반하거나, 장기 체류 시 필요한 실험장비나 생명유지장치를 한 번에 실어 나르는 데 유리하다. 


와카타 박사는 둘의 탑승감도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메인 로켓 양쪽으로 고체연료 부스터 2개를 장착한 로켓에 실려 발사되는 우주왕복선에 비해, 액체연료 로켓을 사용하는 소유스호의 발사가 훨씬 부드럽게 느껴진다고.


두 우주선은 귀환 과정도 완전히 다른데, 우주왕복선은 비행기처럼 활주로에 착륙하는 방식이어서 귀환만큼은 우주왕복선이 훨씬 편안하다. 소유스호의 귀환모듈은 낙하산만으로 속도를 줄여 지면에 떨어지는 방식이어서 착륙할 때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다.


와카타 박사는 짧게는 일주일가량, 길게는 반년 이상 지속되는 장단기 우주 임무를 모두 수행한 베테랑이다. 1996년 1월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로 비행했을 때는 9일간, 2000년 10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로 비행했을 때는 13일간 단기 비행을 했다. 그런가하면 2009년 3월에는 디스커버리호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올라간 뒤 7월에 엔데버호로 귀환하는 139일간의 장기 임무를 수행했고, 2013년에는 소유스 TMA-11M을 이용해 무려 188일간 우주에 머물렀다. 그 기간 중에 국제우주정거장의 첫 일본인 선장도 맡았다.

 


그가 국제우주정거장의 39번째 임무(Expedition 39)에서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선장을 맡은 일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일본인이 국제우주정거장의 선장이 된 것은 나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인 우주개발 역사에서도 큰 변환점”이라며 “앞으로 다른 많은 나라의 우주인들이 국제우주정거장의 선장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라고,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언젠가 한국 우주인도 국제적인 우주 임무에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1. 2014년 국제우주정거장 39번째 임무 중 미국에서 보낸 휴머노이드 로봇 ‘로보넛(Robonaut)2’ 와 포즈를 취한 와카타 박사.
2. 국제우주정거장에 체류하는 우주인들이 연구를 할 수 있는 일본의 과학실험 모듈 ‘키보(Kibo)’. 키보는 일본어로 희망을 뜻한다.
3. 와카타 박사가 첫 일본인 선장을 맡았던 국제우주정거장 39번째 임무의 패치. 미국, 러시아 우주인이 함께 하는 임무에 일본인이 리더를 맡아 화제가 됐다.

 

시(詩), 예술 통해 우주를 열린 곳으로


항공우주공학 박사이자 일본 최초 우주왕복선 과학임무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네 차례에 걸쳐 총 347일 8시간 33분,  거의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우주에 체류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재밌는 과학실험 임무가 많지만, 여기서는 조금 특이한 다른 임무를 소개하겠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니콜 스탓이 우주에서 그림을 그렸고(과학동아 2019년 1월호 참조), 케이디 콜먼이 우주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던 것처럼(과학동아 2019년 3월호 참조), 와카타 박사는 지상에 있는 일본 학생들과 시 이어짓기를 했다. 


우주인이 되기 전부터 일본 전통 단시인 하이쿠(俳句)나 단카(短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시를 통해 우주가 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가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곳임을 보였다.


이후 다른 일본 우주인들도 우주비행 임무 중 하나로 시 이어짓기를 하면서 이제는 일본 우주인들 사이에서는 전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필자도 언젠가 다시 우주비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지상의 학생들과 우리말로 아름다운 우주에 대한 시를 지어볼 수 있으리라. 


그는 우주와 예술의 융합을 추구하기도 했다. 발광다이오드(LED) 빛이 무중력 환경에서 회전하는 이미지를 이용해 ‘스파이럴 톱(Spiral Top)’이라는 시각예술 작품을 제작했는가 하면, 국제우주정거장의 일본 우주실험 모듈인 키보(Kibo)에서 촬영한 달 사진을 음악으로 변환해 ‘달 악보(Moon Score)’를 만들기도 했다. 우주를 이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그였다. 


4. 2013년 러시아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사 훈련센터에서 소유스 TMA-11M에 동승할 우주인들과 함께 훈련 중인 와카타 박사(맨 왼쪽). 그는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러시아의 소유스호를 모두 경험한 특별한 우주인이다.

 

“아시아 우주인 역할 커질 것”


그는 NASA 우주인 사무국의 국제우주정거장 운용부서장,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우주인 사무국장, 국제우주정거장 프로그램 담당, 유인우주기술국장 등을 거쳐 현재 JAXA 부청장을 맡고 있다. JAXA가 국제우주정거장을 안전하게 운용하고, 저궤도를 넘어 달과 화성을 탐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는 “우주인으로서 우주 유영, 우주선 운용, 러시아어 훈련 등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며 “향후 인류가 다시 한 번 달에 갈 때 국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가 우주인으로서도 행정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그는 과거 비행에서 브라이언 더피 같은 멋진 선장들과 함께 일하면서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서 어떻게 팀원들을 이끌고 함께 일해야 할 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을 가장 큰 행운으로 꼽았다.


실제로 그는 2006년 7월 미국 플로리다주 바닷속에서 진행된 NASA의 열 번째 극한 환경 미션 수행 프로그램(NEEMO)에서 선장으로 일했고, 이후 NASA 우주인 사무국 등에서 오랜 시간 리더십을 배워나갔다. 


그에게는 한국인 롤모델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대뜸 조선대에 있는 김경석 교수를 아는지 물었다. 알고 보니 그가 일본 규슈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같은 실험실에서 당시 박사후연구원이었던 김 교수를 만났다고 했다. 일본 우주인의 롤모델이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으쓱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는 “일본을 넘어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미래 우주기술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필자 역시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우주기술 분야에서 국제 협력은 필수이며,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그의 말이 깊이 와 닿았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우주와 과학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재능이 있습니다. 진정한 내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찾으세요. 그리고 나만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힘든 도전이겠지만, 그 때가 우리가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시기라는 걸 믿으세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따뜻한 격려였다. 

 

 

글. 이소연 
2008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온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전 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로 우주에 다녀왔다. KAIST에서 기계공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마치고, 동대학 바이오시스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공학도 출신이다. 현재는 미국 실리콘밸리 우주 관련 스타트업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에서 전략기획 및 국제협력 담당으로, 미국 워싱턴대 공대에서 자문위원 및 겸직교수로 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우주인으로서 열정과 사명감을 갖고 우주산업 시대에 맞춰 과학 대중화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mcax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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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연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 전략기획 및 국제협력 담당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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