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과 ‘추석’ 다음에는 항상 우울한 기사가 따른다. ‘명절 이후 이혼 소송 급증’. 실제로 지난해 설 연휴 다음 달인 3월에 접수된 이혼소송은 3539건으로 전달(2540건)보다 39.3%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2009년 이후 6년째 예외 없이 반복되고 있다. 가족의 정을 되새기는 명절에 오히려 가족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사태, 막을 방법은 없을까.
“여성만 과도한 가사 노동에 시달리고, 시부모님은 아들과 며느리를 차별하고, 평소 안 보고 살던 친척들과 불편하게 만나는 등 명절에 이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결국 가정에 있습니다. 명절 후 이혼은 가족 간에 해묵은 감정이 명절을 계기로 폭발하는 겁니다.” 민성길 대한기독정신과의사회장(연세대 명예교수)은 명절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을 평소 가족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명절 증후군은 가족마다,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강동수 충남대 의대 교수팀은 2006년 3~7월 사이에 명절 스트레스로 종합건강증진센터를 방문한 30~50대 기혼 여성 99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명절에 느끼는 스트레스 점수는 평균 38.7점으로, 사업을 하다 파산한 상황(39점)이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37점)과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doi:10.4082/kjfm.2010.31.3.215). 서양에서 명절인 크리스마스 기간에 느끼는 스트레스가 평균 12점인 것과 비교하면 대한민국 주부의 명절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연구팀은 특히 명절 스트레스 점수가 조사 대상자의 ‘가족기능지수(family APGAR)’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가족기능지수는 1979년 처음 도입된 조사 항목인데, 가족 간의 애정 정도, 협력성, 서로에 대해 지지하는 정도, 위기가 닥쳤을 때 해결하는 능력 등을 종합해 평가한다. 연구 결과 명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여성은 이 수치가 눈에 띄게 낮았다. 평소의 가정 환경이 여성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이게 명절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명절 며칠 동안 쌓인 울화가 ‘폭발’의 원인이 아님을 나타낸다.
아내의 불만, 그냥 넘기기엔 위험
이런 아내의 평소 스트레스는 부부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아내의 스트레스는 부부의 이혼을 예측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학술지 ‘경제적 행동 및 조직’ 2012년 1월호에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데 아내가 느끼는 행복감이 남편이 느끼는 행복감보다 더 중요하다’는 호주 디킨대 카힛 구반 교수팀의 논문이 실렸다(오른쪽 그래프 참조). 연구팀은 2001~2007년 진행된 부부 관계 통계 자료를 이용해 독일과 영국, 호주 세 나라의 기혼자 총 14만6856명의 행복감과 이혼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남편과 아내가 느끼는 행복감에 차이가 클수록 부부 관계가 파탄에 이를 확률이 높았으며, 이는 부부의 나이차, 자녀의 존재 등 다른 요인에 비해서도 영향이 컸다. 구반 교수는 논문에서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이혼을 요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편과 아내가 느끼는 행복감의 상대적인 ‘차이(gap)’”라고 덧붙였다. 혹시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를 둔 남편이 있다면, 평소 가정 환경이 자신에겐 행복하고 아내에겐 불행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 갑자기 이혼을 요구당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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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한 마디의 힘
“해결책은 간단해요.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말하고 설거지를 하면 됩니다. 설사 말뿐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은 훨씬 나아질 테니까요.” 민 교수는 “매년 반복되는 명절 부부 갈등을 개선할 방법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친밀감과 유대감을 표현하는 사소한 노력들이 결혼을 유지시키는 가느다란 실이라는 뜻이다.
언뜻 당연한 말 같지만, 연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미국 조지아대 연구팀이 학술지 ‘대인관계’ 2015년 9월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고마워(Thank you)”라는 말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연구팀은 결혼한 성인 468명을 대상으로 자산 보유 여부(자산은 부부 관계의 안정성을 측정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부부 간의 의사소통 수준, 그리고 배우자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성향을 조사하고 이를 이혼 확률과 비교했다.
그 결과, 의사소통 과정에서 배우자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말한다고 답한 부부는 갈등 상황에서 이혼할 확률이 낮았다. 연구를 이끈 미국 조지아대 가족연구센터 앨런 바턴 연구원은 고맙다는 말이 부부싸움 과정에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부가 싸우는 과정을 보면 흔히 한 사람이 요구사항을 얘기하고, 요구를 당하는 나머지한 사람은 참다가 분노를 터뜨리거나 갈등을 회피하게 된다. 이런 패턴을 보이는 부부 중 80%는 여성이 요구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부분 여성에게 불만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은 불만의 악순환을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 바턴 연구원은 논문에서 “고맙다는 말은 갈등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며 “부부 사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서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함께 긍정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명절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 땅의 여성에게 명절은 가혹하다. 토라지거나 화를 내는 아내에게 “며칠 눈 딱 감고 견디면 될 것을!”이라고 역정을 내거나 ‘이해가 안 돼’라며 회피하지 말자. 명절의 푸념을 계기로 평소 쌓여 왔을 아내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들여다 보자. 가정에 어떤 불평등이 있을지 되짚어 보고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보자. 잘 모르겠다면, 하다 못해 “애써줘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꺼내 보자. 적어도 고생하는 아내의 고단함을 잠깐 짚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근본적이지도 않고 충분하진 않겠지만, 혹시 아는가. 이를 계기로 더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작은 변화가 시작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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